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 하나만으로 한 시간 가까운 수업을 계획했다. 아니, 아직 다 끝나지 않았으니 이름 수업은 아직 진행 중이다. 한글 수업과 이름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기역, 니은, 디귿부터 가르치지 않고 천지인(天地人) 소리 듣기를 시작하는 것도 '내 맘대로 학습법'인데, 까짓, 이름으로 한 시간을 하든, 한 달을 하든 누가 뭐랄까. 소신껏 하는 거지.
엄마가 찾은 모음(하늘소리, 땅소리, 사람소리)만으로는 세상 만물을 글자로 표시할 수 없지만, 아들이 찾은 자음을 만나면 글자가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시간이다. 자기 이름을 자모음으로 나눠서 알아보는 것이 오늘의 주요 활동이다.
오늘은 또 어떻게 아이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나. 아이들과 지낸 십여 년 동안 아이들을 집중시키기가 어느 한순간도 쉬웠던 적이 없다. 교사가 주도하는 수업을 계획할 때면, 아이들의 시선을 되도록 오래 잡아두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목소리를 높거나 낮게, 크거나 작게, 손동작을 섞어서 말을 하거나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내거나. 그렇게 이 내 한 몸으로 하는 퍼포먼스들도 있지만, 아이들의 반짝 관심을 끌기에는 '처음 보는 교구'를 꺼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러나 교구의 쓸모는 대체로 일회적이어서, 아이들을 잠깐 집중시키기 위해 밤낮없이 오리고 자르고 붙이고 만드는 유아교사야말로 환경파괴범이자 기후악당이 아닌가 생각될 때가 있었다. 아이들의 주의를 집중하는 목적으로 제작하다 보니, 한 번 만들어서 두고두고 재사용하게 되는 것들은 별로 없고 한 번 쓰고 나면 버려지게 되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5분 사용하기 위해 50분을 투자해서 만들어야 하는 일도 허다했다.
어디 교구뿐인가. 공동육아에서 아이들에게 플라스틱 놀잇감을 주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천이나 종이, 나무나 자연물 따위로 놀잇감을 만들어 주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죽어나는 건 교사들이었다. 손바느질로 천 인형을 만들고, 주워온 나무를 자르고, 사포로 갈고. 먹고 버리는 과일 씨앗을 모아 씻어 말려서 만들기 재료로 제공하려면 얼마나 품이 많이 들던지.
아이들의 놀이는 손에 쥐어지는 놀잇감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놀잇감이 없으면 없을수록 아이들은 친구들과 놀이를 찾아내면서 놀았다. 그러는 중에 기발한 놀이들이 터져 나오고, 자신들이 만들어 낸 놀이로 아이들은 지루해하지 않았다. 아이들에게서 일부러 놀잇감을 치웠던 날도 있었다. 처음에는 잠깐 당황해하다가도 금세 서로 손뼉 치기를 하고, 텀블링을 하는 등 아이들의 놀이감각은 새로운 촉수를 뻗었더랬다. 그러나 그것도 다 옛날 얘기, '라떼' 있었던 일들이다.
어린이집이 평가인증을 준비하면서부터 놀잇감이나 교재 교구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무슨 영역에 몇 개 이상, 이딴 식으로 정해 놓은 기준을 맞추려면 플라스틱 놀잇감을 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연히 '업체'에서 사 오는 놀잇감들로 채울 수밖에 없다. 개중에는 가뭄에 콩 나듯이 아이들이 오래 갖고 논 놀잇감도 있었지만, 그렇게 영역별로 꽉꽉 채워놓은 놀잇감들은 평가인증이 끝나고 나면 다시 창고로 들어가곤 했다. 비싸게, 큰맘 먹고 산 거니까 다음번 평가인증을 위해서? 아니다. 아이들이 갖고 놀지 않아서다.
