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얼마나 내향적이냐면 대중 앞에서 발표를 한 후 토한 적이 있다. 회사를 다닐 때였다. 50여 명의 클라이언트 앞에서 PT를 해야 하는 임무가 주어졌다. 경쟁사 두 곳도 함께 발표하는 자리였다. 계약을 결정하는 중대한 자리는 아니었고, 다음 분기 계획을 발표하는 수준의 워크숍이었다. 교양 프로그램 방송작가는 딱히 앞에 나설 일이 잘 없다. 발표 자료를 띄워두고 설명하는 행위는 대학교 때 조별과제 이후 처음이었다. 다행히 선배가 발표를 주도하고, 말이 꼬일 때만 내가 돕기로 했다.
그런데 이 선배는 외향적이지만 말주변이 없는 사람이었다. 기껏 밤새 준비한 기획을 조리 있게 설명하지 못했다. 옆에 서있던 나는 마음이 쫄렸다. ‘프로그램 짜느라 몇 주간 얼마나 골머리를 썼는데 발표를 망치면 안 되는데.’ 나는 심폐소생술을 한다는 심정으로 나서서 부연설명을 하고, 질문폭탄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기획이라 크게 어렵진 않았다. 다만 빨리 이 상황을 끝내고 싶어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내부가 어두워 망정이지 내 얼굴은 분명 홍당무였을 거다.
무사히 위기를 넘기고 뒤풀이 시간. 갑자기 미칠 듯한 두통이 엄습했다. 관자놀이가 제멋대로 날 뛰었고 속이 뒤집어졌다. 나는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했다. 너무 긴장을 했던 탓이다. 식사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또 울렁거렸다. 화장실로 달려가길 수차례. 나는 맛있는 뒤풀이 음식을 두고 호텔방에 들어가 홀로 쉬어야 했다. 발표를 괜히 했구나 자책하던 나에게 다음날, 대표님은 의외의 말씀을 건네셨다.
“김작가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설명을 잘해서 이해가 쏙 되더라고. 클라이언트도 마음에 들어했어.”
발표를 두려워하고 불편해하지만 못하는 편은 아니었던 것이다.
《콰이어트》의 저자 ‘수전 케인’ 역시 강연을 앞두고 토할까 봐 걱정을 하는 내향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책에서는 그녀를 ‘조용한 책벌레’라고 표현한다. 성공이 보장되는 월스트리트 변호사를 그만두고 작가의 길을 택한 그녀. 외향적인 성격이 인기를 얻고 미덕인 시대에, 수전 케인이 내향성 연구를 택한 이유는 자신을 비롯한 수많은 ‘내향인’들의 잠재력을 알리고 응원하고 싶어서 아니었을까.
내향적인 사람도 리더가 하고 싶다
내향적이었던 나는 학창 시절, 외향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을 동경했다. 질투라고 표현해도 맞을 것이다. 끊임없이 수다를 제조하고 깔깔거리는 친구를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은 부러워했다. 그런 반면, 리더 자리에는 욕심이 많았다. 대학 다닐 때도 응원단장이나 학회장을 도맡아 팀을 이끌었다. 나 자신이 참 모순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나서기는 싫어하면서 리더가 되고 싶은 건 뭐람! 그런데 이 책을 읽고 궁금증이 해소됐다. 세상엔 워런 버핏, 간디, 로자 파크스처럼 ‘내향적인 리더’도 많고, 내향과 외향을 다 가진 양면적인 사람도 많다. 나의 경우, 타고난 ‘기질’은 내향적이고, 환경에 적응하면서 외향성이 조금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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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향적어야 한다는 강박의 시작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외향성 추구’는 미국 산업사회의 과다경쟁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18세기 이전에는 내향·외향을 가름하는 ‘성격’보다는 도덕성이나 자제력 등을 포함하는 ‘인격’을 더 중시했다고 한다. ‘성격’은 타인이 날 어떻게 보느냐가 크다.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소소하게 일하다가 직장이라는 더 넓은 일터로 나가면서 낯선 이들과 조화롭게 사는 게 중요해졌다. 좋은 인상을 주고 ‘자신감’을 드러내야 유리하다는 시대적 강박이 나타난 거다. 과학자 역시 연구를 ‘파는 데’에 붙임성과 싹싹한 태도가 도움이 됐다. 이처럼 ‘외향성 추구’는 자본주의의 산물이기도 했다.
'초예민'한 당신은 피곤하지만 유리하다
책 속에서 심리학자는 기질과 성격 차이를 논한다. 기질은 타고난 생물학적 기반의 행동과 정서 패턴으로 유아기와 초기 아동기에 드러난다. 성격은 문화적 영향과 개인적 경험이 뒤섞이면서 나타나는 복잡한 양상이다. 기질이 토대면 성격이 건물이라는 뜻이다.
작은 소리, 냄새, 기척에도 예민한 아이를 ‘고 반응성’ 아이라고 일컫는다. 이러한 기질의 아이들은 커서 예술가나 작가, 과학자 같은 직업을 가질 확률이 높았다고 한다. 작가 일을 하고 있는 나 역시 예민함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이다.
예민하고 내향적인 사람은 사람들과 어울릴 때 보다 혼자 있을 때 편안하다. 주목할 점은 고독에는 힘이 있다는 것. 오직 혼자 있을 때만 ‘의도적인 연습’을 할 수 있고, 강한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 미하이’의 한 연구도 흥미롭다. 예술, 과학, 사업, 정부 각 부문에서 비범할 정도로 창의적인 사람 91명의 삶을 연구한 결과, 상당수가 청소년기에 사회적으로 주변부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1990~1995)
내향적인 사람이 유리한 점은 더 있다. 외향적 사람은 실수를 하면 되돌아보는 대신, 빨리 보상을 받으려는 심리가 작동해 속도를 더 높인다고 한다. 멈추었다가 가면(반성을 하면) 교훈을 얻고 발전할 기회가 생기는데 놓치는 것이다. 내향적인 사람은 흥분하는 즉시 브레이크를 밟고 부차적인 문제를 고려하는 기질적 프로그램이 깔려있다고 한다. 반성은 다음 시도의 성공률을 필히 높일 것이다.
내 살길을 만들어두자
내향적이거나 외향적인 사람 모두 ‘회복 환경’이라는 개념을 기억해두는 게 좋겠다. 나 자신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 찾아갈 휴식 장소를 만들어 두라고 한다. 내향적인 나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많은 사람이 있는 공간에 있거나 대화를 오래 나누면 진이 빠진다. 흔히 ‘기 빨린다’고 표현한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자신의 활동반경 곳곳에 혼자서 편안하게 쉴 수 있는(숨을) 공간을 만들어 두고 에너지를 충전하는 게 필요하다. 반면 외향적인 사람은 루틴 속에 의도적으로 사람을 만나는 일을 추가하면 활력을 얻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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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랑은 필수지만 사교성은 선택’이라고 강조한다. 관계는 누구에게나 행복을 가져다주지만 양보다 질을 우선하라고 한다. 현대사회에서 외향적인 성격이 분명 유리한 측면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내향적이어서 얻는 혜택도 많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나 자신을 거부하고 미워하면 자존감이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사랑하고 장점으로 키워나가는 일이, 시니컬한 우리 '내향인'들을 더 자주 웃음 짓게 할 거라 믿는다.
우리 문화는 오직 외향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만을 덕목으로 여겼다. 우리는 내면으로의 여행을, 중심으로 향하는 모험을 만류했다. 그래서 중심을 잃어버렸고 이제 다시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