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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교사, 나쁜 교사, 이상한 교사

2023년 5월 15일 월 / 이상한 교사는 되지 말자고!

by 글방구리

빨간 장미가 피어나는 계절의 여왕, 5월.

5월 달력은 곳곳에 쳐놓은 동그라미로 장밋빛처럼 붉다.

거의 한평생 월급쟁이로 살아온 내게도 반갑고, 하필이면 그날이 개교기념일이라 쉬었던 아이들에게도 반가운 '근로자의 날'을 시작으로,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줄줄이 이어진다. 공휴일이 아니더라도 빨간색 표시를 해두어야 하는 날들이다. '부모세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그렇듯, 나 역시 어느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되는 그 '날들'을 챙기느라, 5월은 왠지 몸과 마음이 더 바빴다.


올해는 빨간 글씨 해방원년이다. 작년에 친정아버지를 마지막으로 양가 네 분의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시고 나니 위로 챙길 사람이 없다. '어린이는 초등학생까지'라는 암묵적인 합의에 따라 아이들에게도 어린이날을 챙겨줄 필요가 없다. 그렇게 가장 큰 기념일 두 개가 지나가고 나니 오늘, '스승의 날'이 되었다. 내가 현직 교사로 있을 때는 '스승의 날'이라는 말이 낯간지러워서 '교사의 날'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 퇴직을 하였으니 나와는 관련이 없는 날이 되어, '스승의 날'이라는 본디 이름을 되찾아오긴 했는데. 내 스승님들은 지금 어디에 계시는가.


내게도 많은 선생님들이 계셨다. 넓게 보자면야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라 하신 공자님 말씀처럼 "선생님!"이라고 부를 분들이 천지삐까리겠다.


중고등학교 시절을 돌이켜보건대, 나와 내 친구들을 열심히 가르쳐주시고 좋은 표양을 보여주셨던 선생님들이 속속 떠오른다. 하지만 그런 선생님들 중에도 그저 호칭만 선생님이었던 사람들도 있다. 우리 남편은 운전을 하다가 길을 모르면 잠시 창을 내리고 길을 묻기도 하는데, 그때 "저, 선생님. 길 좀 묻겠습니다."라고 한다. 나 역시 잘 모르는 사람한테 예의를 차려야 할 때 자연스레 "선생님!" 하고 부른다. 호칭을 선생님이라고 불러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는 정도만 되어도 나쁘지 않은 교사다.

그러나 정말 나쁜 교사도 있었다. 아이들한테 감정적으로 손찌검을 하지 않나, 성추행을 하지 않나. 좋은 교사, 나쁜 교사, 이상한 교사를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때가 학창 시절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는 '선생님'이라고 불러야 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나보다 상사인 사람은 대체로 과장, 차장, 부장, 팀장 같은 직함이 있었다. 뭉뚱그려 '선배'라고 부르기도 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선생님이라는 아껴 쓰고 싶은 호칭을 부르고 싶은 사람도 만날 기회가 없었다.


젊은 시절, 한동안 수녀원에서 공동체 생활을 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는 수련을 맡아해 주시는 분을 '수련장님'이라고 부르고, 그분보다 아래에 계신 두 분을 '선생수녀님'이라고 불렀다. 그분들도 사람인지라 죄도 지으셨을 테고, 여러 가지 단점도 있었을 테지만 그분들을 '선생님'으로 모시고 살았던 몇 년 동안 나는 한 사람의 성숙한 인간으로서 배워야 할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다 배웠다. 선생님이셨던 그분들이 직접 가르쳐주거나 살면서 보여주신 모범만 배운 것이 아니었다. 공동체의 힘이 컸다.


벌써 삼십 년도 훌쩍 더 지난, 그 시절만 해도 수녀원에 가고 싶어 했던 성소자들이 넘쳐났다. 그해에 나와 함께 같이 입회한 동기는 23명. 전국 각지에서 모인 처자들이다. 학력도, 나이도, 가정에 대해서도 서로 알려하지 말라고 했다. 그저 같은 출발선에 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동기들이라고, 오징어처럼 한 축으로 꿰어진 관계라고만 했다. 서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믿음만 있으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면서 살 수 있게 하려는 뜻이었을 게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만 보라는 배려였을 거고. 나를 제외한 22명의 자매들은 모두 내게 선생님이 되어 주었다.


어느 집단이든, 좋은 사람, 나쁜 사람, 이상한 사람이 다 있지만, 그곳에는 좋은 사람만 있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들어 내려는 좋은 선생님들의 노력 덕분이었다. 가끔 '좀 이상한데?'라고 할만한 사람도 있기는 했다. 나 역시 좋은 사람 쪽보다는 이상한 사람 쪽에 더 가까웠을 때가 많았을 거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다 나갔다. 내가 그런 것처럼.


그 후에도 내게는 참 많은 선생님들이 계셨다.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분의 삶 자체가 성서처럼, 교과서처럼 길잡이가 되어 주신 권정생 선생님, 이오덕 선생님을 비롯하여 내가 공동육아 교사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신 분들이 참 많다. 내게 '좋은 교사'이셨던 분들은 이제 대부분 양지바른 무덤에 자리 잡으셨다.


뒷산을 배경 삼아 누우신 그분들 대신에 내게 좋은 교사가 되어 주는 건, 살아 있는 자연이다.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고, 꽃을 피우고, 꽃을 떨구고, 열매를 맺고, 빈 몸으로 견디는 나무. 새벽 일찍부터 날아다니면서 성실함을 보여주는 새. 보아주는 이 없어도 겸손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 지렁이까지. 내 곁에서 숨 쉬는 생명체들은 내게 무한한 배움의 장을 열어준다.


나쁜 교사도 있다. 저렇게 살지는 말아야지,라는 마음을 갖게 해주는 정치인들,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는 권력자들, 국민들의 혈세로 자기 곳간을 채우는 이 시대의 탐관오리들. 뉴스만 틀면 권력 앞에 머리를 조아리는 비굴함을 보지만, 나는 그들에게서는 오직 '반면교사'라는 말만 떠올리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면 내 곁에 있는 '이상한 교사'는 누구인가?

내게 깨달음을 주는 세 마리 고양이일 때도 있다. 그들의 삶은 단순하고 그지없이 평화롭지만, 가끔 아무 데나 똥도 싸고, 서로 잡아먹을 듯이 다투기도 한다. 또 우리 옆쪽 건물에 사는 아저씨일 때도 있다. 그 아저씨는 자기도 도로에 불법주차를 하면서, 자기 집 앞에 잠깐 정차해 놓는 차를 불법주차로 신고하기를 밥 먹듯 한다. 내로남불인지, 왜곡된 준법정신인지 알쏭달쏭하다.

이상한 교사는 우리 아이들일 때도 있다. 다 컸다고 자기 삶에 간섭하지 말라면서도, 내가 어린이날에 '엄마에겐 영원한 아기니까.'라는 오글거리는 문자와 함께 보낸 용돈은 거절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상한 교사인지도 모른다. 사교육 선생으로 돈을 벌면서도 아이들에게는 되도록 사교육을 시키지 말자고 하니까. 그러니까 그 자리는 빈칸으로 남겨놓아야 한다.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자리니까. 나는 되도록 안 들어가고 싶은 자리지만, 언제든 빠질 수 있는 함정 같은 자리니까. 비록 소수일지언정 '교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동안에는 계속 경계해야 할 자리니까!

시어머니와 친정아버지는 장미꽃 화사한 5월에 돌아가셨다. 어버이날은 그냥 넘어간다고 해도 부모의 은혜는 내내 잊지 말라는 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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