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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Sep 15. 2023

남편이 말려줘서 다행이야

줌수업의 비밀


나는 장난을 좋아하고 좀 엉뚱한 스타일이다. 물론 일을 할 때는 굉장히 진지하고 집착적이지만 그 성향이 어디 가나.


9월은 독서의 달이라 강의가 많이 잡혔다. 최대한 대면 강의로 하고 교통이 안 좋은 곳(왕복 5시간 이상)은 비대면으로 진행하고 있다. 어제는 비대면 줌 수업이 있던 날이다. 수업 한 시간 전부터 머리를 만지고 눈썹을 그리는 등 최소한의 미용을 한 뒤 단정한 블라우스를 입었다. 작은 화면이라도 강사 얼굴이 나오는데 부스스한 몰골은 피해야 하니까.


다만 화면에 잡히지 않는 하반신은 당연히 잠옷바지다. 2시간 동안 꼼짝없이 앉아서 떠들어야 하는데 불편한 정장 바지를 굳이 입을 필요 없으니까. 절대 귀찮아서가 아니다. 몸이 편해야 마음이 편하고 마음이 편해야 강의도 잘 나온다. 나름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한 나의 전략이었달까(진짜?).


화장실 거울 속 내 모습이 우스웠다. 상하체 분리마술이라도 한 듯 곱게 차려입은 상반신 아래로는 핑크색 체크무늬 잠옷바지가 시선을 강탈했다. 거울셀카를 찰칵! 찍어서 남편에게 전송했다. 남편은 너무 웃기다며 좋아했다.


잠옷바지 차림으로 정색을 하고 강의를 마친 뒤, 나는 이 웃긴 장면을 공유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스타 스토리에 나만의 비밀 사진을 올린 것이다. 속으로 '사람들이 공감하겠지?' 낄낄거리며 흐뭇해했다.


그리고 몇 시간 후.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스토리를 보여줬다. "나 이거 올렸어. 잘했지?"


남편은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큰일이 난 것처럼 말했다. "이걸 올리면 어떡해!".


나는 의아한 얼굴로 "왜? 올리면 안 돼?" 했고, 남편은 "사람들이 글밥 선생을 우습게 여기면 어쩌려고" 하며 걱정스러워했다.


나는 더더욱 의아한 얼굴로 말했다. "웃기면 좋은 거 아냐?". 나는 진짜 그랬다. 강사가 강의도 잘하는데 웃기기까지 하네? 그럼 좋은 거라고. 이미지 관리, 그런 것까지 해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만약 엉뚱하고 허술한 이미지 때문에 나의 유익하고 재미있는 강의를 무르는 기관이 혹시라도 있다면 저들이 손해라고 생각했다.


그런 믿음이 있다. 본질이 중요하다고. 한창 강사 일을 시작할 때 읽었던 책에 이런 내용이 있었다. '강사 일을 하려면 좋은 차를 타고 명품백 정도는 들고 다니는 게 도움이 된다'라고. 잘 나가는 강사처럼 보여야 또 제안이 들어오고 여기저기서 불러준다는 논리였다. 난 그 책을 읽고 '뭐 이런 게 다 있어!'하고 집어던졌지만, 내심 신경이 쓰였다. 내가 너무 외형에 신경을 쓰지 않았나 하는 생각. 그런데 그 생각은 얼마가지 않았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온다. 겉이 뻔지르르한 사람이 잘하면 본전이지만, 어수룩한 사람이 잘하면 반전 매력이 있다. 나는 잘할 자신이 있으니까 그 외에 것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나는 결국 남편 말을 듣고 인스타 스토리 사진을 내렸다. 남편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나에게 진심을 담아 걱정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얼마나 든든한 지. 계속 좀 말려줬으면 좋겠다. 








*짱구사진출처: 삐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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