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왜 유통기한 지난 음식을 방치할까
참고로 딸은 매의 눈이다.
유통기한과 섭취 기한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유독 깐깐하게 구는 편이다.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을 먹고 크게 배탈이 난 적도 없는데 독이 든 양 하루 이틀만 지나도 내다 버리기 바빴다. 돋보기를 든 탐정처럼 주기적으로 냉장고를 뒤져 녀석들을 색출하곤 했다.
결혼 전에는 냉장고 속에 통 관심이 없었다. 냉장고는 오로지 엄마만의 신성한 영역이었고, 나의 영역은 그 안에서 꺼낸 각양각색의 김치와 반찬으로 차려진 식탁이었으니까.
결혼을 하고 나니 달라졌다. 친구 집에 놀러 가도 '이 집은 뭘 먹고사나' 궁금해져 허락을 받고 냉장고 문을 열어보곤 했다. 친정집 냉장고도 마찬가지다. 한 달에 한두 번 친정에 갈 때마다 부모님의 영양상태(?)를 점검할 겸 '엄마 이건 뭐야?'를 연발하며 냉장고 속을 관찰했다.
그러다 눈에 들어온 깔라만시 원액.
"엄마! 이거 아직도 있네? 갖다 준 지가 언젠데"
깔라만시가 한참 유행하던 시절, 아마도 여름이겠지. 그러니까 내가 결혼하기 전 협찬 방송을 할 때 집으로 데려온 아이니 3년은 됐으려나. 들어보니 묵직한 게 반 이상 남아있었다.
안방에서 TV를 보던 아빠가 일러바치듯 한 소리 한다.
"거 내한테 자꾸 물에다 타 무라카든데? 딸내미가 갖다 준 거 좋은 거라꼬, 저는 안 묵고."
당황한 엄마. 갑자기 냉장고 문을 황급히 닫으려 한다. 수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딸 탐정이 출동할 차례! 역시나 화석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2년 지난 오뚜기 딸기잼? 아웃! 6개월 지난 자유시간과 1년 지난 두유 까지. 나는 어느새 탐정에서 백종원 선생님으로 변신하였다. "어머님, 이러면 안 돼유. 진짜 큰일 나유."
그때 냉장고 문 위칸에 납작하게 누워있는 노란 뚜껑이 달린 케첩이 눈에 띄었다. 어디 보자, 유통기한이.. 2013년? 설마, 2018년이겠지. 미간에 힘을 줘 희미하게 새겨진 날짜를 다시 확인했지만 2013년이 분명하다.
마치 어제 사온 냥, '내가 바로 토마토다' 싱그러운 새빨강을 자랑하는 케첩. 케첩은 죄가 없다. 나는 이를 방치한 범인에게 죄를 물어야 했다.
"엄마! 이거는 유통기한이 2013년 1월이야!"
"어머, 그래? 그거 먹지는 않았어. 유통기한이 어디 쓰여있니?"
"엄마. 7년 전이면 나 결혼하기 전, 아니 수헌이(조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어!"
엄마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배꼽이 빠져라 낄낄거렸다. 뭐가 그리 우스운지, 눈물이 찔끔 나도록 웃는 엄마를 보니 황당해서 나도 웃음이 터졌다. 모녀는 그날 두팔을 걷어붙이고 냉장고 청소를 했다.
가끔 시어머니께서 챙겨주신 간편 조리식품 유통기한이 지난 것을 보고 의아해하곤 했다. '왜 유통기한 지난 것을 주시지'. 눈치 없는 며느리는 이제야 알았다. 눈이 침침하셔서 유통기한을 읽기 힘들었던 거다. 노안이 오지 않은 나조차 인상을 찌푸려야 겨우 알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어린 딸은 엄마가 필요했는데 늙은 엄마도 딸이 필요했다. 모녀지간에는 유통기한이 없으니 다행이랄까. 부모님의 건강을 위해서라도 수시로 냉장고를 털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