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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글쓰기, 중간 정산?

브런치에 올리는 내 글이 공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by 글방구리

2024년 1월 13일 토요일 현재, 내 브런치의 구독자는 105명, 내가 구독하고 있는 관심작가는 71명이다. 발행이 취소된 글 말고 노출되어 있는 작품 수는 11개, 글은 132편이다. 이 글을 올리면 133편이 되겠지. 오후 3시 기준 전체 조회수는 233,604회, 오늘은 633회.


오늘 633회의 조회 중에 610회는 지난 수요일에 올린 글 '귀요미 중년냥들아!'에 몰려 있다. 그 글은 당일 다음 포털 메인 화면에 노출되었다가 내려갔는데, 지금까지 6백 회가 넘게 조회가 되고 있다니 믿기 어려운 일이다. 글을 올리지 않은 날에는 조회수 '0' 또는 한 자릿수에 머무는 날이 허다하다. 그 말인즉슨, 조회수가 많다고 좋아할 일도, 조회수가 떨어졌다고 기죽을 일도 아니라는 뜻이다. 뉴스 검색을 할 때 제목에 낚이고, 사진에 끌려 클릭을 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렇게 클릭을 하고 펼쳐본 기사가 맞춤법도 틀리고 문장도 이상하고 다른 기사를 베껴온 것 같을 때는 또 얼마나 화가 나던지.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읽으면서도 비슷한 분노를 느낄 때가 있었다. 에디터픽, 구독자 급등 작가, 오후 몇 시 인기글, 완독률 높은 브런치북 등 브런치를 열면 바로 보이는 메뉴들이 있다. 요즘은 요일별 연재가 가장 윗자리에 있어서 요일별로 바뀌지만, 전에는 일주일 내내 같은 작가의 다른 브런치북이 올라와 있기도 했다. '얼마나 글을 잘 쓰기에?'라는 의문이 들어 열어보곤 했지만 뭐, 그냥, so so.


때로는 속이 상하기도 했다. 메인에 올라온 스무 개의 브런치북 중 대여섯 개가 이혼한 이야기였다. 아니면 퇴사, 폐업, 혹은 우울증, ADHD 등 투병과 관련된 주제였다. 작가 개개인에게는 가장 중요하고 유일한 주제였겠으나, 그것이 20위 순위에 한데 모여 있으니 숨이 막혔다. 그 글들을 다 읽어보았다면 위로를 받았을까? 그러나 펼쳐 보기도 전에 제목만 봐도 덩달아 우울해졌다. 가뜩이나 힘든 세상, 근근이 연명하고 있는 사람들을 더욱더 옥죄는 느낌이 들었다. 솔직히 그중에는 '어? 이런 주제가 요즘 뜨네?' 하면서 분위기에 편승하는 글들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크리에이터는 응원을 받을 수 있다. 나도 어쩌다 붙었는지 모를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라는 배지 덕분에 연재물을 올릴 수 있고 응원도 받을 수 있다. 수요일에는 우리 집 고양이, 금요일에는 신앙생활, 일요일에는 내 삶을 되돌아보면서 쓰는 연재글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응원 때문에 연재를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내 안에는 아직 작가의 피가 흐르지 않아선지, 글을 열심히 쓰지 않거니와 쓰기 싫을 때도 많다. 반면, 마감이니 약속이니 하는 것들은 존중하는 편이어서, '연재'는 억지로라도 컴퓨터 앞에 앉혀 놓는 동력이 되어 주고 있다.


요일별 연재는 최신순과 응원순으로 볼 수 있더라. 워낙 브런치 작가들도 많고 연재도 많다 보니 금방 올라와 있던 글들도 최신 글들에 쭉쭉 밀려 내려간다. 그러나 응원순에 올라 있는 글들은 그렇지 않다.

'어라? 그럼 이 말은 요일별 연재 윗자리에 노출되게 하는 건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다는 말 아닌가? 주제를 정해 요일마다 올리기로 연재 약속을 해놓고, 혈연 지연 동원해서 응원하라고 하면 되겠네?' 그러니 화면에 꾸준히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글의 수준을 보장하는 말은 아니라는 것이다. 조회수, 노출, 이런 것들은 어쩌면 허상이고 신기루다.


