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들은 노는 게 재능이야

2023년 6월 19일 월 / 재능은 몰라볼 수가 없다

by 글방구리

살다 보면 예기치 않았던 일이 불쑥 일어난다. 아니 어쩌면 계획한 일보다 계획하지 않았던 대로 흘러가는 일이 더 많은지도. 그렇게 느닷없이 일어나는 일들에 당황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하기를 바라면서 하루하루를 지내는지도 모르겠다. 거창하게 인생살이를 운운하지 않아도, 아이들과 하는 글쓰기 수업 때도 가끔 이런 상황을 맞게 된다. 내가 계획하고 준비해 둔 수업 내용이 있어도 아이들에게 맞춰 수업 내용을 완전히 바꾸어야 하는 상황.


그날도 그랬다. 필사를 일찍 마친 재우와 율민이는 다른 아이들이 다 마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날에는 틈새 시간이 나면 주로 책을 뽑아 읽던 아이들인데, 그날은 둘이 마주 보고 앉아 끝말잇기를 시작했다. 끝말잇기는 상대방이 더는 이어가지 못하는 기발한 끝 단어를 생각해 내는 게 관건이다. 이를테면, '무릎' '세슘' '나트륨' '개밥그릇' 같은 것들. 그런데 두 아이는 되도록 이 놀이가 끝나지 않게 이어가겠다는 색다른 목표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상대방이 막혀야 놀이가 끝나는 데다, 5학년이라 제법 아는 단어가 다양하다 보니 놀이는 끝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하나둘 필사를 다 마친 아이들은 둘둘씩 짝을 지어 다시 끝말잇기를 시작했다. 마냥 지체할 수는 없어서 내가 말을 꺼냈다.

"얘들아, 이제는 수업해야지."

"아, 왜요~! 우리도 지금 우리끼리 수업하는 건데요!"

하긴, 두어 달 전에 끝말잇기를 수업에 활용했던 적이 있기는 하다. 끝말잇기에 나온 단어들을 유형별로 모아서 그 단어들을 활용하는 글쓰기를 해본 적이 있으니까. 그뿐이랴, 우리말 문법규칙인 두음법칙이나 품사에 대해 대략적인 감을 잡을 수 있는 놀이가 끝말잇기 아니던가. 그러니 자기들끼리 수업을 하고 있다는 말이 틀린 것도 아니다.


일곱 살 아이들과 <우리말 놀이>를 할 때 전래 말놀이를 알려주곤 한다. 그중의 하나가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되는 말놀이다. 내가 어릴 때도 불렀던 노래니 그야말로 불후의 명곡이다. 일곱 살 아이들과활동은 이것을 변형한 말놀이다. 원숭이 엉덩이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배운 '우리말 노래'(이오덕 시)로 시작하는데, 이 노래는 '뜸부기'로 끝난다. 뜸부기는 새야,로 시작하는 이 노래에 아이들의 이름이 들어가게 노랫말을 만들어 본다.

친구들이 무엇을 잘하는지 아이들은 제법 잘 찾아낸다. 재능은 숨기려고 해도 드러나는 거니까.

'일곱 살 때 했던 이 말놀이를 5학년 아이들한테 해보라고 해? 한 번 해 보지, 뭐!'


"좋아, 얘들아. 오늘은 그럼 글쓰기 대신에 말놀이 하자."

"오예!"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는 말에 끝말잇기는 끝났다. 칠판 앞에 모여든 아이들에게 세 가지 원칙을 준다.

"그래도 너희가 5학년이나 됐는데 일곱 살 때와 똑같이 할 수는 없잖아? 우리는 원숭이 엉덩이부터 시작해서 백두산으로 끝나면, 백두산으로 다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백두산으로 돌아오는 거야. 그 안에는 너희들 이름과 특징, 장점이 반드시 들어가야 하고, 반복되는 용어는 사용하면 안 되고. 어때, 가능해?"

"좋아요!"

일단 원곡부터 한 번 같이 불러보기로 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높으면 백두산!!!"

소리를 맞춰 노래를 부르니 모처럼 아이들답다. 아이브 춤에 맞춰 허리를 섹시하게 돌리던 아이들과 동일인물이 맞나 싶다.

아이들조차 '인생은 쓰다'라고 한다. 공부는 싫고, 학원은 귀찮고, 삼 형제는 불편하단다. 모범생은 주변에서 좀처럼 찾기 어려운가 보다, '없다'라고 하는 걸 보니.
내친김에 '엿장수 똥구멍은 찐득찐득' 놀이를 활용해 의태어, 의성어 찾아보는 놀이도 진행했다. 아이들 눈에 책은 지루지루하고 양말은 구리구리하다.
5학년 수업 때 하고 나서 3학년 수업에도 적용해 보았다. 3학년 아이들도 학교는 지루하고, 학원은 숙제가 많고 힘든 거란다.

말놀이가 모든 수업에서 다 잘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3, 4학년 통합해서 이루어지는 모임에서는 한두 아이의 목소리만 들리는 데다 억지스러운 단어만 주장하는 바람에 내용이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시간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무엇보다 서로의 특징이나 장점을 잘 모르고 있는 거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기는 했지만 그동안 함께 생활했던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아이들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함께한 세월과 시간의 길이만큼 서로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는 법. 각자 따로 놀아본 시간이 길기는 하지만 이제 함께 어울려 놀다 보면 그게 또 그들의 재능이 될 게다.


칠판에 다 적어놓고 보니, 아이들의 재능이 한눈에 들어온다. 곤충에 관심이 많은 녀석, 악기를 잘 다루는 녀석, 운동을 좋아하는 녀석 등.

문득 글쓰기에도 '재능'이라는 게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와 함께 지내는 아이들 중에는 '이 녀석 글쓰기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군.' 하는 아이는 보이지 않는다. 내게는 다행이기도 하고 불행이기도 하다. 재능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경험을 재산 삼아 마음껏 써보라 할 수 있어 다행이고, 천재적 작가를 제자로 두지는 못할 것 같으니 그것은 불행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불행은 아이들이 글쓰기 수업을 오는 것도 학원처럼 귀찮고 싫게 느끼게 되는 것이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그런데 말이다. 여기 오는 것도 너희한테는 학원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럼 여기도 귀찮은 거 아냐?"

"아, 아. 그렇죠..... 그런데 조금 달라요. 오기 전까지는 학원인데요, 오고 나면 계수나무(아이들이 다닌 생활형 공동육아 방과후 이름이다) 같아요. 앗, 간식 때문인가?"

아이들의 간식을 신경 써줘야 하는 확실한 답을 이렇게 듣고 만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어린이날에 보내는 사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