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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Nov 11. 2019

표정 관리 잘 못하면 감옥행?

지금도 지켜보고 있다


‘표정’ 한 번 잘 못 지으면 소리 소문 없이 감옥행이다. 생각에 잠겨 멍 때려서도 안 되며, 지나치게 행복한 표정도 위험하다. 무의식적으로 외치는 잠꼬대도 주의해야 한다. 허튼소리를 했다간 당신의 자녀가 당신을 ‘사상범’으로 신고할 수도 있다. 애를 낳을 목적이 아니라면 섹스도 금지다. 이런 나라가 존재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더 클래식) 속 오세아니아라는 국가 이야기다.     


<스포 대량 살포>

내가 태어난 해가 제목이기도 한 <1984>는 ‘언젠가 읽어봐야지’ 하고 최소 10년은 방치해둔 소설이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는 출간 즉시 사서 읽었지만 미안하게도 <1984>는 왠지 모를 꺼림칙함에 미뤄뒀다. 독서모임 책으로 선정하여 책을 집어들었는데 의외로 술술 읽혔다. 초반 30페이지는 ‘이게 무슨 상황이지’를 파악하는 데 노력이 필요했지만, 그 이후부터는 다음 장면이 궁금해서 멈추기 힘든 지경이었다. 작가의 표현이 어찌나 생생한지 주인공 윈스턴의 전기고문 장면에서는 내 몸이 다 찌릿찌릿했다.      



오세아니아라는 가상의 국가는(우리가 아는 그 오세아니아는 아니다) ‘빅브라더’라는 역시 가공의 인물의 철저한 감시 하에 있는 전체주의 국가다. (소설에서는 '영국식 사회주의'라고 표현, 마르크스의 사상과는 다르다) 극소수의 핵심당원, 소수의 당원, 다수의 노동자로 이루어진 이 세계에는 공공장소건 사적인 공간이건 가리지 않고 ‘텔레스크린’이라는 ‘CCTV+라디오’ 형태의 기계가 설치돼 있다. 당원과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실시간 감시한다.      


이 ‘이상한 나라’를 좀 더 들여다보자. 텔레스크린은 감시카메라이자, 라디오처럼 소리도 나온다. 밤낮으로 텔레스크린을 통해 가짜 뉴스(사상교육)를 듣는 대중은 빅브라더에게 충성하고, 반동분자로 대변되는 골드스타인을 증오한다. 빅브라더를 조금이라도 의심하거나 이에 반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 '밤이면 억센 손이 어깨를 흔들어 대며 환한 불빛을 눈에 비추고' 사람들은 쥐도 새도 모르게 증발해버렸다.


조작은 일상이다. 가령 오늘 발간된 신문 내용이 당의 마음에 안 들면 모조리 폐기하고 새로 수정한 내용의 신문을 그 자리에 다시 놓는다. 마치 원래부터 그 신문이 있던듯 말이다. 사람들은 이 모든 게 거짓이라는 사실을 알지만, 한편으로는 진실이라고 믿는다. 일명, ‘이중사고’다. 이중사고란, 한 사람이 두 가지 상반된 신념을 동시에 가지고 있고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으로 오세아니아 사상의 핵심이다.     


독재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 중 가장 효과적인 건 언어통제다. 우리나라 역시 일제강점기 시대에 겪었던 바 있다. 이들은 기존 언어(구어)를 없애려고 ‘신어’라는 것을 개발한다. 신어는 단어수를 최대한 줄인다. 예를 들어, 좋은(good)이라는 단어가 있으면, 반대되는 말 나쁜(bad)은 굳이 필요 없다. ‘ungood’이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좋은 것보다 더 좋으면 ‘plusgood’이라 하면 된다. ‘탁월한’, ‘훌륭한’ 따위의 말은 쓸모가 없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단어의 개수와 다양성은 '사고의 폭'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좁아진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인간을 멍청하게 만든다. 물론 그들의 의도대로 표현할 단어가 없어서 ‘사상죄’를 범하는 일은 줄겠지만.     


감시하고, 언어를 통제하고, 이중사고를 주입한 결과는 끔찍하다. 일곱 살짜리 꼬마는 만화 대신 ‘교수형이 보고 싶어!’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자신의 부모가 잠꼬대로 빅브라더를 비난했다고 사상범으로 신고한다. 그리고 그 아비는 그런 아이가 자랑스럽다.     


