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밥 Jul 04. 2019

매일 로봇청소기와 싸우는 여자

매일 진다


우리 집에 내 화를 돋우는 녀석이 있다. 바로 로봇청소기다. 우리 부부가 둘 다 출근을 하던 때 녀석을 장만했다.

  

주말만 청소를 하니 집에 먼지가 허옇게 내려앉는 게 눈에 들어왔다. 게다가 나는 머리카락이 어마어마하게 빠지는 스타일이고, 남편은 깔끔을 어마어마하게 떠는 스타일이었다. 결혼을 할 때 친구들이 선물로 사준 무선청소기가 있었지만 힘이 약했다. 20분 돌리면 배터리가 나갔다. 청소는 최소 1시간 이상 걸리는데 말이다. 하지만 고가인 데다 아직은 필수가전이라는 인식이 낮아 ‘로봇청소기’를 사자는 남편의 말을 몇 달 간은 무시했다. 그러다 남편이 회사에서 로봇청소기를 거의 반값에 판다는 희소식을 전했다. 스크래치 난 제품을 직원에게 싸게 판다는 것이다. 우리는 드디어 청소노동에서 해방됐다며 기쁨의 박수를 쳤다. 우리 집 행복을 ‘MAX’까지 끌어올리길 바라며 이름을 ‘해피맥스’라 붙였다.     


처음부터 내가 녀석을 미워했던 건 아니다. 우리가 회사를 다녀오면 얌전히 제 자리에서 초록빛 ‘완충 LED’를 반짝이며 먼지를 한 움큼 머금고 있는 녀석이 기특했다. ‘이게 바로 4차 산업혁명시대의 삶이로구나~’ 하고 감탄했다. 유독 먼지를 많이 먹은 날엔, “호이구~ 그렇게 먼지가 많아쪄요?” 하고 쓰담쓰담해줬다. 현관에서 신발들과 뒤얽혀 방전된 채로 발견되는 날도 있었지만 가끔이라 그러려니 했다.     


녀석과 사투를 벌이기 시작한 건 내가 재택근무를 시작하면서부터다. 오전 10시면 어김없이 밝고 명랑한 소리로 “예약 청소를 시작합니다.” 하며 발동을 거는 녀석. 처음엔 그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고요한 집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굵은 남자 목소리에 머리털이 쭈뼛 섰다. 냉큼 설정을 여자 목소리로 바꿨다.     


하지만 ‘그 여자’ 역시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우선 너무 요란했다. 그녀가 청소를 시작하는 시간에 나는 보통 일을 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팠다. 마치 내가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청소 중지 버튼을 누르면 되지만 왠지 지기 싫었다. 대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귀에 ‘소음 필터’를 끼워 청소기 소리만 걸러내려고 노력했다. 한 시간 동안 소음을 버티면 청소를 마친 그녀는 제 자리로 찾아갈 테니. 그러면 나는 왠지 이긴 기분이 들었고 안심이 됐다.     


그런데 요즘 들어 사춘긴지, 갱년긴지(나는 그녀의 정확한 나이를 알지 못한다) 그녀가 자꾸 돌발행동을 한다.     

“띠리리~ 청소기를 다른 곳으로 옮겨주세요!”     

하며 계속해서 나를 부른다. “네가 좀 알아서 찾아가면 안 되겠니!”. 한두 번 그러다 말면 그냥 둘 텐데 옮겨줄 때까지(배터리가 방전될 때까지) 자기주장을 펼친다. 그러니 일에 집중해있다가도 두 손 들 수밖에 없다. 그녀가 원하는 ‘올바른’ 곳으로 손수 모셔드려야 한다. 황당한 건 구석이나 틈새에 갇혀서가 아니라는 점이다. 멀쩡한 거실 한복판에 멈춰 서서는 어서 다른 자리로 옮겨 달라고 떼를 쓴다. 몇 센티 들었다 놓으면 아무 일도 없었단 듯 다시 청소를 시작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1시간 안에 연달아 일어날 때가 있다. 그럴 땐 내 방에서 일하다 말고 거실로 뛰쳐나와 두세 번씩 옮겨줘야 했다. 나는 급기야 내 말길을 알아들을 턱이 없는 그녀에게 버럭 화를 냈다. “하지 마, 하지 마, 그냥 청소하지 마!” 나는 그녀를 힘껏 들어 올렸다가 신경질적으로 내동댕이치지는 못하고 살짝 내려놓았다. 그리고 한 대 내리친다. 역시 내 손만 아프다.     


내가 그녀와 한판 한 것을 알 리가 없는 남편. 그가 퇴근해 돌아오면 나는 하소연을 시작한다. “해피맥스 정말 똥멍청인가봐. 멀쩡한 데서 멈춰서는 계속 자리 옮겨 달라하고, 시끄럽기는 또 얼마나 시끄러운지!”     


그러면 남편은 자상한 목소리로, “그래도 저 먼지 먹은 것 좀 봐. 얼마나 일을 열심히 했어. 가끔 쉬고 싶은 날도 있겠지.” 한다. 실제로 먼지주머니 안은 하루걸러 비워줘야 할 정도로 항상 가득 차있다. ‘우리 집에 먼지가 저렇게 많았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놀랍다. 그러고 보니 그녀의 까만 몸체 상판에 희뿌연 먼지들이 이불처럼 덮여있다. 열심히 안방 주방 거실을 청소하고 돌아다니느라 날리는 먼지를 뒤집어쓴 것이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듯 그녀도 제 몸에 쌓인 먼지는 청소하지 못했다. 행주로 그녀를 닦아줬다. ‘너도 고충이 많지.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을 텐데.’ 나는 고약한 마음을 가라앉혀본다.     


내일이면 분명 또 그녀와 한 판 할 것을 안다. 그렇게 애증의 동거를 얼마나 지속해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이제 무거운 청소기를 들고 집안을 돌며 청소할 자신이 없다. 나는 이미 그녀의 치명적인 매력에 빠져버렸다. 벗어나기엔 너무 늦어버린 듯하다.

 

작가의 이전글 네? 갑질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