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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Oct 17. 2023

엄마의 2천5백원짜리 스카프

그걸 보는 딸의 불안한 눈빛


지난 주말, 모처럼 우리 집에 놀러 온 엄마는 목에 두른 쁘띠스카프를 가리키며 자랑하듯 말했다.


"이거 2,500원짜리야! NC백화점에서 두 개 5천 원에 파는 거 있지. 예쁘지? 엄마는 이렇게 알뜰하게 산다~"


얼굴에 해맑은 미소를 띠는 엄마. 5천 원에 스카프 두 개를 득템한 게 신이 난 모양이었다.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샀다는 자부심도 포함되어 있었다. 스카프는 블랙&화이트에 강아지 패턴이 특정 브랜드를 연상시키는 나일론 재질이었다. 강아지가 지나치게 날씬하긴 했지만.


남편은 "와 그렇게 싸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는데, 정말 잘 사셨네요!"하고 비위를 맞췄지만,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 어색하게 웃었다.


왜인지 그날은 하루종일 마음이 불편했다. 그리고 다음 날 밤, 나는 자려고 침대에 누웠는데 뜬금없이 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나도 내가 왜 우는지 정확히 모르겠고, 이 눈물에 혹시 불순한 의미가 숨어있는 건 아닐까 부끄럽기도 했다. 목구멍에 힘을 주며 꾹꾹 눌러 참아봤지만 한 번 터진 수문은 닫기 힘든 법. 결국 남편에게 들키고 말았다. 남편은 갑작스럽게 흐느끼며 우는 와이프 때문에 적잖이 당황스러워했다.


"왜 그래! 갑자기 왜 울어, 무슨 일이야."

"... 엄마가...  2,500원짜리 스카프를 사고 자랑하는 게 왜 이렇게 속상한 지 모르겠어."

"... 아이고 효녀 났네, 효녀 났어."


새벽같이 출근하는 남편은 내 등을 두드리며 달래다가 곧 잠이 들었다. 나는 그 후로도 오래 울음을 멈추지 못했고 결국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휴지로 코를 펭- 풀고 세수도 하고 와서 다시 누웠다. 갯잇이 축축했다. 다시 슬퍼지려는  다독이며, 애써 웃긴 생각을 하며 겨우 잠이 들었다.


검소한 집안에서 자란 나 역시 값 비싼 명품이나 사치품에 큰 관심이 없다. 그런데 지난 생일 때는 처음으로 남편에게 30만 원짜리 명품 스카프를 선물로 사달라고 했다. 겨울철 목도리는 많아도 가을에 맬만한 점잖은 스카프가 하나도 없었고, 내 나이 정도면 명품 스카프 하나 정도 있어도 괜찮겠다 싶었다. 부드러운 실크 감촉에 기분이 들떴다. 아토피가 있는 목을 가리기에도 좋았다. 행여 올이 나갈까 조심스럽게 다뤘다.


스카프가 꼭 비싸야 할 필요는 없다. 엄마처럼 부담 없는 가격의 제품을 사서 마음 편히 쓰는 게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변명을 하자면, 2~3만 원짜리였으면 이렇게나 속상하지 않았을 것 같다. 나는 커피 한 잔보다 저렴한 그 스카프를 환갑이 한참 지난, 어깨가 구부정한 우리 엄마가 두른 모습이 왜 그렇게 슬픈지 모르겠다. 앞으로 좋은 옷만 입고 좋은 것만 먹어도 모자란 세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2,500원짜리 스카프를 매면서 딸의 이사 비용에 보태라며 아무렇지 않게 3천만 원을 보낸 엄마가 고맙지만 미웠다.


내 나이 정도면 좋은 물건을 써도 괜찮다고 합리화하면서 나보다 훨씬 나이 든 부모님 생각은 못했다. 그러고 보면 친정 옷걸이에는 싸구려 스카프가 제법 많이 걸려있었다. 쌀쌀한 새벽, 첫차를 타고 병원으로 출근하는 엄마에게는 허전한 목에 두를 스카프가 필요했던 것이다.


얼마 전 칠순 잔치를 치른 아빠는 나이 드는 건 여러모로 서러운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젊었을 때는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지금은 천천히 넘겨야 한다고, 안 그러면 사레들리기 십상이라면서 내가 건넨 물컵을 들고 물을 조심스럽게 마셨다. "눈썹도 빠지고 다리털도 빠지고 종아리도 얇아져. 내 마음은 똑같은데 거울을 보면 이상하다니까."하고 말했다.


시간이 조금만 천천히 갔으면. 내가 가진 사랑을 충분히 표현할 시간이 넉넉했으면 좋겠다. 가족이란 사랑을 내어주고 싶은 존재인가 보다. 그것이 물질이 되었건 마음이 되었건 조금이라도 더 좋은 것을 해주고 싶은 사람들. 나는 아이가 없으니까 내리사랑 하지 못하여 부모에게로 관심이 쏠리는 걸까.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 부부 노는 데만 집중하던 내가 언젠가부터 자꾸 내 뿌리를 돌아보게 된다.


또래 친구들은 자신은 못 입고 못 먹어도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좋은 거 사주려고 한다. 발레니, 바이올린이니 다른 아이들만큼 다양하게 가르치지 못하는 것을 속상해했고, 야근을 하면서 영어유치원비를 벌었다. 자신이 누리지 못한 것들을 해주려고 안달하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는 내 자식이 생겨도 그렇게 까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데 아이가 없는 나는, 요즘 나이 들어가는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그 마음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엄마에게 명품 스카프를 사드려야겠다고 했더니 남편은 그건 장모님을 위하기보다 내 만족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장모님은 도리어 부담 없이 편하게 물건을 쓰기를 좋아하시는 거라고. 그 말도 맞을 것이다. 어쩌면 엄마는 화를 낼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 멋대로일지라도 한 번쯤 그래보고 싶다. 환불을 못하게 영수증은 버렸다고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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