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오려나. 비 갠 하늘에 뭉게구름이 곱다. 여기가 예뻐 여기를 찍으려 하면, 저기 떠 있는 저 구름이 더 예쁘다. 예쁘다는 형용사보다는 곱고, 신비롭고, 신기하다는 단어가 더 어울릴까. 그런가 하면, 한편 참 허망하기도 한 구름일 뿐인, 저 뭉게구름.
한여름이 너무 덥고, 땀이 많은 내가 갱년기 이후 할매가 되고 나니 더더욱 싫어진 게 있다. 바로 브래지어다. 퇴직 전에는 아무리 하기 싫어도 남들 보기에 민망하면 안 되니까 날마다 챙겨 입어야 했던 속옷. 그러나 퇴직을 하고 난 뒤에는 이것도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기로 한다.
요즘 매우 핫한 어느 작가님(젊은 여성 작가다) 책을 읽다 보니, 브래지어 따위는 아무렇지 않게 벗고 살아도 별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나는 육십에 접어드는 할매. 생각이 그 작가님처럼 그리 페미니즘적이지도, 리버럴하지도 않아서 외출할 때마다 은근히 신경이 쓰인다.
"있잖아, 엄마 안 한 거, 티 나니?"
딸내미한테 물어본다.
"괜찮아. 사람들이 엄마한테 별로 관심 없어."
그 말이 맞다. 사람들이 내 가슴만 쳐다보는 것도 아니니, 속옷을 입었거나 말거나 겉모양만 잘 가리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이 엄마한테 별로 관심 없다는 그 말이 어쩐지 약간은 서운하다.
젊었을 때는 내가 무척 중요한 사람인 줄 알았다. 어디에서나 인싸, 그것도 핵인싸가 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실제로 어떤 집단 안에서 나는 묻혀 가는 쪽보다는 드러나는 쪽에 가까웠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 1학년 담임선생님이 엄마한테 이런 말을 했다고 했다.
"그 반에 들어가면 **이가 눈에 확 띄어. 별처럼 눈에 걔만 들어와."
담임선생님이 엄마 친구여서 그런 말을 했을 거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나 어릴 때는 내가 진짜 그렇게 돋보이는 존재인 줄 알았다. 여자중학교, 여자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의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해야겠다는 듯이, 나는 무척 나댔다. 다른 반은 학급 석차가 1등은 반장, 2등은 부반장이 하던 룰이 있었건만, 나는 석차가 10등 밖으로 밀려나는 적이 많았어도 반장이나 부반장을 했다. 반에서 임원을 맡은 아이들은 속칭 '노는 애들'이나 '운동부 애들'과는 놀지 않는다는 룰도 나는 깼다. 키가 가장 작은 1번부터, 어쩌다가 수업에 들어와도 엎드려 자기만 했던 맨 뒷자리의 '노는 운동부 애들'과도 친하게 지냈다.(이건 옆으로 새는 얘기지만, 키 순서대로 번호를 매기는 것은 얼마나 비민주적이고 원시적인 방법인지! 한 해 동안 언제 누가 얼마나 클 줄 알고. 그깟 키가 뭐라고.). 그래서 나는 내가 무척 중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한여름날, 남 보란 듯이 파란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오만한 뭉게구름처럼.
뒤늦게 카톡을 시작하고 나서, 카톡 기능 중에 가장 이해가 되지 않았던 건 '멀티 프로필'이었다. 카톡 개인 선생님이었던 딸내미는 멀티 프로필 기능을 입이 마르게 칭찬했더랬다. 그룹을 정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줄 수 있다는 게 요지였다.
나는 처음에는 그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진이 있다면 뭐 하러 프로필에 올리며, 그렇게 굳이 사람을 가려가면서 할 필요가 있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딸내미처럼 멀티 프로필 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 브런치도 그렇다. 브런치에 글을 적극적으로 올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누가 내 글을 읽으면 좋을지(아니, 누구만큼은 내 글을 읽지 않았으면 좋겠는지) 카톡 프로필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챙기게 됐다. 그래서 새로 생긴 좌우명 하나. 내 글을 읽으면 안 되는 사람에게는 절대 브런치 주소를 발설하지 말지니!
"아들! 엄마한테 며칠 전에 보이스피싱 왔잖아. '엄마, 난데요, 폰이 망가져서 컴퓨터로 쓰고 있어요. 이것 보시면 연락 주세요.'라고. 그런데 엄마 절대 안 속지. 너는 그렇게 긴 문자를 보낼 리가 없잖아?"
