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처럼 포근한 우리 엄마
시골에 계신 시어머니가 감자를 한 상자 보내주셨다. 이 많은 감자를 어떻게 다 먹을까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래, 찌자.’
내가 어릴 적 엄마는 여름이면 반짝반짝한 스테인리스 냄비에 감자를 푹 쪄서 간식으로 주시곤 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감자에 젓가락을 푹 찔러서 벌리면, 감자는 무방비 상태로 무너져 버렸다. 나는 꼭 껍질을 벗겨서 쪄달라고 엄마에게 요청했는데 별미 부분을 즐기기 위해서다. 감자가 냄비에 닿았던 부분은 살짝 타서 갈색으로 변한다. 소금의 짭짤한 맛이 농축돼서 감자과자 맛이 났다.
나는 감자를 좋아한다. 과자도 감자과자를 가장 좋아하고, 고구마와 감자 중에 고르라면 1초의 망설이 없이 감자다. 감자는 특별한 ‘맛’이 있다기보다는 ‘감성’으로 먹는달까. 차분하고 평온하며, 무엇보다 포근하다. 감자를 먹을 때면 어릴 적 추억이 떠오른다. 특별한 일도 아닌데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쯤이다. 우리 집은 쾌쾌한 반 지하였다. 그날은 장마기간이라 더욱 어둡고 습했다. 엄마는 슈퍼마켓 판매사원 일을 마치고 이제 막 집에 돌아왔고, 나는 내 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식물도감 전집이었다. 나는 ‘식물이름 알아맞히기’라는 희한한 교내대회에서 1등을 할 만큼 어릴 때부터 식물에 관심이 많았다. 식물도감에는 알뿌리 식물, 식충식물 등 신비로운 이야기가 고화질 사진과 함께 담겨있었다. 나는 그날 ‘감자’ 편을 읽고 있었다. 나는 감자를 맡겨놓은 사람처럼 엄마를 큰 소리로 불렀다.
“나 찐 감자 먹고 싶어! 소금 넣어서 짭짤하게.”
마침 감자가 제철이었다. 엄마는 씻지도 못한 채 감자 껍질부터 까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머리를 감았다. 선풍기에 달라붙어 개운하게 물기를 말렸다. 덜 마른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책상에 앉아 읽다 만 ‘감자’책을 다시 펼쳤다. 감자로 실험하는 장면이었다. 보라색 잉크가 담긴 샬레에 반을 자른 감자를 엎어놓자, 잉크를 빨아들여 거미줄 같은 혈관이 생겼다. 그저 입속의 감자였는데, 갑자기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참으로 신기했다. 초록색으로 변한 감자 싹에는 독이 있다는 무서운 말도 나와 있었다. 수건으로 감싼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엄마가 찐 감자를 들고 방으로 들어오셨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감자의 유혹에 섣불리 넘어가면 위험하다. 알고는 있지만 매번 혀를 데었다. 후후- 불어서 뜨거운 감자를 입안에 넣고 혀로 이리저리 굴렸다.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절대로 뱉을 마음이 없다. 엄마는 그런 내가 우스운지 웃었다.
“천천히 먹어라.”
남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며 감자를 음미했다. 감자를 읽으면서 감자를 먹으니 맛이 더욱 좋았다.
나는 시어머니가 주신 감자를 삶아보기로 했다. 엄마가 알려준 대로 냄비에 감자가 잠기도록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거의 사라질 때까지 약불로 뭉근히 익혀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난 성격이 급한 사람이다. 삶은 계란 노른자가 물처럼 흘러내려 다시 끓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란 말씀.
아무리 기다려도 물이 줄지 않는다. 몇 번씩이나 뚜껑을 열었다 닫았다 반복하며 젓가락 찌르기 신공을 반복했다. 젓가락이 쑤-욱 들어가길 기대했지만 여전히 돌처럼 단단했다. 감자는 점점 곰보가 되어갔다. 감자를 삶은 걸 후회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드디어 파근파근한 찐 감자가 완성됐다. 어릴 적 추억이 떠올라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엄마 생각이 나서 문자를 보냈다.
- 엄마, 감자 찌는데 원래 1시간이나 걸려?
- 응, 그게 원래 오래 걸린단다.
엄마가 쪄 주는 감자만 덥석덥석 먹던 나는 감자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 엄마 품처럼 포근한 찐 감자를 만나려면 생각보다 오랜 기다림이 필요했다. 시원하게 머리를 감고 감자를 먹으며 책을 읽던 소녀. 부엌에는 땀에 절어 씻지도 못한 채 불 앞을 지키던 엄마가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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