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가 도망치지 못하게 코의 살덩이를 잘라낸다. 그러면 돼지는 코를 킁킁거릴 때마다 고통을 받고 냄새를 맡지 못해 먹을거리나 길조차 찾지 못한다. 인간 주인에게 완전히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내용 中 -
인류의 역사는 폭력과 착취로 견고하게 쌓아 올린 첨탑과도 같았다. 벽돌책을 부쉈더니 나의 얕은 지식도 무참하게 부서졌다. 이 책은 호수처럼 잔잔하던 내 가슴에 돌멩이도 아닌 바윗돌을 힘껏 내던졌다. 나는 휘청거렸고, 평화로운 시기에 태어났음을 진심으로 감사했다.
너무 늦었다. 그 유명한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이제 서야 읽다니. 이건 마치 <기생충> 전성시대에 <살인의 추억>을 보고 혼자 깊은 감명을 받는 꼴이다. 그럼에도 늦게나마 이 책을 집어 든 건 정말 다행이고 행운이다.
드디어 벽돌을 부숴버렸다!
이 책은 크게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이라 명하는 3가지 전환시점을 나누어 인간이 걸어온 길을 설명한다. 아는 내용도, 대충 아는 내용도, 처음 듣는 내용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흐름 속에서 거의 모든 정보들은 나에게 충격이었다.
폭력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종류’의 인간만이 살고 있는 지금 세상에 익숙해 수 만 년 전의 과거를 떠올리기 힘들다. 부끄럽지만 나는 인간 진화과정이 포켓몬처럼 단계가 있는 줄 알았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로 시작하는 유인원은 세월이 흐를수록 굽었던 등이 펴지고, 뇌가 발달하면서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등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인간이 된 줄 알았단 말이다! (이런 무식쟁이) 그런데 아니란다. 몇 만 년 전의 지구에는 적어도 6종의 인간이 거의 동시대에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가장 영특한 ‘호모 사피엔스’만 유일하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것.
왜 일까.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유발 하라리는 우리 종의 범죄를 암시한다. 그 범죄는 다름 아닌 학살이다. 책<12가지 인생의 법칙>에서 조던 피터슨은 인류의 역사를 짚어보면 폭력은 자연스럽고 지금의 평화가 오히려 이상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완벽하게 이해가 갔다. 우리의 조상은 수세월 동안 인간을 포함한 동물들을 무참하게 죽였다.
동부 아프리카에 살던 호모 사피엔스가 배를 타고 대륙을 건너가기 시작하면서부터 대형동물을 중심으로 수많은 종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사피엔스가 미 대륙에 정착하기 전에는 키가 6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땅 나무늘보’라는 동물이 살았다고 한다. 인간보다 3배 이상 키가 큰 나무늘보의 모습이 상상이나 가능한가? 공룡의 존재보다 더 믿기 어렵다. 아무튼 사피엔스는 자신과 다르게 생겼거나 영양분이 될 만한 것들을 무자비하게 죽이기 시작했다.사피엔스에게 인지혁명이 일어날 즈음, 지구에는 몸무게 45kg이 넘는 대형동물 2백 *속[생물 분류의 한 단위. 과(科)와 종(種)의 사이]이 살았지만 농업혁명이 일어날 즈음엔 약 1백 속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사피엔스의 존재 자체는 생태적 재앙이나 마찬가지였다.
우연과 거짓말이 만들어낸 역사
인지혁명으로 사피엔스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능력을 갖게 된다. 역사의 시작이다. 그 계기는 유전자 돌연변이로 뇌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라는데, 이 책에서 유일하게 답답하고 풀리지 않는 부분이다. 하필이면 다양한 인간 종 중에 사피엔스만 갑자기 유전자가 바뀌어 똑똑해질 건 뭐람! 역사의 시작은 그저 우연이나 운이었단 말인가. 물론 세상에는 아직 설명되지 않는 현상이 무수하다. 그러니 일단 넘어가자.
저자가 말하는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이란 바로 ‘거짓말’로 요약할 수 있다. 허구를 말하는 능력은 단순한 상상을 넘어 신화를, 종교를, 주의(ism)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는 사람들을 협력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당연히 존재한다고 믿는 평등이나 자유와 같은 개념도 모두 인간이 만들어낸 신화고 허상이다. 인간은 그것을 믿으면 더 효과적으로 협력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상상의 질서는 붕괴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에 군대, 경찰, 법원, 감옥과 같은 시스템을 만들었다. 덕분에 인간은 피라미드의 꼭대기를 오래도록 차지하고 지킬 수 있었다. 사자나 원숭이가 아닌 인간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처럼 협력을 통해 커다란 공동체를 형성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 가지 도구가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했는데 종교, 제국, 화폐이다.
