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견인가? 오십 전후에 온다고 해서 오십견이라는데, 나는 육십이 다 되어 왔다. 감사하다. 우리 언니는 얼마 전에 넘어져서 손목 골절이 되었다.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 잠깐 갔을 때 다치는 바람에 치료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왔다. 게다가 오른손이다. 한 손으로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며, 아무도 도와주지 못하는 화장실 뒤처리가 가장 어려웠다고 했다. 나는 왼쪽이다. 감사하다. 어깨가 아프기 시작하니까 내 몸에 어깨가 있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아픔이 없는 동안 내 어깨도 없었다. 적어도 내 안중에는. 아픔이 오니까 어깨도 내게 왔다.
# 없어요, 아니요
공동육아에서는 별명을 주로 사용한다. 공동육아 문화 안에서 살아온 지 이십 년이 훌쩍 넘어가고, 나 역시 별명으로 불리는 게 이름보다, 세례명보다 더 익숙한데. 개중에는 남다르고 재미난 별명들도 있다.
엊그제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어떤 부모의 별명. 아빠는 '없어요' 엄마는 '아니요'란다. 그 별명이 지어지게 된 까닭은, "**이 별명이 있느냐고 물어봤는데, '없어요'라고 대답했더니 이렇게 된" 거란다. "그래서 '없어요'가 별명이야? 물으셔서 '아니요.' 그랬대요. 그래서 '없어요, 아니요' 이렇게 짝꿍이 된 거예요."
그랬구나. 재미있게 읽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뭐가 있는 거고, 뭐가 없는 거지? 별명이 있는데 어떻게 없어요지? 없어요 하고 불렀는데 왜 있지? 그분들은 있는 거야, 없는 거야?'
# 진짜 얼마짜리인 거지?
"종이배, 그거 알아요? 그 ** 선생님 팔찌요, 그거 천만 원도 넘는 거예요."
이삼 년 전, 나와 연배가 조금밖에 차이 나지 않는 모 선생님이 차고 온 번쩍거리는 팔찌를 보고, 또 다른 선생님이 지나가면서 던진 말이다. 그 선생님이야어린이집을 소일거리 삼아 다니는 거고, 평소에는 럭셔리하게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바가 있어서, 나는 그 선생님의 팔찌 가격보다 그 팔찌가 명품인 것을 단박에 알아본 다른 선생님에게 더 놀랐다. 어떻게 그런 걸 척 보고 알지?
젊을 때 있었던 일이 떠오른다. 강남에서 유치원을 하는 어떤 분을 만나러 가게 됐다. 그분이 연구 개발하는 교육과정을 책으로 만들 수 있을지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난 그날 나름 치장을 한다고, 리어카에서 산 오천 원짜리 귀걸이를 하고 나갔다. 그분은 내게 무척 호의적이었다. 당장이라도 계약하자고 할 판이었다. 나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해서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고 일어서려는데, 그분이 물었다.
"어머, 귀걸이 예쁘다. 그거 다이아예요? 몇 부야?"
"아, 이거요... 싼 거예요."
그리고 일어나면서 그분과는 일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다이아를 오천 원짜리로 보는 것도 아니고, 오천 원짜리를 다이아로 보는 안목이면, 그 선생님이 제공할 교육 자료는 보지 않아도 후지겠다 싶었다. 그런데 그 귀걸이는 진짜 얼마짜리지? 나한텐 오천 원, 그분한텐 오백만 원?
가끔은 이런 내가 정말 바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명품과 짝퉁을 구별해 내는 눈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난 그게 왜 명품인지조차 모르겠으니 말이다. 왜 수백만 원을 주고 그 가방에 붙여 있는 이름표 하나를 사는지, 왜 수천만 원을 주고 돌덩어리를 모아들이는지. 물론 그 빛나는 돌덩어리들을 갖다 주면 많은 돈을 받아올 수 있으니 그런 거겠지만, 그게 예쁜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이들 돌반지로 받은 몇 개의 금붙이도 기념으로 갖고 있는 거지, 그걸 돈으로 환산해 보지 않았다.(사실 지금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
가끔은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하기도 한다. 이 숫자가 뭘까. 이 통장에 찍힌 숫자들이 정말 내가 쓸 수 있는 돈일까? 내가 오늘 당장 죽는다면 이 숫자들은 누구 것이 될까? 내 자식들에게 갈 수도 있지만 상속세로 국가가 다 가져가 버릴 수도 있는데? 그러면 이 돈이 지금 나한테 없는 거 아닌가? 이거, 있는 거야, 없는 거야?
# 없으면 아프지도 않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는 엄마 생각을 자주 하지 않았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엄마는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엄마는 어떤 삶을 살았을까? 엄마는 그때 나한테 왜 그랬을까?' 등 엄마의 인생에 궁금증을 갖게 됐다. 엄마가 없어지니 나한테 엄마가 있다. 엄마를 생각하니 엄마가 있다. 사람은 없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을 두지도 않는다. 마음에 있으니 생각도 하고, 그리워도 하고, 미워도 하는 거지.
아프지 않으면 없는 줄 안다. 내 왼쪽 어깨처럼. 그래서 가끔은 여기저기 아픈 것도 괜찮다. 눈이 쓰물거린다. 아, 눈아, 너 거기 있었구나. 고맙다. 양파를 썰다가 손가락을 벴다. 피가 나면서 아프다. 아, 내가 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구나. 손이 거기 있었구나. 고맙다. 없으면 아프지도 못할 텐데.
# 나는 육십 살, 아직 여기에 있다.
나를 아프게 하는 일이 있다면, 내가 아직 세상에 있다는 얘기다. 한 해 한 해, 지나가면서 하느님은 내 몸에서 하나하나 차례차례 그 기능을 거두어가실 게다. 그것을 거두어가실 때는 꽤 아플 테고.
물론 주님께 낫고 싶다고, 낫게 해달라고 청하겠지만, 난 아프면서도 내가 아직 아픔을 감사하길 바란다. 사실, 이건 어마어마한 욕심이 아닐 수 없다.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긴 쉽지만, "할 수 없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도, 나는 여전히 '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의식하고 있는 한, 나는 '있어요.'다. '아니요'가 아니라, '네'라고 답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 그게 끝까지 '있을' 수 있는 길이다.
내 별명이 종이배라 반가워 일부 캡처해서 가져왔는데, 어디에서 퍼왔는지 잊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만드신 분께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