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왜 땡큐라고 말했을까

부모님과의 첫 해외여행

by 글밥 김선영

엄마까지는 오케이! 아빠와 함께는 왠지 불안했다. 해외여행 말이다.


아빠의 세계는 참 작았다. 우리 아빠는 경상도 깊은 골짜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20대에 상경해 엄마와 결혼을 한 뒤론 지금까지 쭉 40년 넘게 한 동네에 사셨다. 아빠는 동네에서 보일러나 수도 등을 수리하는 일을 했는데 이동 범위는 스쿠터 하나면 족했다. 산악회도 동호회도 동네 분들과 함께였기에 타 지역 사람을 만날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런 아빠가 처음 외국 땅을 밟은 건 5년 전, 나와 동생이 환갑여행으로 중국 '장가계' 패키지를 보내드렸을 때다. 그때도 부모님을 외국으로 보내는 게 불안했지만, 가이드가 있고 여행객 대다수가 ‘검은 머리’이기에 큰 걱정은 없었다.


이번엔 달랐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괌’ 자유여행이었다. 엄마 환갑 기념으로 우리 부부가 부모님을 모시고 가기로 했다. 나는 아빠가 흑인이나 백인을 신기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평소에 주변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TV에 외국인이 나오면, ‘깜둥이 나왔다’, ‘코쟁이다’는 예사였다. 나는 그런 표현을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빠에게 알려주고 싶었지만,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몰랐다. 아빠는 그들을 비하하려는 게 아니라 인간과 전혀 다른 종으로 보는 듯했다. 마치 판다나 악어를 처음 보는 것 처럼. 그런 아빠와 함께 ‘깜둥이’와 ‘코쟁이’로 가득한 미국 땅을 밟는다는 사실이 나는 괜스레 불안했던 것이다.


역시나 괌 공항 입국심사대에서부터 나는 신경이 곤두섰다. 아빠는 공항 흑인 여직원의 헤어스타일이 신기했는지, “와 저 머리 봐라, 엄청 곱슬 거리네!” 하고 큰소리로 말했다. 나는 당황해서 아빠의 입을 막고 조용히 말했다. “아빠 그렇게 대놓고 쳐다보면 기분 나쁘지.” 아빠는 멋쩍은 듯 엄마에게 말을 돌렸다. “내 여권 잘 갖고 있제?”


그 후엔 다행인지 불행인지, 렌터카로 다니다 보니 레스토랑 외에는 외국인과 접촉할 일이 별로 없었다. 나는 좀 아쉽기도 했다. 해외여행의 묘미는 낯선 사람과 낯선 문화를 접하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한국과 다를 게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빠 엄마가 외국인과 대화를 해보도록 유도했다.


“엄마, 외국 왔으면 외국인이랑 말도 해봐야지. 나갈 때 돈 내면서, 땡큐~ 하면 돼. 알았지?”, “나보고 내라고? 그냥 땡큐~ 만 하면 돼?” 엄마는 난감해하면서도 계산서를 꾹 쥐고 앞장섰다. 드디어 카운터 앞. 엄마는 몇 번이고 땡큐를 대뇌였으면서도 입이 붙어버린 듯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다행히 레스토랑 직원이 먼저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땡큐”, 망설이던 엄마는 “빠이 빠이”용기를 내어 인사를 했다. 직원은 미소로 화답했다. 외국인과 인생 첫 대화를 나눈 엄마는 즐거운 표정이었다.





식당을 나와 렌터카를 타고 해안도로를 달리던 중 우리 가족은 갈증을 느꼈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절실했다. 마침 눈앞에 작은 슈퍼마켓이 보였다. 넷은 빨려 들 듯 가게로 들어갔다. 우선 물을 두병 고르고 아빠를 위한 맥주를 찾고 있는데 가게 점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어떤 맥주가 괌에서 인기 있냐고 물었다. 덩치가 내 몸 세 배는 될 법한 흑인이었는데, 다소 무서운 외모와는 달리 수다쟁이였다. “괌에 왔으면 이 맥주를 꼭 먹어야 한다, 여기 이 수박주스는 먹어봤느냐, 더울 때는 이게 최고다” 폭풍 수다를 늘어놓기 시작한 그. 어느새 나는 수박주스와 그가 추천하는 병맥주를 한 아름 안고 있었다.


아빠는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 내 모습을 부러운 듯 쳐다봤다. 나는 이 때다 싶어 점원에게 “이 맥주는 우리 아빠를 위한 거야” 라고 말했다. 익살스러운 표정의 그는 “유어 파더? 노우~ 그랜드 파더!” 하면서 장난을 쳤다. 나는 아빠에게 바로 일러바쳤다. 아빠는 할아버지 아니라며 껄껄 웃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한국말과 보디랭귀지를 마구 섞어 그와 주거니 받거니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는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며 영어로 아빠에게 “맥주 너무 많이 먹고 취하면 안 돼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아빠는 알아들었는지 그런 척을 하는지, “오케오케이, 땡큐!” 하면서 그를 안심시켰다.


계산을 하려는데, 점원이 아빠의 병맥주를 누런 서류봉투 같은 것으로 감쌌다. 운전자가 아니어도 길에서 술을 마시면 안 된다고 알려줬다. 우리는 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런데 나는 또 불안해졌다. 맥주병을 안 보이게 감싸서 차 안에서 마신다지만 괜히 경찰에게 걸리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 다행히 아빠는 봉투를 꼭 잘 말아 쥐고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나도 모르게 침이 꿀꺽 넘어갔다. 운전을 하는 남편에게는 미안했지만 나도 한 모금해야겠다. “아빠 한입만” 하는 순간, 아빠는 맥주를 시원하게 원샷해버렸다.


더위와 술기운으로 볼이 발그레해진 아빠는 신이 난 목소리로 “아까 그 외국인 참 재미있지 않냐”며 흥에 겨운 수다를 시작했다. 아빠는 말은 안 통해도 몸짓으로 그의 말 대부분을 이해하고 있었다. 외국인과의 첫 대화가 꽤 뿌듯하신 모양이었다. 몰래 마시는 청량한 맥주는 그 기분을 몇 배는 더 끌어올렸으리라. 아빠는 더 이상 외국인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여행 후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빠가 누런 봉투로 감싼 맥주병을 쥐고 길가를 걷던 모습이 생생하다. 외국인과의 첫 대화를 성공하고 자신감이 넘쳐서 였을까, 아빠는 그야말로 ‘힙스터’ 같았다. 수십 년을 쌓아온 편견과 두려움을 깨는 일은 고작 한 두 마디면 충분했다.


“땡큐!”,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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