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아침에도 꾸르륵 멧비둘기 소리를 들으며 아까시 향기 가득 한 숲길을 걷고 왔단다. 아까시 향기를 맡으면 나는 1988년 봄날이 떠오른다. 나는 그해 처음으로 논에 들어가 모내기라는 걸 해보았어. 갯벌을 밟는 듯 발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보드라운 논흙의 느낌과 아까시 꽃 향기로 기억되는 그해 그 봄날. 30년도 더 지난 옛날 일이지만, 아까시 꽃향기는 언제나 아스라하지만 가슴 뛰는 그때로 나를 데려다준단다. 코로 한껏 숨을 마시며 꽃향기를 들이켜 본다.
2023년을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아, 너희는 어떤 봄 냄새를 맡고 있는지. 내일은 어린이날이라는데, 너희가 이담에 나만큼 늙었을 때 올해 이 봄날을 어떤 냄새로 기억하게 될지 문득 궁금해지는구나.
역사책 속에서는 기록되어 있으나,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누구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전 세계적인 팬데믹을 우리가 함께 살아왔지. 너희들은 어린이로, 나는 어른으로 보이지 않는 전쟁을 함께 치렀구나.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날들, 두려움에 떨던 날들, 몸도 마음도 암울해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 해답을 찾지 못해 갈팡질팡하던 날들이었다. 아직 종전선언을 하지는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와 벌였던 이 싸움에서 인류는 완패를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들아,
엄마 입을 보면서 말을 배워야 할 때, 기저귀처럼 입에 마스크를 채워야 했던 어른들을 용서하렴. 표정으로 말해야 더 잘 알아들을 나이였는데, 마스크를 잠시라도 벗어놓으면 마치 금방이라도 감염될 듯 호들갑스러웠던 어른들을 용서하렴. 마스크가 없으면 너희를 보호하지 못할 것처럼 설레발을 떨었던 모든 어른들을 다 용서해 주렴. 어른들도 이런 세상은 처음 살아보아 그랬구나. 너희가 보기에 어른들은 힘이 세고, 어른들은 옳고, 어른들은 뭐든지 잘할 것처럼 보이겠으나, 사실 어른들도 너희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란다. 아니 어쩌면 너희들보다 더 소심하고 불안해하는지도 모르지.
아이들아,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잘 놀았던 너희들을 존경한다. 쓰라면 두말 하지 않고 쓰고, "지금은 벗어도 돼?"라고 물으며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꾹 참고 살아준 너희들의 인내를 존경한다. 팔딱팔딱 뛰는 밭은 숨을 쉬면서도 힘껏 놀고, 그 답답함을 감내하면서도 팔다리 힘차게 휘두르며 뛰어다니고, 땀과 침으로 젖은 마스크를 쓰고도 신나게 웃어준 너희들의 생명력을 찬양한다.
너희들은 마스크와 관계없이 너희 본분대로 잘 놀았고, 잘 자랐는데, 어른들은 치사하게 마스크 뒤에 숨어 자기 본분을 다하지 못한 적이 많았음을 고백한다. 감염병이 두려워 돌아가시는 분들 손을 잡아드리지도 않았고, 축하해야 하는 자리인데도 가지 않았다. 버스에서 기침을 하는 사람을 향해 질시의 눈초리를 보냈고, 자기 탓이 아닌데도 걸렸던 사람들의 동선을 추적하며 마녀사냥 하듯이 몰아세운 적도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핑계로 합법적 따돌림을 하기도 했지.
나 역시, 감염의 우려로 쓰는 마스크가 아니라, 만나기 싫은 사람을 못 본 척하고 지나가기 위해 마스크를 코 위로 잡아올렸던 적이 종종 있었다. 마치 비 오는 날, 보기 싫은 사람과 마주치게 되면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고 지나갔던 것처럼.
아이들아,
너희는 마스크 뒤에 숨거나, 마스크로 너희의 얼굴과 표정을,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가리는 사람이 되지 않길 바란다. 마스크는 너희를 지켜주는 도구로 써야지, 교활한 어른들처럼 너희를 숨기기 위한 도구로 사용해서는안 된다. 눈이 웃으면 입도 웃어야지, 입은 찡그리면서도 눈은 웃으며 다른 사람을 대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너희는 결코 배우지말기를.
아이들아,
바이러스가 항복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지 않는 걸 보았다. 마스크를 쓴 채 피구를 하고, 마스크를 쓴 채 간식을 먹는 너희들을 보면 마스크가 어느새 얼굴의 일부가 되어 버린 듯하다. 마스크를 써야 더 예뻐 보인다고 일부러 벗지 않는다고도 하더구나.
마스크를 벗으니 그동안 걸리지 않았던 독감과 감기에 걸리기도 했다지. 미세먼지로 공기질이 나쁠 때마다 염려했던 나들이도 마스크를 쓰고 다니면서부터는 덜 걱정하게 되었으니, 마스크가 우리를 지켜준 공로를 인정해 주어야겠지. 마스크가 없었더라면 더 많은 사람이 감염되었을 거고, 더 많은 사람이 아프고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역시 추측일 뿐이지. 안 해본 것, 안 살아본 것에 대해서는 아무런 데이터가 없으니 말이야.
아이들아,
내일은 어린이날. 즐겁게 놀러 갈 생각, 선물 받을 기대에 한껏 들떠 있을 너희들에게 나는 축하가 아닌 사과를 하고 싶어진다.
너희보다 50년쯤 앞서 살았으면 50년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놓았어야 했는데, 내가 사고 버리고 쓰고 버리고 하면서, 생각 없이 누렸던 편리함 때문에 이 지경이 된 지구를 남겨주게 된 데 대해서.
감염병이 지나가고 있어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세상을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서.
너희가 기억할 어린 시절의 냄새를 향긋한 아까시 꽃향기가 아닌, 매캐한 미세먼지와 코를 찌르는 소독제 냄새가 된 것에 대해서.
너희가 친구들과 밥상머리를 같이 앉지 못하고 혼밥을 일상화하게 된 것에 대해서.... 고해성사 때 하는 말처럼 '그 밖의 알아내지 못한 모든 죄에 대해서도' 정말 미안하구나.
어린이날의 가치를, 의미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너희 앞에 무릎꿇어 용서를 청하노니... 마음 다해 사과하노니...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 지구.
좋은 지구를 물려주지 못해 정말 미안, 미안, 미안해, 아이들아.'
누가 이런 해괴망측한 구호를 만들었을까? 집보다 학교를 찾게 하는 게 정상적인 교육인가? 집에 가지 못하고 학교와 학원에 붙들려 있는 아이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