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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Apr 29. 2019

내가 여행을 가면 왜 환율이 오를까?

모르면 대책 없이 당한다


우리는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을 안고 산다. 가령, ‘내일 중요한 야외행사가 잡혔는데 비가 오면 어쩌지?’, ‘이사를 갔는데 집값이 떨어지면 어쩌지?’, 심지어 ‘장시간 차를 타는데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으면 어쩌지?’(실제로 나의 지인은 화장실 공포증 때문에 장거리 여행을 포기했다고 한다)와 같은 걱정들로 말이다. 다행인 건, 상황은 어쩌지 못하더라도 최선의 예비책은 세울 수 있다. 우리에겐 ‘우천 시’라는 든든한 백업이 있고, 좀 돌아가더라도 막히는 고속도로 대신 화장실이 달린 열차를 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대책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사는 경우가 더 많다. 이렇게 머리는 편하고 손발이 불편하게 산다면, 그리고 그러한 삶의 태도가 나의 하루하루를 채운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가 안전벨트를 매는 이유

‘어떻게든 되겠지’, ‘아직은 괜찮겠지’하는 소극적인 태도는 역사적으로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르기도 했다. 특히 경제와 관련해서는 그 영향력이 어마 무시했다. 자본주의가 시작된 이후 ‘돈’은 우리의 일상 깊숙이 파고들어 우리의 삶을 움직여왔다. 그것의 속성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대공황, 하이퍼 인플레이션, 부동산 폭락 등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물론 이러한 커다란 위기가 자주 오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귀찮아도 안전벨트를 생활화하는 이유는 어쩌면 0.1%도 안 되는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사고(사건)는 아주 가끔 찾아오지만 그 영향은 죽음에 이를 만큼 강력하다. 다행히도 우리에겐 ‘역사’라는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으로 경제적 안전벨트를 동여맬 수 있다. 사학과 출신 경력 27년 이코노미스트 홍춘욱 박사의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가 그 든든한 안전벨트가 되어줄 것이다.      




독서모임 씽큐베이션 다섯 번째 책


인간VS기계 더 값싼 노동력은?

책에 나오는 ‘국가의 경제적 위기가 오는 원인’들은 참 다양했다. 정부나 은행이 제대로 된 정책을 펼치지 못했을 때, 홍수나 가뭄과 같은 기후 변화, 심지어 인구 증가도 영향이 있었다. 나는 그동안 중국과 인도처럼 인구가 많으면 강력한 국력을 가질 수 있겠구나 하고 단순하게 생각해왔었다. 실제로 산업혁명 이전에는 중국이 서구보다 더 잘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급격한 인구폭발은 오히려 혁신의 장애물이었다. 책에는 인구가 과잉이 되면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경제적 현상을 풀어놓았다. 땅은 일정한데 인구가 늘어나면 땅을 개간하게 되고 토양이 황폐화된다. 인구가 많아지다 보니 1인당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줄어든다. 최저 생존비 수준의 저 임금 노동력 확보가 쉬워진다. 그러다 보니 인건비가 높은 영국처럼 '인건비를 아껴주는 기계 발명'이 절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렇듯 돈에 따라 '혁신'에 대한 니즈가 움직인다는 사실은 서글프지만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돈'은 단순한 가치교환수단이 아닌 인간을 '행동하게 하는' 원동력임을 증명하기도 한다. 


인구가 많아진 이유는 빵이 아닌 쌀밥을 먹어서다?

국력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인구압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그러면 유럽은 왜 동아시아보다 인구압이 낮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내용이다. 유럽의 주식(主食)인 밀은 동양의 쌀보다 생산성이 훨씬 낮다고 한다. 그 이유는 밀과 호밀, 곡물의 특성 때문이다. 밀농사는 지력(토양 내 영양분)을 많이 떨어뜨려 생산성이 떨어지는 반면, 벼농사는 2 모작, 3 모작도 가능하다. 밀농사는 흉년이 2~3년만 지속돼도 수확량의 비율이 줄어 아사자(餓死者)가 나온다고 한다. 사람들이 먹는 주식(主食)이 무엇인지에 따라(물론 기후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인구 증가량이 변화하고, 더 나아가 국력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이 재미있지 않은가!



