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의 환장 스토리
요리를 하기가 귀찮아 배달앱을 열었다. '오호, 점심에도 치킨을 파는구나.' 나는 신중하게 후라이드를 시킬지, 핫후라이드를 시킬지 고민하고 있었다. 갑자기 스마트폰 화면에 동생 이름이 떴다. 연년생인 남동생과 나는 1년에 한두 번이나 통화를 할까 말까 할 정도로 연락이 드문사이다.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친하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생일 때면 축하 인사와 기프티콘을 챙기는 정도의 평범한 남매랄까. 각자 가정을 꾸린 후 사는 곳도 멀어 보기가 쉽지 않다. 가끔 얼굴을 보면 무척 반가운 나의 동생이,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전화를?
"누나 지금 어디야?"
"나? 집이지."
"아우씨, 엄마 보이스 피싱 당한 것 같아!"
동생의 흥분한 목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까 엄마랑 잠깐 통화했는데 무슨 현대카드에서 배송이 잘 못 왔다고 하면서 고객 정보가 유출된 것 같다고, 자기네들이 보안설치를 해준다고 했는데 시키는 대로 다 했대. 계좌번호나 비밀번호는 아직 안 알려준 것 같은데, 그거 이미 해킹프로그램 깔리면 정보 다 볼 수 있거든."
올 게 왔구나. 항상 불안하긴 했다. 요즘 AI 때문에 어르신들께서 더욱 속기 쉬운 환경 아닌가. 그래서 엄마, 아빠를 만날 때마다 나름대로 교육(?)을 했는데 기어이 이런 날이 오고 말았구나! 나는 머리가 새하얘져서 바보 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 돼?"
"일단 엄마한테 경찰서에 전화하라고 하고 끊었는데, 엄마가 계속 통화 중이네. 집이면 내가 가보려고 했는데 병원에서 일하고 계시대. 아씨 그놈들이 뭐 시켜서 지금 현금 뽑고 있는 거 아니야?"
하필 엄마가 출근한 날이었다. 통화가 안 된다는 말에 나도 점점 불안이 몰려왔다.
"경찰이랑 통화하고 있겠지. 나도 연락해 볼게."
동생말대로 엄마는 통화 중이었다. 나는 급한 대로 엄마에게 카톡을 남겼다.
엄마, 이상한 전화받았다며. 보이스피싱이니까 일단 스마트폰에 비행기 모드를 켜. 그 사람들이 엄마 핸드폰에 있는 정보 못 보게 하는 방법이거든. 그리고 가까운 경찰서로 가야 해.
나는 보이스피싱 대처법을 검색해 카톡을 보내놓았고 숫자 1이 없어지기를 기다렸다. 다시 동생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은 한층 더 격앙된 목소리였다.
"엄마랑 연락 됐어? 아, 왜 계속 통화 중이지? 아무래도 그놈들이 엄마한테 뭐 시키고 있는 거 같아, 불안해 죽겠네."
"네가 엄마한테 보이스피싱인 거 같다고 언급했다며, 그러면 엄마도 정신 차리고 그다음 스텝까지는 안 갔을 거야."
"누나가 몰라서 그래! 그거 사람 홀리면 돈 빼가는 거 순식간이야. 내 친구도 멀쩡한 애가 뭐 홀린 듯이 자기 저축까지 깨고 거기다 대출까지 해서 거의 2억 사기당했어. 걔 그거 빚 갚느라고 5년 동안 엄청 고생했단 말이야. 젊고 똑똑한 사람들도 그냥 정신 빼버리면 홀린다니까."
동생의 흥분에는 이유가 있었다. 처음엔 별일 아니겠지 했던 나 역시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노후를 위해 평생토록 쉬지 않고 모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사라질까 봐 가슴이 오그라들었다.
"내가 비행기 모드 일단 켜라고 카톡 보내놨어. 어? 방금 1이 사라졌다. 엄마가 카톡 읽었나 본데?"
동생은 엄마에게 연락해 본다며 전화를 바로 끊었다. 그리고 몇 초 후 다시 전화가 왔다.
"아...... 큰일 났어! 전화가 아예 꺼져버렸어!! 그놈들하고 어디 이동하고 있는 것 같아. 엄마 병원이라도 찾아가야겠어. 안 되겠어."
"뭐? 전화가 아예 꺼졌다고?"
