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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보다가 나를 잃어버렸다

차라리 포장김치를 사다 먹을 걸 그랬나

by 글방구리

그저 김치 한 봉투 사러 갔던 길이었다. 냉장고에 김치는 다 떨어져 가는데 일을 벌이기는 귀찮다. 올해는 김장을 예년보다 한 주간 더 일찍 하자고 계획했으니, 김장 때까지 남은 날은 불과 20일 정도밖에 안 된다. 포장된 김치 한 봉투만 사면 그때까지 버틸 수 있으니 쉽게 쉽게 가자고 마음먹었다. 평소에는 별로 가지 않는 대형마트로 향했다. 오늘은 일요일. 오픈한 지 30분밖에 되지 않아 식료품 매장은 아직 한산했다.


오늘은 김치 사러 왔으니 김치 코너로 간다. 입이 떡 벌어지게 비싸다. 물가가 장난 아니게 올랐다는 것은 익히 체감하고 있었으나, 예상했던 것보다 두세 배는 더 비싼 가격에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잠시 고민하다가 채소 코너로 카트를 돌렸다. 배추 한 포기, 쪽파 한 단을 집어넣었다. '그래, 귀찮아도 담가 먹자!' 마치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 어깨가 살짝 올라간다. '멋져, 나를 칭찬해!'


우리 집은 20년 전부터 생협을 이용해서 장을 봤다. 큰 아이를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생협이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생협에서 공급되는 물품은 제한적이었고, 주문했던 물품이 결품 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필요한 식자재를 되도록 모두 생협에서 사기 위해 세 곳(자연드림, 에코생협, 한살림)의 조합에 가입했다. 세 곳에 다 없는 거면 안 먹어도 되는 거라는 나만의 원칙도 세웠다.


그런데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나니 아이들은 새로운 맛에 눈을 떴다. 학교 급식에는 인스턴트에 가까운 반조리 식품이 자주 나왔고, 아이들은 참새방앗간처럼 들르는 분식집 떡볶이와 포장마차의 붕어빵 맛을 알게 됐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에는 편의점을 제집처럼 드나들었다.


"이거 생협 거야?"

"이거 생협 거야."

하나의 문장이지만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그 뜻은 완전히 다르다. "이거 생협 거야."라고 마침표를 찍어 말하는 내 말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이 음식은 국내산이고 유기농으로 생산된, 매우 건강한 식품임. 설령 외국에서 들여온 거라 할지라도 공정무역을 통한 것이므로, 의미 있고 윤리적인 소비를 한 것임. 그러니까 잔말 말고 다 먹기 바람.'

그런데 식구들이 "이거 생협 거야?"라고 물음표를 붙여 말할 때는 의미가 단순했다. '맛없어.'


생협은 억울하겠다. 생협 물품이 진짜 맛없다기보다는, 입맛이 달라진 아이들이 엄마의 요리 솜씨를 대놓고 타박하지 못할 때 "생협 거라서 맛없다"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집 밖의 음식을 더 좋아할 때쯤, 나도 생협이 아닌 대형마트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갈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와, 이렇게 편리한 세상이 있었던 거였어?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많았어?'


다시 오늘 일로 돌아와 보자. 애초에 포장김치 한 봉투만 딱 들고 나왔더라면 오늘 이 글은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포장김치에서 담그는 김칫거리로 바꿔 선택함으로써 2만 원쯤 절약한 나는 살짝 기분이 업되어 식재료 코너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때 내 앞을 가로막는 사람이 있었으니.


"고객님! 지금 2분 남았어요. 소 한 마리 잡으면 1킬로밖에 안 나오는 안창살 아시죠? 그 안창살로 양념까지 다 한 불고기감 2분 후에 타임세일해요. 딱 5분 동안 열 분한테만 30퍼센트 할인해서 팔아요. 5분이 지나면 다시 원래 가격으로 가는 거예요."

"아, 네. 그래요?"

"아무것도 더 하실 필요가 없어요. 이건 진짜 놓치면 후회하세요. 딱 2분 남았어요. 여기에 카트 잠깐 두시고 한 바퀴 돌고 오시면 돼요. 열 명한테밖에 안 파는 거라 카트로 줄을 세워야 해요."

대답을 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눈을 마주치지 말았어야 했을까(나중에 돌이켜보니 홍두깨살도 앞다리살도 아닌 안창살이라는 말에 솔깃해진 짧은 순간, 필경은 이때 '그것'을 잃어버린 것 같다). 그는 말을 하면서 내 카트를 슬쩍 끌고 가 구입 대기 줄에 세웠다. 나도 거부하지 않았다. 아니, 마치 행운의 기회에 당첨되기라도 한 듯 잠깐 설레기도 했다.


한 바퀴를 더 도니, 이번에는 에어프라이어에서 갓 구워낸 치킨 냄새가 발목을 잡는다. 코로나 때는 없었던 시식 이벤트가 코너마다 활발하다. 한 점을 집어먹는다. 먹어보고 맛이 있으면 사라는 것이 시식행사를 하는 이유일 텐데, 나는 시식을 하고 나면 왠지 미안해서(마음이 약한가? 바보인가?) 하나씩은 사게 된다. 한 봉투를 집어 카트에 넣었다.

"이거 지금 세 가지 맛이 있어요. 요것도 드셔 보세요." 판매원이 이쑤시개로 꽂아 준다.

"두 봉투 하시면 500원씩 할인되고요."

어느새 내 카트 속을 들여다보았는지, 이런 말도 덧붙인다.

"아, 마침 맥주도 사셨네요. 맥주랑 드시면 아주 맛있죠. 세 봉투 하시면 한 봉투 더 드려요."

'살까? 포장김치 안 사고 돈 아꼈잖아. 김치 담그면서 먹지 뭐.'

과연, 내 카트 속에는 치킨이 몇 봉투 들었을까?


집에 돌아와 두 개의 장바구니에 가득 찬 식재료들을 풀어놓는다. 안창살 불고기감은 한번에 다 먹을 양으로는 너무 많아 세 개로 나눠 담겨 있다. 두 개는 잠시 죽음의 장소(냉동실)로 들어간다. 치킨은 봉투가 종류별로 네 개다. 그뿐인가? 처음 장을 보러 갈 때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식재료들이 가득 담겨 있다.


사 온 물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기 시작했다. 내가 사 온 물건들은 영수증에 박힌 대로 빠짐없이 다 들어 있었다. 그런데 대형마트에서 가장 중요한 걸 잃어버렸구나.


'이 안창살은 미국산이겠지? 치킨 유통기한은 언제까지인 거지? 굴소스는 뭐하러 중국산을 샀을까?'


생산지 살펴보고 유통기한 확인하고 가격 비교까지 하던 나는 도대체 어디로 갔지? '맛없어도 생협!' 하고 주장하던 나는? 욕심부리며 쟁이지 말고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만 사서 먹자고 결심했던 나는? 냉동실 청소를 할 때 여분으로 사다놓았던 음식들의 사체를 치우며 죄책감을 느꼈던 나는? 나를 어디에서 잃어버린 거지? 뭐에 홀려서 내 손을, 아니 정신줄을 놓쳤던 거지?


내가 나를 잃어버린 일이 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매우 자주, 잃어버렸다. 오늘처럼 대형마트에서, '매진 임박'이 붙은 온라인 쇼핑몰에서, 원플러스원이 붙은 편의점에서... '소비주의'라는 귀신은 '신상'이나 '할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를 꼬인다. 쥐도 새도 모르게 나를 데려가는 그놈, 참 무서운 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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