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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야, 아프지 마라

2023년 8월 3일 목 / 너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by 글방구리

내 친구가 아프다.

영춘화인지 개나리인지, 멀리서 노랗게만 보이던 꽃이 궁궐 담벼락 밑에 피어 있던 어느 날, 그 궁궐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카페에서 친구 여럿이 만났을 때만 해도 그 친구는 아프지 않았다. 아니, 그때도 아프다고는 했는데, 그땐 그냥 아픈 거였다. 체한 것 같다고 했다.

그 친구를 위해 한 친구는 소화제를 사러 나갔다. 일요일이라 열린 약국이 없어 두 정거장이나 걸어갔다고 했다. 닫힌 약국 옆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아줌마의 친화력을 발휘하여 소화제를 구해왔다고 했다. 민간요법을 추종하는 나는 친구를 위해 가방에서 사혈침을 꺼냈다. 국내 굴지의 병원 의사인 다른 친구 앞에서 무모하게도 나는 친구의 손가락을 땄다.


그 후 몇 개월이 지났다. 어느 일요일 저녁, 늦은 식사를 준비하면서 캔맥주 하나를 들이켜는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반갑게 받았다.

"오랜만에 전화하는데, 좋은 소식이 아니어서 미안해."라고 말을 꺼낸 친구는 자기가 아프다고 했다. 대장암이라고 했다. 초기가 아니라고 했다. 의사 친구의 도움으로 수술 일정을 빨리 잡았다고 했다. 이 친구는 여고동창생이다. 그런데 나는 지난번에 같은 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난 다른 친구가 떠올라 겁이 덜컥 났다. 서로 알지 못하는 다른 친구지만, 나는 내 친구들과 그렇게 빨리 헤어지고 싶지 않다. 그것도 같은 병으로.


십여 년 전,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배 생각이 났다. 후배와는 주일학교 교사를 함께 했었다. 후배는 수녀원에 들어가 그곳에서 오래 살았다. 수녀일 때 봤던 베이지빛 수도복이 잘 어울렸다. 그러다 어느 날 퇴회했다는 소식을 바람결에 들었다. 그 바람은 후배의 투병 소식도 알려줬다. 후배는 나를 보고 싶다고 했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었다. 병원에 가서 나는 핼쑥해진 후배를 안으려 했다. 후배는 말했다.

"언니, 만지면 내가 아파."

얼마나 아프면, 십수 년만에 만나 포옹을 할 수조차 없나 싶어 마음이 아렸다. 침상에 누워 내 손을 잡은 후배는 베갯머리에서 핸드크림을 꺼내더니, 내 손등에 크림을 짜서는 가만가만 문질렀다.

"언니, 왜 이렇게 손이 텄어."

아픈 후배가 내 손을 잡고 나를 걱정했다. 나는 후배를 안아줄 수도 없었다. 왠지 모르지만 미안하다는 마음만 들었다. 나보다 어린 후배는, 자기가 12월 8일 성모님 축일에 천국에 갈 거라고 했다. 세 번째 바람은 후배가 12월 8일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전했다.


작년에 여든아홉으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는 만날 때마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당신 친구의 죽음을 말씀하시곤 했다.

"왜, 너 아빠 친구 김** 알지? 그 사람도 며칠 전에 죽었어. 내 친구들 다 죽었어."

나는 당연히 아버지의 친구를 모른다. 아버지가 내 친구를 알지 못하듯.

"아, 그래요?"

나는 아버지 친구의 죽음이 안타깝거나 슬프지 않았다. 아버지 친구는 아버지만큼 나이가 드셨을 거고, 아버지처럼 질병을 앓고 계실 거니까. 아버지 친구의 죽음은 그냥 있을 수 있는 일이고, 와야 할 일이고, 일어나야 할 일이었다.

아버지 친구가 아프다는 것과 내 친구가 아프다는 것은 다르다. 그런데 아버지는 지금 나만큼이나 친구의 죽음이, 친구의 질병이 괴로웠겠구나 싶다. 나이가 들어도 친구는 친구니까.

돌아가신 아버지한테는 미안하지만, 만약에 아버지가 살아 계신다고 해도 지금은 아버지가 아프다는 것보다 내 친구가 아프다는 게 더 가슴이 아플 것 같다. 내 친구는 내 생각에 아직은, 너무 젊다.


나는 아픈 내 친구에게 공약을 하나 걸었다.

"네가 항암치료 씩씩하게 잘 받고 회복되어 짠, 하고 나타나면 내가 언니라고 불러줄게."

사실 내가 친구들보다 한 살이 어리니까 밑져야 본전인 공약이다. 그러나 열예닐곱 살 때부터 친구였던 친구를 환갑이 되어 언니로 우대한다는 건, 친구가 겪은, 혹은 겪을 고통의 시간들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감내해야 할 생로병사의 길을 씩씩하고 담담하게 먼저 걸은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칭찬스티커 같은 거랄까.

육십 년 가까이 살면서 내가 아는 이들은 자주 아팠고, 그중 더러는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 할아버지, 어머니 아버지가 아프다가 돌아가셨다. 조금 더 세월이 흐르니, 사촌언니 사촌오빠가 아프다가 돌아가신다. 생로병사가 차례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지만, 차례대로 이루어진다고 해도, 다음에는 나와 내 친구들 순서가 되겠지. 순서대로 오는 게 행복한 거라고, 감사한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순서대로 오면 좋겠다. 하지만, 그래도 내 친구는 너무 많이 아프지 않으면 좋겠다.


나는 친구가 아프지만, 아픈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가족이 아프면 간병을 하면서 힘을 줄 수 있을 게다. 먹고 싶어 하는 것이 있으면 사다 줄 수도 있을 게다. 그러나 친구가 아프면 '힘내'라고 써진 이모티콘을 보내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친구가 아프기 전까지 나는 그 친구를 아주 가끔 생각하면서 살았다. 소식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았다. 친구가 아프고 나니, 나는 날마다, 아침마다 그 친구를 생각한다. 성경을 필사하면서 그 친구가 오늘도 안녕하길, 고통을 잘 견디어 내길 응원한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친구를 향한 기도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아마 내가 아프다고 해도, 내 친구들도 나를 이렇게 기억해 줄 것이다. 내 친구들도 나에게 먹을 것을 보내주거나 간병을 해주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생각할 것이며,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다고 속상해할 것이다. 친구란 건, 거기까지인가 보다. 마음은 있어도 몸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비가 지겹게 오더니 오늘도 폭염이다.

뜨거운 여름이 가고, 선선한 가을이 오고, 흰 눈 내리는 겨울까지 무탈하게 가고, 다시 노란 영춘화가 궁궐 담벼락에 필 때, 다시 내 친구들을 만나러 가고 싶다. 그때, 내 친구도 고통을 이겨내 더 말갛고 고와진 모습으로 그 자리에 함께하기를 바란다. 그 자리에서 난 친구에게 진짜 언니, 하고 불러주겠다. 내 오랜 친구 송이한테.

친구의 기도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힘이 될 것이다.
우리들을 친구로 만들어 준 아름다운 추억의 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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