이 소설의 주인공 윈스턴은 ‘빅브라더’ 이전 시대를 기억하는 인물이다. 세뇌로부터 자신의 기억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기록한다. 언젠가 자유를 되찾는 날, 후대에게 날조된 역사를 전달하지 않겠다는 사명으로 말이다.           


자신의 기억 외에는 아무런 기록이 없을 때 제아무리 명백한 사실이라고 해도 그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만일 사람들이 당이 강요하는 거짓말을 믿는다면 그 거짓말은 역사가 되고, 진실이 되는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는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는 과거를 지배한다.' 이것이 당의 표어였다.

- 조지 오웰, <1984>          


윈스턴은 자신처럼 당에 반대하는 ‘줄리아’라는 여성과 우연히 사랑에 빠진다. 둘은 빈대가 버글거리는 방에서 밀회를 즐긴다. 아무리 더러워도 텔레스크린의 감시가 없(다고 믿)는 그 방은 그들만의 지상낙원이었다.      


그는 그녀와 10년 동안 결혼 생활을 해 온 사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딱 지금처럼, 하지만 당당하게, 그리고 아무런 두려움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집 안에 필요한 생필품이나 사면서 그녀와 거리를 거닐었으면 하고 바랐다.

- 조지 오웰, <1984>     


그저 평범한 사랑을 꿈꿨지만, 이마저도 허락되지 않는 세계. 이들의 결말은 오브라이언의 함정에 속아 넘어간 후 급속도로 파국을 맞이한다. 누구도 감시하지 못한다 믿었던 그들의 낙원에 텔레스크린이 숨어있던 것이다! 액자 유리가 깨지면서 텔레스크린이 나타나는 장면은 그야말로 소름이다. 마치 영화 <기생충>에서 가정부 ‘문광’이 빗속에서 초인종을 누를 때와 같은 순간이랄까. 이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 장면과 함께 나에게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이때부터 시작되는 고문은, 인간이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 지 보여주겠다고 조지 오웰이 독하게 마음먹은 듯하다. 눈앞에 보이는 뻔한 진실대신 거짓을 말할 때까지 전기고문을 한다. 급기야 윈스턴이 가장 두려워하는 쥐들을 얼굴 앞에 풀어놓으려고 할 때는 영화 <쏘우>가 연상된다. 당은 한 개인의 몸은 물론이고, 정신과 마음까지 알뜰하게 파괴한다. 한오라기 실만큼도 자유의지를 남겨두지 않으려고 한다. 결국 윈스턴은 죽음보다 두려운 고통 앞에, 자신이 사랑하던 줄리아를 갈기갈기 찢어달라고 외치며 빅브라더에 굴복한다.       





이 책의 역자인 정영수 님은 현대사회에서 우리를 지배하는 절대 권력은 무엇이며, 빅브라더와 오브라이언은 누구인지, 그리고 끔찍한 고문이 행해진 '애정부 101호실'은 없는지, 독자에게 생각해보라고 한다.       


우리는 이미 사회 곳곳에서 불법사찰로 시끄러웠던 경험을 겪은 바 있다. 온라인과 유튜브에서 쏟아지는 뉴스는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내가 지금 사는 이 세상에도 어딘가 ‘빅브라더’가 존재하는 건 아닐까.      


중국이 곧 지하철 결제수단을 ‘얼굴인식’으로 바꾼다고 한다. 1억 7천만 대 이상의 CCTV 카메라를 설치하고, 인공지능 덕분에 얼굴을 가려도 사람을 인식한단다. 결제는 핑계요, 국민을 감시하는 시스템이라는 우려가 높다. 실제로 중국 정부가 2018년 블랙리스트에 오른 국민의 고속철도·항공편 이용을 제한한 횟수는 2000만 건 이상으로 알려졌다. (출처: IT 조선)     


과학기술의 발달로, 그 목적이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의 사생활이 감시당하는 일은 <1984> 속 세계보다 1000배는 쉬워졌을 것이다. 소설처럼 일상적인 조작과 끔찍한 고문이 난무하지는 못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역사’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구별하는 안목이 없다면, 나만의 정체성을 확고히 세우지 못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정신과 영혼은 <1984> 속 수많은 사람들처럼 잠식당할지 모를 일이다.


새삼, 쓸 수 있어 다행이다. 이런 자유를 얻기까지 수많은 사람의 희생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도 세상을 해석하며 꾸준히 기록할 것이다. 비록 승자가 되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Q. 이 시대의 '빅브라더', '오브라이언', '윈스턴'은 누구인지 함께 생각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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