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부모찬스'를 허락했다. 전역이 코앞으로 다가온 아들은 격오지에서 군 복무 중이다. 군대를 안 보내거나 명문대 입학을 돕는 찬스를 우리 부부는 줄 수 없었다. 그러나 부모가 주말에 면회를 오면 하루종일 외출이 가능하단다. 오백일 넘게 군복무를 하고 말년병장이 되었지만 부대 밖의 공기로 콧바람을 쐬고 싶어 하는 아들의 요청을 어찌 거절할 수 있으리. 족히 네 시간은 걸리는 거리를 한달음에 달려갔다.
"뭐 먹고 싶니?" "고기요."(그럴 줄 알았다.)
"뭐 하고 싶니?" "딱히 없어요."(그것도 그럴 줄 알았다.)
아들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고, 남편과 나는 '거기 가자!' 하고 눈짓을 교환했다.
"그래, 그럼 찜질방 간다?"
처음에는 당황하는 것 같아하던 아들내미도 별말 없이 순순히 따라나선다. 녀석은 군인이라 입장료를 깎아준단다. "너 할인해 준대. 아싸, 개꿀!" 아들내미 군대에 빼앗긴 대가치고는 너무 약소하지만, '할인' '원 플러스 원' '사은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는 잠깐 기분이 좋다. 그게 뭐라고.
참 오랜만에 온 목욕탕이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온천이나 수영장, 찜질방 등을 자주 다녔다. 아이들은 물놀이, 흙놀이, 불놀이라면 다 좋아하지 않던가. 아이를 안고 들어가면 온탕은 온탕대로 따뜻했고, 냉탕은 냉탕대로 즐거웠다. 아이는 마치 뱃속에 있던 때처럼 자유롭고 편안하게 품에 안겼다. 나도 아이의 보드라운 몸을 씻어주면서 참 행복했다.
아들내미는 대여섯 살 이후부터는 대중목욕탕에 같이 못 들어갔지만, 딸내미와는 그래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는 함께 간 것 같다. 그러다 언제부터인지 딸내미도 엄마에게 몸을 보이기 싫어했다. 같이 가는 횟수가 점점 뜸해지다가 코로나가 터졌다. 감염병이 창궐하지 않았더라도 아이들과 누렸던 목욕탕 나들이는 그즈음 마무리가 되었을 게다.
오랜만에 찾은 목욕탕은 크게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아들과 남편은 같이 들어갔으니 서로 등이라도 밀어줄 텐데, 딸내미 없이 혼자 들어와 씻으려니 왠지 아쉽다. 내가 젊을 적까지만 해도 목욕탕에 가면, 혼자 온 사람들끼리 임의롭게 서로 때수건을 바꿔가며 등을 밀어주곤 했다. "아가씨, 등 밀었수?" 하면서 다가온 아주머니가 피부가 빨개지도록 세게 밀어도 꾹 참았던 기억, 너무 뚱뚱한 할머니가 제안하면 "저 이미 다했는데요."라고 슬쩍 피했던 기억, 어떤 분은 여러 번 반복해 밀어주고 비누칠까지 꼼꼼히 해주는 바람에 공연히 미안했던 기억들. 생각해 보면 얼마나 정겹던 시간들인지.
그러나 요즘은 그렇게 부탁해 오는 사람도 없고, 나도 굳이 남에게 청하지 않는다. 품앗이로 때를 밀기보다는 세신사에게 청하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목욕탕 한쪽 벽에는 '부위별 가격표'가 붙어 있다. 전신 얼마, 전신에 마사지까지 하면 얼마, 등 얼마, 머리 얼마, 이런 식으로. 사람이 소고기도 아니고 부위에 따라 매긴 가격표는 영 적응이 안 된다.
디스크 탓에 팔이 등까지 잘 안 닿는다. 누가 시원하게 등을 밀어주면 좋겠다, 하는 생각에 세신사에게 슬쩍 눈길을 주어 보지만, 내 몸의 때를 벗기는 것까지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고 싶지는 않다. 아니, 돈으로 사고 싶지는 않다, 아직까지는. 그냥 "등 안 미실래요?" 하고 누가 먼저 말 걸어준다면 또 모를까. 할 수 없이 그리 시원하지는 않지만 내 손으로 내 몸의 때를 벗기며, 돈 생각을 시작한다.
얼마 전에 '보건증'을 발급받으러 대한산업보건협회라는 곳에 갔다. 아이들이 생활하는 어린이집에서 특별활동을 하려면 제출해야 한단다. 종일 아이들과 같이 살던 보육교사라면 당연히 검사를 받아야 하지만, 지금은 내가 같이 식사를 하거나 배식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왜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내라고 하니 내야지. 보건증을 발부받으려면 장티푸스 같은 감염성 질병이 없는지 검사하고 가슴 엑스레이를 찍는다. 기왕에 엑스레이를 찍는 김에 건강검진도 하기로 했다.
아침 일찍 서둘러 갔는데도 대기순번이 30번이 넘었다. 기다리는 사람들 면면을 살펴보니, 근처 산업단지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인가 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보인다. 나처럼 일반으로 신청한 사람은 거의 없다. 평소에도 사람이 늘 이렇게 많은지, 검사를 하는 분들은 거의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얼굴에 웃음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저 호명하고, 검사하고, 안내하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그들도 참 힘들겠다, 싶었다.
