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울린다

나를 발견하는 시 쓰기

by 글밥 김선영

어울린다 / 글밥



너에게는 한낮 열기가 가라앉은 해질녘이 어울린다

기지개 한 번 펴고

이제서야 시작해 볼까


너에게는 도타운 머그잔이 어울린다

두 손 가득 전해지는 향기로운 온기에

척추까지 녹아버린


너에게는 6월이 잘 어울린다

여린 새순 초록이 깊어지고

장미가 새콤한 향을 끌어올리는


너에게는 금요일이 잘 어울린다

피니쉬 라인을 목전에 둔 마라토너처럼


너에게는 창밖이 보이는 우드슬랩이 어울린다

기계식 키보드의 탱탱한 탄력이


나는 푹신한 소파와 뮤지컬의 리듬,

포근한 이부자리를 찾고 있다. 너에게 어울리는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끌어안고 지나간 어제를 밀어낸다


네 손에는 매끈한 자두가

네 영혼에는 잡념을 깎아내는 과도가 어울린다


너에게는 한 권의 책이

나에게는 빈 노트가 어울린다.

해질녘 연보라빛 하늘 아래 피어오르는 커피가




*아래 진은영 시인의 시 '어울린다'를 나에게 맞춰 고쳐 써본 시다.




[원래 시]



어울린다 / 진은영


너에게는 피에 젖은 오후가 어울린다

죽은 나무 트럼펫이

바람에 황금빛 소음을 불어댄다


너에게는 희망이 어울린다

식초에 담가둔 흰 달걀처럼 부서지는 희망이


너에게는 2월이 잘 어울린다

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


너에게는 토요일이 잘 어울린다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리던


너에게는 촛불 앞에서 흔들리는 흰 얼굴이 어울린다

어둠과 빛을 아는 인어의 얼굴이


나는 조용한 개들과 잠든 깃털,

새벽의 술집에서 잃어버린 시구를 찾고 있다. 너에게 어울리는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네 손에는 끈적거리는 달콤한 망고들

네 영혼에는 망각을 자르는 가위들이 솟아나는 저녁이 어울린다


너에게는 어린 시절의 비밀이

나에게는 빈 새장이 잘 어울린다

피에 젖은 오후의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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