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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으로만 만나는 게 아니니까

2023년 7월 9일 일 / 외로운 뒷방늙은이가 아니라고요

by 글방구리

집에서 어린이집으로, 어린이집에서 다시 집으로.

그간 다니던 직장과 함께 서울살이를 정리하고 내려온 지 어언 16년째다. 인생 2막을 시작하고 나서 내 삶은 오롯이 '집에서 집으로'였다. 근처에 있는 마트나 성당, 도서관을 드나들지 않은 건 아니나 그런 곳들도 다 집에서 2~3킬로 반경에 자리하고 있으니, 나는 아직도 내가 사는 이 도시의 길을 잘 모른다.


모르는 게 길뿐이랴. 만나는 사람도 정해져 있었다. 어린이집 교사들, 부모들, 그리고 아이들. 고등학교 때 둘도 없는 단짝친구였던 진영이가 30년 전에 내려와 같은 구 내에 살고 있었는데도, 나는 재작년에야 비로소 진영이를 만났다. 지척에 사는 친구도 못 만나고 살았으니, 멀리 떨어져 사는 친구들이나 친척들, 지인들은 말해 무엇하리.


퇴직을 하고 나면 그간 요원했던 관계들을 살뜰하게 챙기며 살 수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만나는 사람들은 더 적어졌더라. 기껏해야 수업할 때 만나는 아이들, 오가면서 마주치는 노인정의 할아버지들, 수업을 도와주는 선생님 한둘이 전부다. 가족은 '만나는 사람'이라기보다는 '함께 사는 사람'들이니 예외. 만나서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대충 이렇게 정해져 있었는데, 사실 노인정 할아버지나 아이들과 나누는 이야기들을 '대화' 축에 끼워줘야 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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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 2년 차인 올해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산다. 손가락으로 헤아려보니 일곱 살부터 5학년까지 만나는 아이들이 모두 다해 40명이 조금 넘는다. 초등학교로 치면 한 반이 넘는 인원이다. 꽤 많다. 게다가 방과 후 교사회와는 한 달에 한두 번 정기적인 만남도 갖고 있다. 글방구리라는 이름으로 작업실을 열었더니, 가끔 손님이 오기도 한다. 그저 지나가다 만나서 차 한 잔을 하고 가기도 하고, 일부러 마음먹고 찾아오기도 한다.


내 동선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집에서 집으로' 이어지던 일상이 '집에서 작업실로, 작업실에서 집으로' 바뀌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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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외로운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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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외로운 거라면 그건 순전히 내 탓이다. 내가 사람을 가려서 만나기 때문이다. 퇴직 전에는 풀타임으로 일하느라 만나고 싶어도 못 만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반면 만나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겉으로는 웃고 있으나 속에서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되는 관계도 있었다. 앞에서는 인사를 해도 뒤에서는 험담을 하게 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퇴직을 한 이후로는 내가 만나고 싶으면 만나고, 만나고 싶지 않으면 안 만나도 된다. 외로운 게 아니라 자유롭다.


그래선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부분이든 '존경하는 마음'으로 만나고 있다. 아이들과 지내는 시간을 좋아하고 기다리는 이유도 아이들을 존경하는 마음 때문이다. 조금은 거친 표현으로 "아이들의 기를 쪽쪽 빨아먹는 중이야"라고 하지만, 그들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생명력을 존중하고 부러워한다. 게다가 몇몇 아이들에게서는 그저 바라만 봐도 흐뭇한 순수함과 따스함을 느낀다. 너무도 쉽게 친구를 용서할 줄 아는 아이들, 주어진 순간을 한껏 즐기며 노는 아이들, 작은 것에 감탄하고 고마워하는 아이들의 심성을 존경한다. 나는 결코 갖지 못하는 것들이고, 앞으로도 갖기 어려운 것들이다.