이 시점에서 나는 다시 왜 브런치에 글을 쓰는가를 생각한다. 브런치에 입문해서 글을 쓰기 시작한 동기는 이전에 썼던 글(할매가 브런치에 진심인 까닭 (brunch.co.kr))에서 밝혔으니 생략. 그 사이에 마음이 바뀌었는지도 성찰해 본다.


출간작가가 되고 싶어서? 사실 이미 삼십 년쯤 전에 책을 한 권 낸 적이 있다. 자비출판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책은 얼마 되지 않아 절판되었고, 내 책꽂이 한켠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그 책을 보면 지금도 낯이 화라락 달아오른다. 삼십 대 초반, 인생에 대해 뭘 안다고, 신앙에 대해 얼마나 경험했다고 그걸 활자로 박제시켜 놓았나 싶다. 지금이라고 그다지 깊어졌을 것 같지 않다. 출간이 목표는 아니다.


그럼, 돈을 벌고 싶어서?

연말이면 이름난 작가도 아닌데 내가 만든 캘리그라피 달력을 원하는 지인들이 있다. 한동안 만들어서 팔라는 요청이 많아서 그렇게 하기도 했다. 이제는 팔지 않는다. 만드는 것도 힘들었지만 글씨값을 매기기가 정말 어려웠다.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는 적당한 문구를 오랫동안 묵상해야 했고, 자연스럽게 표현되도록 연습을 많이 했다. 일 년에 열두 달, 한 장 한 장 정성껏 쓰고 그리고 묶는 작업은 품이 많이 들었다. 달력을 굳이 돈 주고 사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아무리 적은 금액을 제시한다고 해도 비싸게만 느꼈을 것이다. 거기에 들어가는 정성과 시간을 모르는 사람들은 사은품으로 얹어주는 달력 따위가 뭐 그리 비싸냐고, 도둑놈 심보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글도 비슷하다. 내 글값을 얼마로 해야 적당할지 모르는 나는 글을 팔아 돈 벌기는 어려울 것 같다.


상을 받고 싶어서? 이것이 가장 근접하다. 내게는 인정욕구가 있다. 퇴직 후 동네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는 내게 '수상 경력'이 있다면 조금 더 자신감이 생길 것 같았다. 물론 신문 기자, 출판사 편집장이라는 왕년의 경력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브런치 수상자라는 타이틀은 욕심이 났다. 세 권의 브런치북을 응모했으나 떨어졌다. 워낙 응모하는 작가가 많아 당선될 거라는 기대를 하지는 않았지만, 내 브런치북이 스토리 메인에 걸렸을 때는 '혹시나?' 하는 마음도 없지 않았다. AI로 선정하는 건지, 초등학교 때 주번 돌아가듯 한 번씩 돌아가는 건지 자세한 메커니즘은 모르지만, 내 글이 그렇듯, 스토리든 포털 메인이든 거기에 올라갔다고 다 잘 쓴 글은 아님을 이제는 안다.


새해가 되었으니 중간 정산을 해보자.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여전히 하느님이 내게 주신 재능을 땅에 묻어 놓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이는 변함없는 사실이고, 변하지 않을 목표다. 그러므로 올해에도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나를 돌아보고 내 삶을 차근차근 정리해 나가려 한다. 내가 읽고 싶은 작가님들의 글을 꾸준히 읽으며, 잘 썼다고 생각되는 글, 공감하는 글에만 신중하게 '라이킷'을 누를 것이다. 올해도 여전히 구독자 수와 조회수에 연연하지 않으려 노력할 것이며,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겠다.


단지 바라는 것은 내 글이 또 하나의 공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디지털 쓰레기도 만만치 않다는데, 내가 생산해 내는 글이 누군가의 삶 속에 미세플라스틱처럼 유해하게 남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또 하나 바라는 점이 있다면.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노트북이 아니라 브런치 앱을 열어 써서 올리고 있다. 서버가 다운되어 건질 수 없는 날이 오거나 브런치 서비스를 종료한다는 날이 올까 봐 내 글을 출력해 놓는 작업을 하는 중이지만, 이 역시 그리 부지런히 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다음 카카오가 갑자기 망하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그렇다고 카카오 주식을 사놓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우리 막내 얼굴 숨긴 사진이 귀여워서 올라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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