내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더니 생긴 일
과학혁명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시점이다. 우리는 ‘메타인지’를 잘해야 성장한다고들 말한다.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 지를 먼저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혁명도 그랬다. 중세시대까지 인간은 모든 걸 안다고 자만했다. 알 수 없는 부분은 신의 영역이라고 퉁쳤다. 그러다가 ‘이 복잡한 세상엔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미지의 세계가 있다.’라는 사고방식이 출현했고, 인간은 땅과 지식에 대한 정복욕을 키웠다. 제국주의와 과학혁명의 문이 열렸다.
과학과 상부상조하며 번창한 제국주의 관련 내용을 읽을 때는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국가에 오만정이 다 떨어졌다. 그들이 제국을 키우기 위해 식민지를 삼은 나라와, 학살당한 수많은 원주민(심지어 인간 박제로 만들어 박물관에 전시도 했다)의 이야기를 읽고는 가슴이 아팠다. 그들은 당시 원주민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지금의 잣대로 그 시대의 윤리를 논하기 힘들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인종차별에 대한 개념이 생긴 지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니까. 그저 나는 현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같은 호모 사피엔스로서, 나의 조상이 저지른 범죄가 남일 같지 않았다.
현대 문화유산의 상당수가 제국주의의 전리품이라고 한다. 제국주의는 식민지를 삼는 과정에 과학기술을 발전시켰고, 자본주의를 안착시켰다. 그 덕에 나는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 에티오피아산 커피를 홀짝이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내가 죄책감을 느끼는 지점은 그 언저리다. 이토록 안락하게 살 수 있었던 배후에는 오랜 세월 수많은 이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점이다.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에 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움직이는 대로 산다. 저자가 예로 든 ‘비만’은 자본주의의 생태계를 잘 보여준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생산과 소비가 순환해야 한다. 각종 매체와 미디어는 세상에 맛있는 음식이 이렇게나 많으니 어서 사 먹으라고 부추긴다. 살이 찌면 각종 질병이 들러붙기 마련이다. 또다시 각종 매체와 미디어는 어서 다이어트 식품을 사라고 부추기고, 우리는 헬스장을 끊는다. 돈 주고 살찌우고 돈 주고 살 뺀다. 자본주의는 그렇게 잘 돌아간다.
우리는 앞으로 점점 더 행복해질까?
사피엔스는 우연과 필연의 반복으로 혁명을 거듭하며 나아간다. 하지만 저자는 기술 진보가 행복의 크기와 비례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농업혁명 덕분에 식량의 총량이 많아졌지만 수렵채집 시대보다 여유시간은 줄었다. 고대 유골 조사에 따르면, 장시간 노동을 하는 농업을 시작하면서 디스크 탈출증, 관절염 등 수많은 병이 생겨났다고 한다. 농업혁명은 개개인의 행복이 아닌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있게' 만드는 능력을 부여한 것이다. 농부는 날씨 걱정을 하며 개미처럼 바쁘게 일을 해야 했고 지배자와 엘리트가 농부의 잉여 식량을 먹고살았다. 현대사회라고 다른가. 이렇게 빼앗은 잉여 식량은 엘리트와 예술가에게 정치, 전쟁, 예술, 철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 유발 하라리, <사피엔스> 中 -
생명공학 등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2050년 즈음되면 인간이 영생할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것이 우리와 같은 종의 인간, 호모 사피엔스라고는 장담 못한다. 지금과 같은 평화의 시기가 얼마나 갈까. (물론 지구촌 곳곳엔 여전히 전쟁과 기근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많다.) 수 만년을 살아온 사피엔스는 앞으로 얼마나 더 살까? 새로운 인류의 출현으로 그들이 자행했던 것처럼 몰살당하는 건 아닐까.
책 곳곳에는 인간의 환경파괴를 우려한 흔적이 녹아있다. 비교적 사피엔스의 학살을 피해 간 바닷속 생물도 이제 플라스틱 폐기물 등에서 비롯한 해양쓰레기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인간에게 되돌아올 것임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살인자의 후손’으로서 세상에 큰 빚을 진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유구한 세월과 거대한 우주 속에서 먼지만도 못한 나란 존재에 무력감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저 개개인으로서 의미와 행복만을 추구하며 살다 가면 되는 것일까. 과연 그것으로 충분할까.
600쪽에 육박하는 양 때문에 읽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내용은 전반적으로 흥미로웠고 저자가 천재인지 번역이 잘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내용이 쉽게 이해가 잘됐다. 한마디로 어려워서 못 읽을 책은 아니란 뜻이다. 그럼에도 너무나 방대한 양 때문에 같은 저자의 후속작인 <호모 데우스> 읽기를 주저했는데, 읽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더 재미있단다. 그렇게 또 영업을 당했다. 그책은 얼마나 큰 돌덩이를 나에게 집어던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혹시 책 내용을 정리하는 과정에 사실과 틀린 부분이 있거나, 제가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언제든 지적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