보건증을 발급받는 데 1만 2천 원이지만, 건강검진을 같이 하면 5천 원으로 깎아준단다. 그래서 건강검진과 보건증을 단돈 5천 원으로 해결했더랬다.
시장통 같은 북적북적한 검진소에서 다국적 언어를 들으며 순서를 기다리다 보니 오래전에 대형병원에서 받았던 건강검진이 생각났다. 그때는 기본 검진에 몇 가지 검사를 더 추가했더니 검사료가 수십 만 원이 나왔다. 깨끗한 건물, 최신 의료장비보다 더 인상적인 건 말할 수 없이 친절했던 병원 관계자들의 태도였다. 그들이 나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을 리 없으니, 그들의 친절은 나라는 사람에 대한 예우가 아니라, 내가 내는 돈에 대한 예우였다.
백화점이든, 병원이든, 공항이든, 하다 못해 요즘은 아이들과 가는 놀이공원에서도 돈만 많이 내면 '프리패스'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을 많이 낸 사람은 고객이고,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하는 건 너무도 당연한 말이기는 한데, 그런데 나는 왜 돈 때문에 받았던 그 친절이 이제야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걸까. 돈이 돈값 한 거라고 무심히 넘겨도 될 일이건만, '그럼 돈 없는 사람은 어째?' 하는 염려 아닌 염려는 왜 드는 걸까.
돈이면 모든 것을 다 살 수 있는 세상이기는 하다. 노동은 물론 시간도 살 수 있다. 돈이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돈으로 생명도 연장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돈이 없으면 많은 게 불편하고 어려워진다. 그런데 어쩌면 돈으로 사는 게 가장 쉬운 일이기도 하다. 노력과 시간을 들여 고쳐 사용하는 것보다 "그러느니 하나 새로 사는 게 낫다."라고 여겨질 때가 얼마나 많았던가. 버리는 건 쉽고, 새로 사는 건 더 쉽고.
돈에 대한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많은 생각이 나니, 연인도 이런 연인이 없다. 돈과 사랑에 빠졌나?
퇴직을 하기까지 여러 직장을 전전하면서 나 역시 돈 앞에 굽신거려 온 것 같다.
계약직으로 근무한 첫 번째 직장에서는 밉보여 직장에서 쫓겨나면 안 되니까, 옳지 않다고 생각해도 그냥 따랐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간 적도 많다. 봉급이 오르고, 예기치 못하던 수당을 받으면 열심히 일할 맛이 났지만, 남들보다 적은 돈을 받으며 일한다고 생각되었을 때는 최선을 다해 일하지 않았다. 비슷한 직종인 다른 회사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상사에게 대접을 받은 것은 내 기획으로 회사가 큰돈을 벌어들였을 때였다. 그들은 내가 벌어들인 돈을 나라는 사람의 가치로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린이집에서 생활한 십여 년의 지난 세월을 돌이켜본다. 보육교사는 우리 사회에서 큰돈을 주면서 모시고 싶어 하는 직군에 속하지 않는다. 그러니 교사를 대하는 태도는 그야말로 천차만별. 개중에는 아마 대충 입고 다니는 옷, 화장하지 않은 얼굴, 중저가의 승용차, 내가 사는 아파트 평수와 같은 것들로 나를 판단해 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다. 아이들은 나를 '종이배'라는 한 사람으로 만났지, 내가 가진 돈 때문에 내게 굽신거리지 않았다. 내 앞에서 떵떵거리지도 않았고. 나 역시 아이들이(그 부모들이) 가진 돈을 보고 아이들을 차별하거나 다르게 대하지 않았다.(내가 돈 문제에 초월하거나 인격이 남달리 훌륭해서가 아니라, 어느 부모가 얼마나 부자인지를 몰라서 그랬을 거다.^^)
그러고 보니 월급을 타지 않는 지금이 참 행복한 시간이구나. 돈 많은 사람이라고 그 앞에서 비굴하게 굽신거리지 않아도 되고, 돈 없는 사람이라고 그 앞에서 내가 큰소리칠 것도 없고. 아이들을 만나고 벌 만큼 벌어 쓸 만큼 쓰는 지금 내 삶이 참 좋다. 그러니 나는 앞으로도 너무 많은 돈을 벌려고 탐하지 않을 것이며, 통장에 쌓인 돈이 적다고 슬퍼하지도 않으리라. 돈은 필요하면 생길 테고, 생기지 않으면 그만 쓰는 길을 택하면 될 테니까.
목욕탕을 나오며 '헤어질 결심'을 했으나 젖은 머리를 말리며 연인의 존재감을 다시 느낀다. 연인께서 백 원짜리 동전으로 계셔 주셔야 드라이기를 쓸 수 있단다. 참으로 헤어지기 어려운 분, 떼어버리기 어려운 분, 집착이 강한 분을 내가 사귀고 있구나. 그러니 어쩔 수 없지. 아들내미가 전역할 때까지는 군인 우대 할인이라도 악착같이 챙길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