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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Aug 12. 2019

우리가 ‘코스트코’에 갈 수밖에 없는 이유

나는 언제까지 돈. 알. 못으로 살아야 하나

‘지상낙원이 여기로구나~’


몇 년 전 코스트코를 처음 갔을 때 느꼈던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당시 팀장님이 팀원들에게 먹일 간식을 사러 간다고 해서 나도 따라갔었다. 멤버십 카드가 있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는 ‘신성한 곳’에 나도 이번에 한번 가봐야지 했던 것이다. 대형 창고를 연상케 하는 매장 안에는 그야말로 없는 게 없었다. 대용량 묶음 물건이 말도 안 되게 쌌고, 해외에 나가야만 보이던 다양한 치즈와 소시지, 각종 가공식품들이 줄지어있었다. 버거킹 버거의 반값도 안 되는 ‘불고기 베이크’라는 신문물은 온갖 맛 집이 모여 있는 서울 토박이인 나조차 눈이 동그랗게 떠지는 맛이었다.


오래전부터 코스트코를 애용하던 남자와 결혼한 후 2주에 한 번씩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는 게 우리의 일과가 됐다. 블랙홀처럼 빠져들었다가 나오면 20만 원은 우습게 깨졌다. 그래도 우리는 ‘좋은 물건을 정말 싸게 샀다’며 만족해했다. 코스트코는 직원 복지도 좋다더니 다들 웃는 얼굴이라며 괜찮은 기업에서 물건을 사는 게 보람차게 느껴졌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나는 압박감을 느꼈다. 대용량이다 보니 2인 가정이 유통기한 내 소비하기에 버거웠고, 음식은 썩어버리기 일쑤였다. 집 앞 마트를 두고도 연회비를 뽑으려고 주기적으로 기름값을 버리며 찾아가는 일도 모순이었다. 분명히 그릇이나 화분을 살 생각이 아니었는데 나도 모르게 카트에 싣고 나오는 게 한심했다.

     

리처드 탈러의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을 읽고 나는 그동안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의 현명한 선택’을 되돌아보게 됐다. 보이지 않는 손에게 ‘조종’당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코스트코는 매일 염가 전략으로 소비자들에게 쇼핑이라는 행위 자체가 할인 품목들을 사냥하는 파티라고 설득한다”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랬다. 나는 밀림처럼 복잡한 그곳에서 카트를 밀며 사냥감을 찾아 돌아다녔다. 단 하나의 세일 품목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사냥을 하듯 물건을 훑었고 잽싸게 낚아 카트에 담곤 했다.


똑똑한 사람들도 멍청한 선택을 하는데 하물며 난... 에잇!


저자에 따르면 나는 ‘매몰비용’에 얽매여 집 앞 마트 대신 코스트코를 찾았다. 매몰비용은 내가 지불한 금액만큼의 본전, 일명 ‘뽕 뽑기’를 하려는 심리다. 어리석은 행동은 이뿐만이 아니다. 나는 언제부턴가 뷔페가기를 꺼려하기 시작했다. 나의 원래 양 보다 자꾸만 더 먹고 탈이 나는 게 바보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식, 중식, 양식 음식을 한 자리에서 먹다 보니 나중에는 맛도 잘 모르겠다. 매몰비용이 크게 작용해 나는 적당히 먹고 끊는 걸 못했다. 특히 비싼 뷔페일수록 더 그랬다.     


책에는 딸이 사달라고 하지도 않은 비싼 드레스를 사준 엄마가 딸이 옷을 안 입는다고 타박하는 내용이 나온다. 엄마는 드레스를 사는데 쓴 돈이 아깝다고 했다. 그 마음은 이해가 충분히 갔다. 하지만 이콘(Econ - 호모 이코노미쿠스, '사람은 누구나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선택한다'는 전통 경제학의 모형)은 이렇게 말한다.


“옷을 입는다고 이미 써버린 돈이 돌아오는 건 아닌데”     


희망소비자가격은 누가 희망했는가

거래 효용이란 개념도 재미있었다. 거래 효용은 제품을 사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가격과 일반적으로 구매자들이 지불하고자 하는 가격 간의 차이를 뜻했다. 부정적 거래 효용으로는 바가지가 있고, 긍정적 거래 효용에는 할인이 있다. 리조트 맥주는 2만 원이라도 사 먹는다. 간이매점에서 맥주를 2만 원에 팔면 화가 난다. 저자는 이것이 바로, 거래 효용의 핵심이라며 거래 효용은 구매를 단념하게도, 낭비하게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이 아님에도 ‘이건 사야 해~’하며 지르는 경우가 대부분 긍정적 거래 효용을 느껴서 일터. 하지만 그 효용이 정말 컸을까? 쓸모없는 장식품이 그렇게 많이 필요했을까. 판매자들은 준거 가격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거래’에 대한 환상을 만들어낸다고 한다. 아무 근거도 없는 ‘희망소비자가격’이다. 그러고 보니 희망소비자 가격에 지금껏 의문을 품어본 적이 없다.