작업실을 찾아온 후배들에게서도 존경심을 느낀다. 보육교사라는 열악한 직업 환경 속에서도 열심히 일한다. 원장도 아니고, 원감도 아니지만 일개미처럼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젊은 그녀들이 대견하다.


어린이집 일을 자기 일처럼 걱정하는 몇몇 부모들에게도 존경심을 갖는다. 자기 아이만 잘 키우면 된다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들은 마을 안에서 공동체적인 시각을 가지려 무지 애를 쓴다. 돈 안 되는 일에도 적극적이다.


여고시절에 지녔던 고운 결을 환갑이 된 지금까지 그대로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굳건한 신앙심으로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진영이도 존경한다. 그래서 만난다, 아주 기쁜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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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문득, 내가 눈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존경할 수밖에 없는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인 석학부터 이름난 작가들까지, 다양한 필자가 쓴 각종 책이 내 방을 가득 채우고 있다. 서재라 말할 수는 없을 만큼 작은 다락방이지만, 한 권 한 권 모두 읽고 싶어 샀던 책들이다. 종이가 좋아서 사지 않았다. 제본이 훌륭해서 산 것도 아니다. 그 안에 담긴 글쓴이의 생각을 알고 싶어서 산 책들이다. 그들을 만나고 싶어 책을 샀고, 책을 읽으면서 실제로 그들을 만나고 있었다.


물론 대화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만남은 아니다. 내가 그들을 만날 뿐, 그들은 나를 만나지 않는 일방통행이라고 해도 할 말 없다. 하지만 만나고 싶은 사람만 만날 수 있는, 조금 심심해 보일지도 모르는 인생 제3막에서는 이보다 더 편안한 관계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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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을 앞둔 아들내미 방을 정리해 주었다. 책장이 꽉 차서 비워주어야 한다. 인연이 다한 책들을 골라낸다. 더는 안 볼 것 같은 책을 고르는 게 쉽지 않다.

'초등학교 졸업 후 46년 만에 나를 보겠다고 기차 타고 내려왔던 유진이 같은 책이 있을 수도 있는데. 놔두면 아이들이 읽을 수도 있는데.'

눈을 질끈 감는다. 아이들은 그들 스스로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가게 해야지. 묵은 감정을 내다 버리듯 묶어서 내놓았다. 이 책들을 통해 만난 사람들의 좋은 생각들이 내 세포의 어느 한 부분에 들어와 내 살과 뼈가 되어 주었을 거라 믿으며 마지막 인사를 한다.

보이지 않게 나를 키워준 고마운 책들,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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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며칠 뒤, 온라인 서점 '알라딘'에서 창립 24주년을 맞아 '당신의 기록'이라는 리포트가 도착했다. 그 기록을 보니 내가 알라딘과 인연을 맺은 지 23년이 되었더라. 내가 알라딘을 통해 산 책이 1,919권이나 된단다.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가장 많이 사고, 보리출판사 책을 가장 선호한 걸 보니, 나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도 좋은 만남을 하고 있었다.

책값을 대체 얼마나 많이 쓴 거냐?속으로 뜨끔하기도 했지만, 출판문화산업에 기여했다고 치자.

책꽂이를 다시 찬찬히 살펴본다. 한 번 읽은 책도 있고, 여러 번 읽은 책도 있고, 아직 읽지 않은 책도 있다. 동서고금, 세계 각국의 훌륭한 분들이 줄을 서서 날 만나겠다고 기다리는 중이다. 무수한 인연을 폐지로 보내고 난 허전함이 사라진다. 나는 더 이상 외로운 뒷방늙은이가 아니다!

박노해 시인의 걷는 독서에서 인용한 글귀를 7월 달력에 써넣었더랬다. 배우고 말하기보다는 깨쳐내고 살아내야 할 때다. 책은 그만 사고, 읽고 만나야 할 때고.
얼마 전 읽은 [내면소통]. 생소한 뇌과학을 얻어듣고, 몸에서 이루어지는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뿐인가? 저자를 만나면서 마나 작가님도 함께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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