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사에 열정적이면 옥상에 불려 간다
그래도 열정은 계속되어야 한다
현미는 매사에 열정적인 서브작가다. 그 열정은 그녀의 속사포처럼 빠르고 기차 화통처럼 큰 목소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안녕하세요. 여기 000 방송국인데요! 네네네 선생님! 네네 그러시죠~ 네네네!"
무슨 이유인지 현미는 결코 '네'를 한 번만 하는 법이 없었다. 현미의 바로 옆자리였던 나는 취재 전화를 하다가도 그녀의 목소리에 기가 눌려 폰을 들고 사무실 밖으로 종종 나가야 했다.
“네 선생님? 제가 지금 소리가 잘 안 들려서 죄송한데 한 번만 더 말씀해주시겠어요?”
하지만 어쩌겠는가. 열정은 죄가 아니다. 목소리가(어쩌면 열정도) 작은 내가 죄라면 죄. 열정적인 그녀는 구성안을 쓸 때도 혼자서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는 나와는 달리, 항상 적극적이었다. 작성한 구성안을 출력해서 멀리 떨어진 메인언니의 자리에 직접 찾아가서
“언니, 이 구다리에요. 이 내용 넣으면 어때요? 여기서는 리포터가 이렇게 멘트 칠 거고요. 이 장면에도 니주를 깔아야 할까요?”
그러면 메인언니는 기특하다는 표정으로 그녀에게 적당한 피드백을 해주셨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직장생활의 풍경인가! 나는 그런 그녀의 열정을 조금 부러워했던 거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와 같이 큰 목소리로 씩씩하게 섭외 전화를 하던 현미를 세컨언니[메인 다음 윗 선배]가 밖으로 호출했다. 의아한 표정으로 따라가는 현미와 나는 눈이 마주쳤다. 우리 둘 머리 위에는 동시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나는 궁금증을 참고, 하던 전화를 마저 했다. 10여 분이 지났을까. 돌아온 현미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다. 곧 PC에 현미가 보낸 메시지가 떠올랐다.
현미: 나 방금 옥상 다녀옴ㅋ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어?
나: ㅇㅇ 커피 한잔 할래?
우리는 회사 건물 1층 단골 카페가 아닌 좀 떨어진 카페로 향했다. 그녀가 세컨작가에게 불려 간 까닭은 이랬다.
“현미야 너, 너무 목소리가 커서 다른 사람한테 피해 주는 거 알고 있어?”
“네? 아.. 목소리요”
“그리고 너, 촬구(촬영구성안) 쓰고 매번 메인언니한테 가서 물어보고 하는데. 메인언니도 바쁘신데 일해야지. 너만의 메인언니가 아니잖아. 네가 그렇게 독점하면 안 되는 거야.”
“아.. 제가 몰랐네요. 주의할게요”
나는 의아했다. 열심히 일하는 게 왜 문제가 되는가. 내가 아는 메인언니는 현미의 그런 적극적인 자세를 좋아했고 독려했다. 그녀가 열심히 일하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은 오로지 그 세컨작가 뿐인 듯했다. 안 그래도 제작사별 시청률 싸움에서 서바이벌로 살아남는 구조라(분기별 평가에서 시청률이 가장 저조한 외주제작사는 방송제작을 그만둬야 했고, 그렇게 되면 제작진 모두 일자리를 잃게 된다.) 경쟁이라면 지긋지긋했다. 굳이 같은 팀 안에서 까지 질투를 하고 적대적으로 대해야 할까.
나는 여전히 물음표를 지우지 못한 채 얼이 빠진 현미를 위로했다. 현미는 약간 의기소침해진 거 같았다. 학창 시절에도 선배에게 옥상으로 끌려간 적은 없었다며 우는 소리를 했다. 다행히 우리의 열정적인 현미는 얼마 안가 자신의 페이스를 찾았다. 그리고 보란 듯, 그녀의 목청이 여의도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한시가 급한 사건사고 코너를 맡은 현미. 방송 날이 코앞인데 사건 담당자와 연결이 안 돼 속이 타던 중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칠 줄 몰랐다. 몇 시간 동안 수소문을 해 마침내 담당 경찰을 찾아냈고, 현미는 기쁨의 콧노래를 부르며 그와 통화를 했다.
“네네네 공문이요, 보내드려야죠. 지금 바로 보내고 전화드릴게요~ 잠시만요!”
경찰은 6시가 퇴근이라며 서둘러달라고 했다. 현미는 발을 동동 구르며 팩스를 보냈고 정각 6시, 바로 담당경찰에게 확인 전화를 걸었다.
“... 네? 퇴근했다고요?!”
각자의 일에 집중하고 있던 우리는, 뱀을 맞닥뜨린 개구리처럼 한순간 얼음이 되었다. 이어지는 현미의 절규.
“으악!!!”
현미는 부서질 듯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아니 내동댕이쳤다는 게 맞을 것이다. 현미의 분노는 사무실을 훌쩍 뛰어넘어 국회의사당 뚜껑까지 치솟았다. 그녀는 급기야 사무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사무실은 8층. 나는 갑자기 좀 무서워졌다.
“현미야 왜.. 경찰이 벌써 퇴근해버렸대?”
“야이 0000 놈아! 내가 니 번호 찾으려고 얼마나 전화를 돌렸는데 1분을 못 기다리냐! 이 공무원 0 같은 넘들아!”
현미는 오늘만큼은 내 목청의 끝을 보여주겠다는 듯 창밖으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현미의 열정을, 그리고 그 억울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우리는 아무도 그녀를 말리지 못했다.
질투가 많은 세컨작가 그녀 역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