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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Aug 19. 2019

죽고 싶었던 적이 있나요?

자살 시도만 5번 한 남자

카드 대신 현금만 고집하는 59세 남자. 노트북과 에스프레소 기계가, 사람을 글도 못 쓰고 커피 하나 못 내리는 바보로 만들었다며 세상을 한탄한다. 꼰대 기질이 다분한 이 남자는 외제차를 타거나 운전면허가 없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며, 주차금지구역에 차를 몰고 오는 이를 특히 혐오한다. 툭하면 화를 내고 소리를 지른다. TV 속 이경규나 박명수 캐릭터가 떠올랐다.     


[이하 스포 대방출]

프레드릭 배크만의 소설 <오베라는 남자> 속 주인공 오베는 이런 남자다. ‘저 성격으로 사회생활이나 하겠어’ 소리를 수없이 들었음직한 그였지만, 소설을 덮을 즈음엔 누구보다 따뜻한 사람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작가는 오베라는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교차로 보여준다. 이 과정에 우리는 그가 왜 그 지경으로 까칠한 성격을 갖게 됐는지 조금씩 알아간다. 그의 사연이 퍼즐 조각처럼 맞춰지고 마침내 그를 완벽히 이해하게 되는 순간, 오베는 죽는다. 자살은 아니다.     


줄거리를 한 마디로 간추리면, ‘오베라는 남자가 수없이 자살을 시도하다가 실패하는 이야기’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오베나 파르바네 등 생생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들에 깊이 빠져들었다. 한 가지 물음에 깊이 빠져들었다.


 ‘사람은 어떨 때 스스로 목숨을 끊을 마음을 먹는 걸까?’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오베는 사랑하는 사람을 두 번 잃는다. 아버지와 아내다. 16살에 하나뿐인 가족인 아버지를 사고로 잃는다. 그가 아끼고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브' 자동차는 아버지를 상징했다.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그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곤 했다. 오베는 자신이 억울한 누명을 쓰는 한이 있어도 아버지처럼 올곧게 살고자 노력해온 인물이다.     


오베는 많이 외로웠나 보다. 우연히 창밖으로 한 노인이 소년과 새에게 먹이를 주며 대화하는 광경을 봤다. 그날 오베는 사브에서 저녁을 먹었다. 아이가 유산되지 않았다면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가 됐을지 모를 그다. 아버지를 추억하며 홀로 차 안에서 밥을 먹는 중년 남성의 모습을 떠올리면 지금도 눈물이 날 것만 같다.

     

어두컴컴한 삶을 이어오다가 그는 아내를 만나고 행복이라는 감정을 다시 되찾는 듯했다.      


"아무도 안 볼 때 당신의 내면은 춤을 추고 있어요, 오베. 그리고 저는 그 점 때문에 언제까지고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당신이 그걸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간에."

<오베라는 남자> 中


이렇게 말하는 여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소냐는 오베의 진면목을 알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던 유일한 여자다. 아버지와 함께 웃음을 잃었던 오베에게 웃음을 다시 찾아준 소냐. 작가는 오베의 감정을 탁월하게 묘사한다.     


"남은 평생 동안 누군가

맨발로 그의 가슴속을 뛰어다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게 될 그녀의 웃는 모습"


"그녀가 깔깔거리며 웃는 걸 듣고

샴페인 거품이 웃을 줄 안다면 저런 소리가 날 거라고 오베는 생각했다."

  


감성적이고 충동적인 소냐, 이성적이고 계획적인 오베. 둘은 모든 면에서 달랐지만 조화로웠다. 하지만 행복은 길지 않았다. 아내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는지, 항상 선택의 순간에 들어서면 ‘아내라면 뭐라고 했을까’를 떠올렸다. 그리고 늘 그랬듯 아내가 기뻐했을 만한 쪽으로 선택했다.     


내가 더 이상 쓸모없다고 느껴질 때

오베는 은퇴를 바라는 사람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자기들이 잉여가 될 날을 고대하면서 평생을 보낼 수 있지. 사회의 짐이나 되는 걸 왜 소망하지.”하고 생각했다. 또한 “사람들이 물건을 너무 자주 바꾸는 나머지 물건이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하는 전문 기술을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하고 품질에 신경 쓰지 않는 것”을 불쾌해했다.     


사람들은 1989년에 에펠탑을 세웠는데 휴대전화를 재충전하기 위해 휴식시간을 갖지 않고서는 1층짜리 집의 빌어먹을 도면 하나 못 그려냈다. 이 세상은 한 사람의 인생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람이 구식이 되어버리는 곳이었다.

<오베라는 남자> 中    


그는 그러한 세상에서 사랑하는 이마저 떠나버리자 자신을 무가치하고 필요 없는 존재로 느낀 듯하다. 그리고 자살 시도를 한다. 내가 제대로 셌다면 5번이나.  


천장에 목을 매자 밧줄이 끊어진다. 차 안에서 가스를 마시려고 하자 이웃이 차고 문을 두드린다. 기차 플랫폼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는데 누가 선수를 친다, 약을 으려고도 했고, 총을 자신에게 겨눴지만 역시 실패다.      


그는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발길을 돌릴 때면 누군가를 도왔다. 이웃의 고장 난 라디에이터를 고치러 갔고, 사다리에서 떨어진 이웃을 병원까지 데려다줬다. 영웅처럼 기차 플랫폼 아래로 추락한 타인을 구해냈다. 세상 까칠하고 죽고 싶을 정도로 우울한 오베는 왜 그랬을까?     


죽기에는 심장이 너무 크다

오베는 희귀한 선천성 심장 질환을 앓고 있다. 나중에 밝혀지는데 그의 심장이 일반인보다 너무 크단다. 그는 진저리를 치면서도 길고양이를 내쫓지 못해 키우고, 운전면허가 없는 파르바네를 한심해하면서도 운전교습을 시켜준다. 그는 심장이 큰 츤데레다.   


고약한 성격에도 오베가 사랑스러운 이유는 그가 늘 약자의 편이기 때문이다. 그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발을 걸친 상태에서도 치매에 걸린 친구를, 얼어 죽을 위기에 처한 고양이를, 운전을 못하는 임산부, 동성애자를 모른 척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따스함을 모두가 인정하고 진심으로 필요로 한다. 오베는 자살 실패를 거듭하면서 점점 깨우친 듯하다. 이러한 세상에서 자신이 오히려 더욱 가치 있고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그는 아내 소냐의 무덤에 찾아가 이렇게 고백한다.     


“낮에 뭔가 할 일이 계속 있으니까
가끔 꽤 괜찮긴 해.”     


나를 진심으로 알아주는, 나를 필요로 하는 이가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살아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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