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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Oct 28. 2019

우리 조상님도 단짠을 좋아하셨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 양념갈비

- 허니버터칩

- 마약토스트

- 쥐포(feat. 맥주)

     

쓰면서 혀 밑에 침이 고인다. 읽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짠은 언제나 옳다. 달면서 짭조름한 이중적인 맛은 우리의 식욕을 무한하게 자극한다. 두 가지를 함께 맛보지 못하면 후식으로라도 메꾸려고 한다. 우리는 삼겹살을 먹고, 밥을 볶고, 커피와 달달한 케이크를 먹는다. 닭갈비를 먹고, 밥을 볶고(물론 치즈 올려서), 커피와 달달한 마카롱을 곁들인다.      


분명 배가 터질 것만 같은데 짠 음식을 먹은 후엔 단 음식이 또다시 들어가고, 단 음식을 다 먹고 나면 또 짠 음식이 당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 단짠은 우리의 유전자에 새겨진 ‘생존본능’이라는 것.     


세계적으로 저명한 심장병 전문의 리 골드먼 박사의 책 <진화의 배신>은 우리는 왜 배가 불러도 꾸역꾸역 음식을 먹는지, 왜 살을 찌우기보다 빼기가 힘든지 등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의 DNA와 문명의 진보 속도와의 격차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의 생존력을 높이고자 프로그래밍된 DNA가 역설적으로 우리의 건강을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뜻일까?     


우리는 어떻게 지금까지 살아남았을까?

지구 상에 출현했던 생물 종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종은 500 종당 1종으로 0.2퍼센트에 불과하다고 한다.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지구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던 이유로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호모 사피엔스의 허구를 믿는 능력, 이를 통해 형성한 종교 등 공동체를 짓는 능력에 힘을 실었다. <진화의 배신>에서는 우리 ‘몸’ 유전자에 포커스를 맞춘다.      


DNA가 복제될 때 약 1억 번에 한 번씩은 실수 또는 돌연변이가 일어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기만의 독특한 개성을 지닌 정체성을 가질 수 있고, 인류는 수많은 세대를 거치면서 진화할 수 있었다.(진화의 배신, 33p) 무작위로 시작된 돌연변이지만 그중 유익한 것들은 선택적으로 보존되었다. 저자는 지금까지 인간의 몸에 살아남은 네 가지 형질에 집중한다.   


굶주림 대비 –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기회가 생길 때마다 영양소를 보충


탈수 대비 – 수렵활동을 할 때 필요한 지구력, 물과 소금의 중요성


폭력 대비 –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살인도 불사


출혈 대비 – 자연 속에서 생기는 다양한 사고로 인한 출혈 위험성

            


단짠은 생존 본능이다

단짠이 끌리는 건 우리 조상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때부터 시작됐다. 채집, 수렵활동을 하던 구석기 시절, 우리 조상은 지금보다 음식을 구하기가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자연에서 난 음식을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도 고민했을 것이다. 보통 쓴맛이 나는 식물에는 독이 들었다. 열매나 곡물처럼 단맛이 나는 음식(탄수화물)은 안전했다. 우리의 미각은 자연스레 단 것을 선호하게 수 천년 전부터 길들여졌다.      


짠맛은 소금이다. 우리가 물과 소금을 원하는 것 역시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땀 배출을 하기 때문이다. 코나 발바닥에만 땀샘이 있는 포유류와 달리, 우리는 전신에서 땀이 나온다. 그래서 열로 달아오른 몸을 빠르게 식힐 수 있고, 이는 오래 달리기와 같은 지구력을 키우기 더 유리했다. 책에 재미있는 예시가 나왔다. 치타와 인간이 트레드밀에서 오래 달리기를 하면 인간이 이긴다는 것이다. 치타가 단거리는 빠를지 몰라도, 인간처럼 땀을 흘리면서 체온을 조절할 수 없기 때문에 차오르는 열 때문에 나가떨어질 것이라고. 인간은 물과 소금을 섭취하고 땀을 흘리는 성질 때문에 상위 포식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진화의 배신이라는 걸까?     