아들내미와 딸내미 카톡 메시지는 길어야 한 마디다. '넹'으로 통일되거나 'ㅇㅋ' 같은 초성 문자 몇 개로 소통이 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아들내미가 하고 있다는 인스타그램도 비공개 계정인데, 나한테는 열어주지 않는다.
"아들! 엄마가 인스타 친구 요청했는데, 안 되더라? 공개 안 해줄 거임?"
"왜 거길 들어오려고 해요? 나도 엄마 브런치 안 보잖아요."
"엄마 브런치? 너 봐도 돼!"
아들의 인스타와 나의 브런치를 교환해 보려 했으나 실패.
사실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고 지인들한테 공개하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내가 생활 반경이 워낙 좁다 보니,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아, 이건 누구누구 얘기군.' 하고 짐작할 수 있겠기에 그렇다.
가족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간혹 부담이 될 때가 있다. 아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아들 이야기를 자유롭게 쓰기 어렵고, 시댁 식구가 보고 있다면 시댁 흉을 볼 수 없을 테다. 남편이 읽고 글이 좋다고 하면 쑥스럽다. 내가 얼마나 대충 사는 인간인지 곁에서 수십년 지켜본 사람이니, 글 속에 미화되어 있는 내 모습을 눈치챘으리라. 요지는, 글을 쓰는 공간만큼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그저 나 자신으로만 존재하고 싶다는 말이다.
마음이 이렇다 보니, 브런치 구독자 수가 늘어날 리가 없다.
'그동안 써 왔던 글을 브런치북으로 묶어볼까, 모아진 게 있으면 공모전에 응모해 볼 수도 있겠지, 박완서 선생님도 나이 마흔에 작가 데뷔하셨다는데, 나라고 못할 게 있나.' 이런 욕심이 올라올 때도 있다.
그러나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찬찬히 읽다 보면 이런 마음은 진짜 욕심일 뿐임을 알게 된다.
'아니, 세상에 글 잘 쓰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았단 말이냐! 나 같은 아마추어는 쨉도 안 되는구나. 그저 쓰는 걸로 만족하자고.'
토끼였다가 잠시 후에 보면 고래로, 상어로, 악어로 바뀌어 있는 뭉게구름처럼, 내 마음도 시시각각 바뀐다. 그런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브런치에서 새로운 알림이 떴다. 크리에이터 신청 어쩌구, 응원하기 어쩌구저쩌구.
'아하, 유튜브처럼, 브런치에서도 구독, 좋아요, 슈퍼챗 뭐 이런 걸 하겠다는 거구나.'
눈으로 슬쩍 훑어보니, 몇 가지 조건이 달려 있다. 그중에 가장 먼저 보인 게 구독자 수 100명 이상. 첫 번째 조건에서 벌써 탈락이다. 별로 아쉽지는 않다. 어차피 일부러 구독자 수를 올리고 싶은 마음 따위는 처음부터 없었으니까.게다가 생업작가가 된다는 건 기대도 안 하니까.(책을 내고픈 마음은 다른 욕구에서다. 책을 내는 걸로 밥벌이가 가능한 수익을 얻는다는 건 거의 하늘에 별을 따거나 길 가다가 떨어지는 별조각을 줍는 것만큼이나 어렵다는 사실은 출판계에서 일할 때부터 진작에 알고 있었으므로!)
오늘은 내가 먼저 딸내미에게 말했다.
"**아, 사람들이 엄마한테 별로 관심 없지?"
"응. 그런데 왜?"
"아니, 더워서, 반바지 입고 나갈까 하는데. 너무 짧은가 싶어서. 노인네가 주책맞게 너무 짧은 것 입었나 흉보지 않을까 했는데. 사실 사람들이 엄마한테 별로 관심이 없으니까 그냥 입어도 될 것 같아서."
"입어. 다른 사람은 몰라."
"그지? 위에 브라도 안 했는데. 잘 모르겠지?"
"그럼. 몰라. 괜찮아. 그냥 나가."
사람들이 관심을 별로 주지 않으니, 참 편하기도 하구나.
그냥 비 갠 파란 하늘에 나 혼자 뭉게뭉게 피어올랐다가, 때가 되면 어느새 슬그머니 사라지면 되는 뭉게구름 같은 인생. 나 혼자 토끼도 됐다가, 악어도 됐다가. 다 괜찮다. 아니, 참 좋타!!!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래? 신청한 적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크리에이터' 배지가 붙었더라. 로또 맞은 기분이 이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