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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밥 Nov 19. 2019

FLO의 추천 음악이 두려워졌다

개인 맞춤화 시대가 쏜 화살은 어디로 향할까?


매일매일 내 취향에 맞는
새로운 음악을 발견해보세요.


몇 달 전 '플로(FLO)'라는 음원사이트를 알게 되어 애용하고 있다. 플로를 처음 가입할 때, 국내외 장르별 뮤지션 중 선호 아티스트를 지정하라고 한다. 나는 국내 인디밴드와 해외 록음악을 위주로 선택했다. 매일 아침 ‘나를 위한 FLO’라는 추천 음악 리스트가 장르별로 배달되면 일일이 원하는 음악을 찾을 필요 없이 재생목록을 랜덤 플레이한다. 어쩜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음악만 쏙쏙 담아왔는지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은 심정이다. 날이 갈수록 내 취향은 더 정교하게 반영됐고, 나는 편리한 시대에 감탄했다.      



개인화 시대, 시장에서 ‘취향’은 중요한 키워드다. 무심코 입력하는 검색어와 페이스북에 누르는 ‘좋아요’까지 실시간으로 우리를 학습하고 있다. 때로는 섬뜩할 때도 있었지만 진지하게 고민해보진 않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말이다.     



한 권을 읽을 때마다 우리의 시야가 보통 +1 만큼 넓어진다고 치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나의 시야를 +10 만큼 넓혔고, 후속작 <호모 데우스> +100을 보게 만들었다. 그만큼 미처 내가 생각해보지 못한 화두를 던져줬고, 저자의 통찰력에 연거푸 감탄했다.      


<사피엔스>는 약 40억 년 전 생명이 처음 출현한 이래, 지구 생태계를 변화시킨 유일한 단일종 ‘호모 사피엔스’, 즉 지금의 인간을 탐구한다. 7만 년 동안 인류가 인지 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치며 어떻게 이 행성의 주인공이 되었는 지를 논리적으로 풀어간다. <호모 데우스>는 그 바통을 이어 인류의 미래를 예측한다. 유발 하라리는 이 예측이 예언이 아닌,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현명한 길잡이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나 역시 간절히 바라는 바다.     


불멸을 꿈꾸는 인간

저자는 전에 없던 평화를 얻은 인류의 다음 목표는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것이라고 예고한다. 인류를 신으로 업그레이드해 ‘호모 사피엔스’를 ‘호모 데우스’로 바꾸는 것이다.      


불멸과 신성에 대한 꿈 앞에서 사람들이 당황하는 이유는 그것이 낯설고 불가능한 일처럼 들려서가 아니라,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할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일단 그 가능성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임을 깨닫는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유발 하라리가 공론화하기 훨씬 전부터, ‘불멸’까지는 아니어도 수명 연장에 대한 관심은 존재했다. 생명공학과 인공지능의 발달로 가능성한 발자국 더 현실 앞으로 다가왔고, 웰빙을 넘어 웰다잉이 화두가 된 것도 이러한 흐름의 반영일 것이다. 진시황이 그토록 찾았다는 정체불명의 불로초는 그 종류를 바꿔가며 건강식품으로  언론에 소개된다. 그만큼 더 건강하게 오래 사는 건 인류의 오랜 꿈이었다.      


불멸을 차지할(?) 초인간, 인공지능

나는 ‘불멸'의 주인공은 당연히 현재의 인간, 즉 ‘호모 사피엔스’가 될 거라 믿었다. 의심한 적이 없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불멸의 주인공은 초인간,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알게 될 인공지능이다.


인공지능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경제적 가치는 실제로  떨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향후 15년 안에 컴퓨터 알고리즘에 밀려날 직업이 47%로 예상된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전문화될수록 인공지능에 교체될 확률이 높다. 택시기사나 심장전문의는 다양한 기술을 넓게 알아야 하는 수렵채집인보다 훨씬 분야가 좁아 인공지능이 학습하기 쉽다는 것이다. 알고리즘이 인간을 직업시장에서 몰아내면 ‘비싼’ 알고리즘을 소유한 소수 엘리트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될 수 있다. 유발 하라리는 ‘미래의 기술이 또 해결해줄 거야’라고 낙천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희망도 져버린다.     


우리의 미래를 시장의 힘에 맡기는 것이 위험한 이유는 그 힘들이 인류나 세계에 유익한 일을 하기보다 시장에 유익한 일을 하기 때문이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그리고 초인간(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미래에 전개될 초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예측하는 데 가장 좋은 모델이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우리는 과연, 스스로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는 현재 인간 중심의 세상에서 '자유주의' 사상을 갖고 살고 있다. 개인은 쪼개질 수 없는 하나의 정체성을 갖고 있으며 삶의 의미는 개개인이 경험을 통해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고 믿는다. 인간의 생명은 빈부나 인종에 상관없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의심해 무엇할까. 하지만 물음조차 필요 없는 이 당연한 명제가 처음부터 당연하지 않았다는 건, 사실 우리 모두 아는 사실이다. 어떤 인간은 누군가의 ‘재산’으로 취급받았던 세월이 있다. 역사의 격동 속에서 민주주의와 자유라는 가치를 어렵게 얻어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상대적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서 지금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영원하란 법이 없다.     


생명과학은, 개인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는 믿음은 ‘생화학적 알고리즘 집합’ 즉 인간이 지어낸 허구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았던 자유주의를 뿌리째 뒤 흔든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저 수학적 데이터에 따라 일을 처리하는 알고리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초인간이 지배하는 거대하고 복잡한 알고리즘 세상에서 지금의 인간은 하나의 칩이다. 개별로 존재할 수 없고 연결로만 존재한다. 저자는 미래에 떠오르는 유력한 종교(사상)로 '데이터교'를 제시한다. 끊임없이 연결로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해야 하고 연결이 끊어지면 죽는다.


페이스북에서 내가 클릭한 '좋아요' 300개를 분석하면,  페이스북 알고리즘이 내 배우자보다 내 욕망을 더 잘 예측한다고 한다. 유발 하라리는 구글이나 페북이 우리의 선택을 대신해주는 대리인을 넘어 주권자로 진화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금 당장은 나에게서 수집한 데이터로 나에게 가장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정보를 선별하고 추천해주니 좋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알게 되는 날이 오면,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가장 기본적이고 당연한 명제를 수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역사학의 가장 큰 목표는 우리가 평상시 고려하지 않는 가능성들을 인지시키는 것이다.

- 유발 하라리, <호모 데우스> 91p     


유발 하라리는 그 목표를 아주 잘 수행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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