인체는 손에 넣을 수 있는 음식이 늘 넘쳐나는 상황을 예상해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다. 특히 사냥이나 채집을 하면서 엄청난 열량을 소비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음식은 아예 계산에 들어 있지도 않다. 그 결과 꾸준한 식량 공급이 확산되면서 비만과 당뇨병 같은 문제도 함께 확산되기 시작했다.

리 골드먼, <진화의 배신> 72p


이제 우리는 언제든 원하면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교통 등 기술의 발달로 활동량도 줄었다. 하지만 우리 몸 유전자는 안타깝게도 문명이 이처럼 발달한 것을 아직 모르는 듯하다. 예전처럼 많은 칼로리가 필요하지도, 땀을 흘리지도 않는데 우리의 본능은 자꾸만 필요 이상의 음식과 소금을 먹으려 하고, 이는 결과적으로 현대병을 유발했다.     


법과 질서가 생기면서 예전만큼 폭력의 위협 속에서 살지 않는데, 우리의 유전자는 심리적으로 불안과 위험을 느끼도록 한다. 출혈을 막는 단백질 응고 성분은 오히려 혈전을 유발해 뇌졸중을 생기게 했다. 과거에 내 몸을 살리도록 프로그래밍 한 유전자가 현대사회에 와서는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      


굶주림 대비 –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기회가 생길 때마다 영양소를 보충

-> 과식 유발


탈수 대비 – 수렵활동을 할 때 필요한 지구력, 물과 소금의 중요성

-> 고혈압 유발


폭력 대비 – 자신의 유전자를 퍼뜨리기 위해 살인도 불사

-> 불안증, 우울증


출혈 대비 – 자연 속에서 생기는 다양한 사고로 인한 출혈 위험성

-> 혈전으로 인한 심장질환, 뇌졸중               


오늘날 미국에서 혈전으로 인한 질병-심장 마비, 혈전성 뇌졸중, 폐색전 등-은 모든 사망 원인의 25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는 외상, 살인, 자살, 출혈성 뇌졸중, 궤양 등 출혈 증상으로 인한 사망을 모두 합친 것보다 네 배 이상 많다.

리 골드먼, <진화의 배신> 339p     


유전자를 문명이 발달하는 속도에 맞게 진화시킬 수 없다. 그렇다고 과거의 문명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저자는 비만, 고혈압, 우울증 등 현대병을 치료하기 위한 최신 수술과 약을 소개하지만 이 또한 예방법은 아니다. 그나마 현대 의학이 발달하면서 ‘개개인에게 맞춘 건강관리 시대’가 오고 있다는 희망을 줬다. 자신이 장래에 걸릴 수 있는 병의 확률을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최선의 치료법을 좀 더 빠르게 조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는 명확하다. 사실 나는 유전자가 얼마나 무서운 지를 보고 들었다. 유방암에 걸린 엄마의 딸이 유방암에 걸리는 걸 보았고, “아무리 건강하려고 애를 써도 유전은 못 이겨”라고 말하는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저 스스로를 파괴하는 몸의 생태계를 운명이려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저자는 ‘20만 년 간 온갖 난관을 이겨낸 인간의 뛰어난 뇌’를 믿어보자고 말한다. 일리는 있다. 인간은 늘 그랬든 해결책을 마련할 것이다. 하지만 이 또한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우리는 주어진 한계 속에서 최선을 다해 좋은 식습관을 유지하고, 꾸준한 운동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 방법은 제임스 클리어의 저서 <아주 작은 습관의 힘>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체 못 하는 과식이 나의 부족한 의지력 때문만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터질 듯 한 배로 조각 케이크를 주문하는 나에게, 말로만 다이어트한다고 10년째 선언하는 친구에게 오늘은 조금 너그러워져야겠다.






Q. '진화의 배신'처럼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게 된 상황은 또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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