재미있는 점은 우리가 희망소비자가격에 쉽게 넘어갈 수 있는 품목이 따로 있다는 것이다. 구매 빈도수가 낮은 물건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매트리스 같은 제품은 언제나 세일 중이라고 한다. 보통 매트리스는 자주 사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품질 평가가 쉽지 않고 가격대를 잘 모른다. 그래서 소비자들은 항상 세일을 하고 있다는 걸 모른 채 ‘어? 매트리스 사려고 왔는데 마침 세일 중이네!’라고 기뻐한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이러한 제품에서 희망소비자 가격은 두 가지 기능을 한다. 1) 가격만큼 품질이 우수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동시에 2) ‘세일 중’이기 때문에 거래 효용 역시 높다는 점을 넌지시 전해준다. 나 같은 소비자는 당하기(?) 딱 좋다.     


우리는 얼마나 어리석은가

이밖에도 인간이(아마도 내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멍청한 선택의 예들이 줄줄이 나온다. 예를 들면, 300만 원짜리 TV 살 때 3만 원 할인은 무관심하면서, 30만 원짜리 오디오 살 때 3만 원 깎는 것에 혈안이다. 내 돈주머니에서 3만 원이 빠져나가는 건 같은데 말이다. 1,500만 원에서 1,300만 원으로 가격을 내려도 싸다고 인식 안 하는 반면, 1,500만 원짜리 물건을 사면 200만 원을 현금으로 돌려준다고 하면 혹한다.     


이 책에 나온 다양한 이론과 ‘멍청한 선택’을 알아두면 사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내용을 몇 가지 정리해봤다.


1. 사람들은 얻는 기쁨보다 잃는 슬픔이 더 크다.

- 연구에 따르면, 손실은 이익이 기쁘게 하는 거보다 ‘약 두 배’나 더 슬프게 한다.     


2. 고위험 상황에서 의사결정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 심리학자들은 경험에서 배우기 위해서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1)충분한 연습과 2)즉각적인 피드백. 하지만 집을 사거나 직장을 바꾸는 일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다. 충분한 연습을 할 수 없다는 것.     


3. 쉽게 번 돈은 쉽게 나간다.

- 게임에서 돈 따고 있는 사람들은 딴 돈을 ‘실제 돈’으로 생각 안 한다. 딴 돈은 게임투자로 바로 다시 사용한다. 두 주머니 심리 계좌다.  -> 최근에 얻은 수익을 기꺼이 투자하려는 성향은 금융시장의 거품을 조장하기도 한다.     


4. 물들어올 때 노 저어라

- 유독 손님이 많은 날, 택시기사는 목표 금액을 벌고 나면 그날은 일찍 운전을 접는다. 하지만 손님 많은 날이 자주 오는 건 아니다. 그날조차 평소처럼 일하면, 훨씬 큰 이익을 남길 수 있을 텐데!     


5. 사람들이 무엇을 하도록 유도하려면 이를 쉽게 만들어야 한다.(해빙)

-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다면 제거해준다. 절연 시공을 하면 돈을 절약할 수 있는데, 다락방에 잡동사니가 치우기 귀찮아서 안 하는 사람들. -> 절연시설 + 청소 서비스 패키지 개발.

     

위에 나온 내용은 600쪽에 달하는 이 책의 내용 중 내가 재미있다고 생각한 부분을 거의 모두 추린 것이다. 그 말인 즉 나머지는 정말 지루했다. 저자는 자신의 행동경제학 연구를 자서전처럼 7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연대기별로 정리해오며 그 과정에 누구를 만났고, 어떤 대학에 갔고, 어떤 실험을 거쳐, 어떤 결론을 냈는지, 이것이 얼마나 위대한 발견인지를 느리고 차분하게 설명한다. 사실 나는 그게 안 궁금했다. 실험과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재미와 통찰을 주고도 남았다. 하지만 그가 누굴 만나 어떤 세미나를 갔는지 까지는 나에게 TMI로 느껴졌다. 물론 행동경제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얼마나 대단한 의미인지 알 것이고 역사의 흐름을 연대기별로 정리해보는 일이 유익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이므로 나에게 그게 잘 안 보였던 것, 반성해야 한다.



누군가에겐 인생 책이 될 수 도 있을 이 책을 나는 특히 사업하는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사람들이 돈을 쓰는 심리를 잘 알게 될 거고, ‘공정해 보이는 이미지’를 전략적으로 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사업을 ‘제대로’ 시작한 사람이라면 이미 읽었을지도 모르지만.


물이 다 떨어졌으니 이번 주말에는 코스트코를 가야겠다. 정말 물만 살거다 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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