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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Jul 21. 2023

아토피 빵순이가 사는 법

둘 다 포기 못 해


나는 11자 복근이 있는 여자다. 근거 없는 복근은 없다. 주 3회 이상 운동을 챙긴 지 10년이 넘었으니까. 등산을 시작으로 클라이밍, 크로스핏, 달리기, 줌바, 요가, 필라테스 등을 하면서 체력과 근력을 키웠다. 문제는 뱃살도 만만치 않다는 점. 아랫배는 양손으로 잡으면 넉넉하게 잡힌다. 옆모습을 보면 짱구 볼살이나 외로운 둘리의 얼굴형이 떠오르기도 한다. 최대한 귀엽게 묘사했지만 그냥 똥배다. 엉덩이가 앞뒤로 달린 느낌이랄까. 복근과 똥배라니 과연 공생 가능한 관계인가.     

 

운동을 꾸준히 하는데 왜 뱃살이 많으냐 하면 그만큼 먹는다. 여전히 빵을 끊지 못했으며 ‘네가 아무리 빵을 먹어도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는 듯 주기적으로 입에서는 매운 음식이 당긴다. 특히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한’ 식단을 며칠간 지켰을 때는 반동 현상이 더욱 심했다. 라면, 매운 닭발, 떡볶이 같은 음식이 참을 수 없게 당기는 것이다(보통 이런 욕망이 한 번 머릿속에 생기면 먹어야 끝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술이 당기지 않는다는 것. 삼십 대 중반이 넘어가자 그렇게 좋아하던 맥주, 와인이 눈앞에 있어도 구미가 돋지 않는다. 누구 말대로 평생 먹을 수 있는 알코올양이 정해져 있는 건가. 그렇다면, ‘한국인의 매운맛’도 질리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글루텐 알레르기가 있다는 검사 결과지를 받아 들고는 믿고 싶지 않았다. 밀가루 음식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은 이미 예전에 알았고 게다가 나는 아토피까지 있으니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밥보다 빵이나 면을 더 좋아하는 나는 의도적으로 귀를 막았다.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음식을 계속해서 먹으면 몸이 가려운 것뿐만 아니라 소화 불량, 두통, 무기력증이 생긴다고 의사가 말했을 때는 입에 물고 있는 사탕을 빼앗긴 기분이었다.      


한 달 정도 빵을 참았나. 알레르기 반응은 모르겠고 우울감이 먼저 찾아왔다. 나의 검색어에는 꿈틀대는 욕망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검색어: 글루텐프리빵, 소화 잘되는 빵, 키토빵, 아토피빵, 쌀빵, 사워도우     


밀가루 알레르기의 주원인은 글루텐이니 글루텐이 안 들어간 빵을 먹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심사였다. 천연 발효종으로 천천히 만든 건강빵, 사워도우는 소화가 잘되니까. 아! 쌀빵도 있었지. 쌀은 글루텐이 적은 곡물이니 괜찮을 거야. 데굴데굴, 잔머리 굴러가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건강빵을 주변에서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걸어갈 만한 거리에는 모두 프랜차이즈 빵집뿐, 내가 찾는 빵은 팔지 않았다. 검색을 거듭한 끝에 인터넷으로 주문 가능한 ‘사워도우’ 전문 베이커리를 찾아냈다. 주문이 들어가면 반죽하고, 소량만 판매하기 때문에 배송받으려면 최소 일주일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아무렴, 빵을 먹을 수만 있다면!      


양팔로 감싸야할 만큼 커다란 사워도우 다섯 덩이가 마침내 집으로 도착했다. 그중 하나를 빵칼로 잘라서 3조각을 에어프라이어에 넣고 5분 동안 돌렸다. 고소하고 새콤한 향이 주방 가득 퍼졌다. 벌써 군침이 돋는다. 겉은 바삭, 속은 쫄깃한 사워도우에 버터를 듬뿍 발라서 한 입 베어 물자 행복이 우르르 몰려온다. ‘그래, 빵을 포기할 순 없지.’ 나는 소화 불량으로 명치를 쾅쾅 두드리며 살지언정 빵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밥이 주식인 우리나라는 빵을 간식으로 여기어 담백한 맛의 식사 빵을 찾기가 어렵다. 구하기 쉬운 빵은 대부분 설탕이나 크림이 듬뿍 들어간 디저트 빵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것은 내 흥미가 아니다. 나는 고소하고 담백한 빵을 좋아한다. 그나마 서울에 가면 식사 빵을 전문으로 하는 유기농 베이커리가 종종 있지만 갓 구워서 따끈따끈한 사워도우를 빵집에서 바로 사 먹기란 내가 사는 지역에선 불가능했다.     


내가 꿈꾸는 아침 풍경은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 에코백을 들고 도보 3분 거리의 빵집까지 걸어간다. 곡물 냄새가 가득한 빵집에서 갓 구운 사워도우를 한 덩이 산다. 빵이 담긴 종이봉투는 따끈따끈하고 고소한 냄새가 솔솔 올라오겠지. 집에서 내린 핸드드립 커피를 한 모금 마신다. 버터와 꿀을 바른 사워도우 위에 하몽을 한 점 올려 입속으로 넣는다(박수 소리 효과음). 글로벌한 식성을 못 말리겠다. 내 몸속에는 ‘한국인의 매운맛’과 ‘유로피안의 버터맛’이 함께 흐르는 듯하다.     


사워도우는 먹어도 크게 속이 불편하거나 가렵거나 하지 않다. 동물성 지방인 천연 버터를 거의 매일 한 조각씩 먹지만 콜레스테롤 수치는 정상이다. 오히려 안 먹었을 때는 낮았던 HDL(좋은 콜레스테롤) 수치가 정상 범위보다 위를 웃돌았다. 아예 안 먹는 것보다는 아토피에 좋지 않겠지만 이 정도로도 감사하다.   


한 손으로는 빵을 먹으며 한 손으로는 스마트폰 앱을 열어 플라잉요가를 예약하는 나. 복근 아래로 불거진 뱃살을 보며 ‘이게 나로구나’ 싶다. 좋아하는 운동을 충실히 하고, 좋아하는 음식을 충실히 먹었다. 하루하루 그 역사가 내 몸에 새겨졌다. 몸은 정직하다. 그 사람의 생활을 거울처럼 비춘다. 뿌린 만큼 거두기 힘든 세상인데 확고하게 정직한 것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은가. 그러니 오늘도 뾰로통한 뱃살을 양손으로 움켜잡고 절규하면서 복근이 사라질세라 운동 갈 채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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