배신은 돈의 생명력을 죽인다

책은 또, 오늘날 ‘금융은 신뢰다’라는 보험광고 같은 카피의 근거를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들어 조목조목 소개한다. 과거, 영국과 프랑스의 국내총생산이 28% 차이가 났음에도 불구하고, 자본시장 규모는 영국이 9배나 높았다고 한다. 영국 정부는 명예혁명 이후 지속적으로 금융시장 참가자의 신뢰를 쌓은 반면, 프랑스는 존로의 '미시시피 회사 사건'(국민을 상대로 왕실 인사들이 주식 뒤통수를 친 일)에서 보듯 대중의 신뢰를 번번이 저버렸다. 그 결과 대부분 프랑스 사람들은 귀금속을 시중에 유통하는 대신 침대 밑에 보관했다고 한다. 영국이 프랑스와 달리 압도적인 금융시장 만들 수 있었던 배경이다. 돈은 지금도 그렇듯, 침대 밑이 아닌 은행에 예치되거나 시장에 나와야 스스로 생명을 가질 수 있다.


내 돈은 내가 지킨다!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깨졌을 때 나타는 대표적인 현상, 뱅크런은 나도 경험한 바가 있다. 2011년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 때였다. 나는 당시 작가 일로 번 푼돈을 조금이라도 불려보고자 금리가 높은 저축은행에 예금을 맡겼었다. 갑작스레 터진 소식에 황급히 은행을 찾아갔다. 은행 안은 이미 고성을 지르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나는 몇 시간을 기다린 끝에 원금을 찾아왔다. 물론 5,000만 원 미만이라 예금자보험을 받을 수 있었지만, 내 돈이 모두 증발되는 건 아닌지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러한 일이 터졌을 때, 대중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국가에 대한 불신으로 모두가 은행에서 한꺼번에 돈을 인출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이미 1929년 미국의 대공황으로부터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 당시 미국 은행들의 줄이은 파산, 소비와 투자 심리가 위축된 그 피해는 30년 넘게 지속됐다고 한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만약 그런 사태가 다시 벌어진다면? 과연 정부나 금융기관이 얼마나 신박한 정책을 갖고 있을지 난 모르겠다. 


무지한 내가 미국 환율을 올렸다!

나는 가족여행을 앞두고 한 달 정도 달러 환율 변화를 관찰했다. 몇 푼 안 되는 돈을 환전하지만 최대한 손해를 덜 보고 싶었다. 그러다 며칠 방심한 사이 달러 환율이 확 올라버렸다. 다행히 최고점에서 교환하는 불행은 막았지만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무지함과 안일함 때문이다.      

자료를 좀 찾아보니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US Dollar Index)는 미국의 경제가 호조일 때 치솟는다고 한다. 미국의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3.2%로, 전망치였던 2.5% 보다 크게 올랐다. 반면 달러 인덱스를 구성하는 주요 6개국(유로, 캐나다, 일본, 스위스, 영국, 스웨덴) 가운데 3개국의 경제지표가 부진했다고 한다. 만약 큰 금액의 환전이 필요한 상황에 이러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 사실만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셈이다.


나는 겁도 없이 주식시장에 투자했다가 반 토막이 난 ‘돈알못’이며, 부끄럽지만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게 쉽지 않았다. 특히 세계사에 젬병인 나는 처음 들어보는 전쟁과, 가문과, 위인의 이름들에 멘탈이 붕괴될 지경이었다. 그래도 피하고 싶진 않았다. 언젠가는 알아야 할 것이고, 그날이 지금 왔다고 생각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슬쩍 넘어가고, 궁금한 부분은 인터넷 검색을 해가며 한 줄 한 줄 진도를 나갔다. 그 결과, 여전히 나는 '돈알못'이고 역사 무지렁이지만 ‘세계 경제 흐름의 원리’라는 중요한 지식이 전반적으로 나의 뇌를 훑어준 느낌이다.


국제유가가 상승하면 연비 좋은 소형차 인기를 끈단다. ‘돈’은 우리의 행동양식을 결정한다. 돈의 역사를 아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일이 아니다. 나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다. 부자가 되는 것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최소한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가 그 지침서가 되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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