나는 아연실색하며 전화를 끊었고 동생 말대로 엄마의 전화기가 꺼져있음에 절망했다. 계좌 거래 차단과 대포폰 개설 방지 하는 방법을 검색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몇 분 후, 혹시나 하며 다시 한번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엄마!"
"어, 지금 경찰 아저씨 만났어. 끊어."
휴 살았구나. 동생의 신고로 경찰이 엄마가 있는 곳까지 출동한 모양이다. 나는 얼른 이 사실을 알리려고 동생에게 전화했다.
"엄마 통화 연결됐는데 경찰 만났대! 생각해 보니 비행기 모드라서 전화가 안 됐던 건가 봐.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아!"
동생은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 근데 진짜 경찰은 맞아?"
경찰로 위장한 범죄자일수도 있다는 생각까지는 미처 하지 못했다. 한 번 시작된 의심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다행히 우려는 현실이 되지 않았다. 엄마는 경찰을 만나 상황 설명을 했고, 경찰은 엄마 스마트폰에 깔린 해킹프로그램을 제거하고 모든 금융에 출금이 되지 않도록 조치를 해줬다. 폰은 포맷하는 게 안전하다고 했다. 다행히 빠르게 조치한 덕에 피해 보지 않은 거라며 경찰이 천만다행이라고 했단다. 이 모든 과정을 엄마 직장 앞까지 찾아갔던 동생에게 듣고 해프닝은 마무리되었다. 그렇게 남매는 한 시간 동안 벌벌 떨었고, 엄마는 엄마대로 정신이 쏙 빠져 진땀을 빼고 있었다고 한다.
상황이 마무리되어도 떨리는 마음은 쉽게 진정되지 않았다. 반도 못 먹은 치킨을 밀폐 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집어넣었다.
오늘의 사건을 정리할 겸 동생과 나누었던 문자들을 처음부터 다시 차근차근 읽어보았다.
급한데 생각 나는 게 누나밖에 없더라
마지막으로 보낸 카톡을 읽는데 눈가가 찌르르했다. 엄마가 보이스피싱을 당한 거 같다는 말에 "그럼 어떻게 해야 해?"라고 되묻는, 보탬이 안 되는 누나를 떠올리다니. 그래도 가족에게 위기가 닥치면 하나뿐인 누나가 떠오르는구나. 나 같아도 그렇겠지. 서로 의지할 형제지간이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새삼 왜 그리도 안도가 되면서 훈훈하게 느껴지던지. 나는 그 카톡을 자꾸만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동생이 나를 갑작스레 찾은 적이 한 번 더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그때는 서로 미혼이라 친구들이랑 어울리느라 지금보다 더 서먹한 사이였는데. 동생이 뜬금없이 나보고 술 한잔 하자고 했었다. 이 녀석 술먹고 무슨 사고라도 친 건가. 불길한 기운이 엄습했다.
내가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던 동네 작은 호프집에서 우리 남매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둘이 술을 마셨다. 맥주 500 두 잔과 구운 노가리를 앞에 두고 동생은 심각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결혼해야 할 것 같다고. 당시 동생은 직장은커녕 대학교도 졸업하지도 않은 풋내기였다. 여자친구가 임신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동생의 앞날이 걱정되면서 억장이 무너졌고 우선 부모님께 빨리 알려야 한다며 계획을 세웠다. 다행히 양가의 매끄러운(?) 허락으로 둘은 결혼해서 셋째까지 낳고 지금껏 알콩달콩 잘 살고 있다.
그러니까 15년 전 위기촉발의 그날도 동생은 나를 먼저 떠올렸었다.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는 철부지 같은 누나를. 평소 연락은 하지 않아도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떠올리고 의지하는 사이. 그래서 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힘들어하면서도 둘째를 생각하나 싶다. 소중한 아이가 힘든 일이 생겼을 때 함께 의논할 수 있는 동료가 있었으면 하는 것 아닐까? 아주 먼 훗날의 이야기겠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부모님을 잃게 될 때도 그 슬픔을 똑같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둘 뿐일 테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남동생과의 추억들이 퐁퐁 떠올랐다. 커다란 고무대야에 들어가 물놀이를 했던 일, 동네 꼬마들이랑 편을 먹고 팽이치기를 하던 일, 둘이 오락을 하다가 팩을 던지면서 싸운 일, 일하러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라면을 끓여 먹은 일...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귀엽고 보물 같은 기억들.
남매의 우애를 다시금 떠올리게 해 준 보이스 피싱범에게 감사 인사라도 전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건 아닌 것 같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