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상하다는 말이 무서울까
나는 늙어도 괜찮은데
지난 일요일,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너네 아빠가 좀 이상해."
"... 왜!"
부모님이 연세가 드시니 '이상하다'는 말이 가장 무섭다.
"며칠 전부터 자꾸 다리에 힘이 없다고 하더니, 등산 갔다가도 헛다리 짚을 뻔하고, 어제는 자전거 타러 나갔다가 이상해서 또 돌아왔다는 거야."
"다리가 이상하다고?"
"응. 오른쪽 다리가 힘이 쭉 빠져서 걷기가 힘들다네. 오늘은 더 심해졌대."
육체노동을 많이 한 노인에게 찾아오는 '척추협착증'이라고 확신했다. 허리디스크 수술 경험이 있는 나는 허리 질환에 빠삭했다. 허리디스크나 척추협착이 오면 다리로 지나가는 신경이 눌려 다리 마비 증상이 오는 걸 알고 있다. 게다가 건강 프로그램 작가로 3년 넘게 일하면서 웬만한 의학지식은 섭렵했다고 자부했다.
아빠는 젊었을 때부터 일명, 노가다라고 불리는 막일을 오랫동안 하셨다. 육십 대 후반인 지금은 격한 노동은 못하지만 설비 기술로 동네에 수도나 보일러가 터지면 어김없이 달려가 해결한다. 아직 현역으로 활동중이지만 연세가 드시면서 허리 통증을 자주 호소했다. 몇 년 전에도 '뼈주사'를 맞고 겨우 통증을 잠재웠던 바.
혹시 모르니 아빠 증상을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허리 질환과 함께 '뇌졸중'이 떴다. '에이, 이건 아니지' 우리 아빠가 누구던가. 군살 하나 없이 날렵한 몸매, 요즘은 자전거에 빠져 수십 킬로미터 왕복을 할 만큼 건강체다. 고혈압이니 고지혈, 당뇨같은 성인질환도 없고 풀없이 밥을 드시지 않을만큼 채식을 즐기신다. 물론, 술을 그보다 더 즐기긴 하지만.
"엄마, 혹시 말이 어눌하거나 머리가 아프진 않대?"
"응. 입은 멀쩡해. 어찌나 잔소리를 하는지. 다리만 힘이 풀린다네"
엄마는 주말 근무를 하고 있었고 나는 허리 질환이 그렇게 급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는 내일 아침에 쉬는 날이니 아빠를 모시고 병원에 가보겠다고 했다. 친정과 두 시간 떨어져 사는 나는 그러려니 했다. 척추협착증으로 진단이 나올 테고 간단한 시술, 혹은 수술이 필요하겠거니 했다. 안일한 대처였다.
다음 날 아침,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동네병원에 갔는데 대학병원으로 빨리 가라고 해서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건강한 분이 갑자기 이렇게 되는 경우는 저희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응급실로 가세요'라고 했단다.
그때부터 내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정말 뇌 쪽인가? 파킨슨병? 루게릭병? 나는 비슷한 증상을 지닌 병명을 폭풍 검색하며 최악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렇게 건강하던 우리 아빠에게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거지.
검사 결과는 충격적이게도 뇌경색.
뇌경색은 일분일초라도 더 빨리 병원에 가야 하는 병이다. 골든타임이 4시간이라고 했다. 그런데 벌써 며칠이 지난 건가. 증세가 나타난 지 3-4일은 족히 되었다. 후유증을 검색해보니 사지 마비와 언어장애가 나온다. 나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거 같았다.
더욱 최악은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판정을 받아야 입원할 수 있다고 했다. 아빠와 엄마는 응급실에서 코로나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또 반나절을 기다렸다. 그날 밤 9시가 돼서야 중증환자 치료실에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약물치료를 받게 됐다. 다행히 수술이 필요한 정도로 심각한 상태는 아니라고 했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 외에는 병원 출입이 안 된다고 해 나는 아직 아빠를 보지 못했다. 전화기 속에서 아빠는 밥도 잘 먹고 말도 잘하고 괜찮다고 했지만 목소리에 기운이 없었다. 괜찮다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우리 엄마도 아빠도 다 괜찮다는데 나는 눈물이 났다.
얄팍한 지식으로 병을 속단한 나 자신이 한심했다. 일요일이라도 바로 응급실에 갔으면 후유증이 덜할 텐데.. 자전거와 오토바이를 타는 우리 아빠가 절룩거리는 모습이 상상이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새다리처럼 얇은 허벅지를 손으로 탕탕치며 '요즘 자전거를 탔더니 근육이 많이 붙었다'라고 자랑했는데.
나는 아직까지 나이가 드는 게 억울하다거나 슬프지 않았다. 체력이나 신체기능이 20대 때보다는 많이 떨어졌다고 느끼지만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
나이가 먹어서 가장 서글픈 점은 새치가 나는 것도, 이마에 잔주름이 자글거리는 것도, 불룩하게 나잇살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부모님도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나이 들어도 좋으니 우리 부모님은 멈춰져 있었으면. 늙지 않았으면. 아프지 않았으면.
친정에서 밥을 먹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배추국을 떠먹는 아빠를 보고 흠칫 놀란 적이 있었다. 내 머릿속에 있는 아빠 얼굴과 많이 달랐다. 눈 주변에 엄지손톱만 한 검버섯들이 달라붙어 있었고 눈동자에는 총명함이 사라졌다. 아빠는 사라지고 낯선 할아버지가 앉아있었다. 나는 선크림 좀 바르고 다니라며 훈계를 했지만 선크림 한 번 사드린 적 없는 무심한 딸이다.
그래, 우리 아빠는 손주가 셋인 할아버지다. 아빠가 할아버지라니. 할아버지는 머리가 희끗하고 주름이 많고 기운이 없다. 지팡이를 짚기도 한다. 그래, 우리 아빠도 이제 할아버지인 것이다.
며칠 후면 또 한 살 먹는다. 부모님도 마찬가지. 나의 조카는 10살, 8살, 2살이 된다. 나의 새치는 조금 더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고, 부모님 몸은 점점 더 고장 날 것이며, 조카들은 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랄 것이다.
세월과 함께 스며드는 변화, 익어가고 스러져가는 것들. 나라고, 우리 부모님이라고 예외가 있으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기보다는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야겠다. 더 많이 사랑해야겠다. 우리 아빠와 엄마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할아버지, 할머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