각설하고. 한 번 쓰고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교구는 되도록 만들지 말자고 결심을 하긴 했어도, 교구 없이 주의집중시키기에는 가진 재주가 빈약하다.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어쩔 수가 없다. 문구점에서 부직포를 사 오고 다시 가위를 든다. 글루건을 꽂으니 본드 녹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파란 거는 아들들이 찾아온 것, 기억하지? 거위가 준 'ㄱ', 나무가 준 'ㄴ'... 그리고 주황색은 하늘, 땅, 사람 소리야. 이제 이걸로 자기 이름을 만들어 보는 거야."
만들어 온 한글 자모음을 융판에 하나씩 붙이며 수업을 시작했다.
한 아이가 호기롭게 손을 든다.
"나 할래. 내 이름 알아."
위풍당당, 자신만만하게 나오기는 했는데, 하늘소리를 어떻게 써야 할지 고개를 갸웃거린다. 융판 앞에서 한참 머뭇거리는 아이를 도와서 이름을 만들어 붙여 주었다.
"네 이름 첫 자인 '최'에는 고추가 준 치읓이 들어 있고, 그다음에는 하늘소리, 땅소리, 사람소리를 붙이면 돼. 와, 네 이름에는 하늘소리, 땅소리, 사람소리가 다 들어 있네?"
"어, 음, 이상하다? 엄마가 알려준 거랑 좀 다르네.."
아이들에게 없어진 글자, '아래아'를 사용해서 이름을 쓴다는 건 모험이기도 하다. 우리 글에서 이 글자가 없어지게 된 동기를 자세히 알려주려면 그게 또 족히 한 시간은 걸릴 터. 우리나라를 쳐들어왔던 일본 사람들이 우리말, 우리 글을 못 쓰게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이후 하늘소리는 사용하지 못하다가 사라지게 됐다고 짧게 말해 준다. 요즘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때문에 반일감정이 더 커진 내 목소리에도 힘이 들어간다(몇 해 전, 한국인 아빠와 일본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친구가 재원하고 있었을 때는 이걸 설명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아이들 하나하나 나와서 자기 이름을 만들어 붙여 본다. 그렇게 수업은 끝이 나고, 나는 아이들에게 색지를 한 장 주었다. 자기 이름으로 그 색지를 가득 채워보라는 부탁과 함께.
수업이 끝난 후 아이가 만든 글자. 담임교사가 물었단다, "장영수? 이거 누구 아빠 이름이지?" 아이가 대답했다. "수영장이잖아."^^ 거울글씨를 쓰는 아이들이 아직은 많다.
전래말놀이를 몇 번 남겨놓고 있지만 우리말놀이는 얼추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 전에는 우리말놀이가 끝날 때면 아이들에게 새로운 이름을 선물로 주었다. 순우리말로 된 말들을 찾아서 그 아이의 결에 맞는 낱말을 별명처럼 주었더랬다. 순우리말을 몇 해 주었더니 밑천이 바닥나서, 그다음 해는 꽃 이름을 주었다. 또 그다음 해는 나무 이름을.
한 아이, 한 아이를 생각하면서 그 아이가 떠오를 만한 이름을 붙여주는 건, 내가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었다. 부모님이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줄 때 주었던 것과 같은 마음으로.
그러나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름을 준다는 것은 그만큼 관계를 지속시켜 가겠다는 매우 엄중한 약속이기도 하다. 담임교사를 하면서 함께 먹고, 자고, 뒹굴고,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는 그런 관계가 아닌 내가 아이들에게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그야말로 '오버'다.
대신, 아이들이 이미 갖고 있는 이름, 아이들이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을 이름의 뜻을 되새겨보게 하고 싶었다. 태어나자마자,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를 비롯한 친지들의 사랑과 기대에 따라 받게 된 그 이름의 의미만 평생 가슴에 새기고 살아간다고 해도 크게 엇나갈 삶을 살지는 않으리라. 내 것이지만 남이 만들어 준 것, 내 것이지만 남이 더 많이 사용하는 것. 아이들의 이름에 담긴 뜻만 들여다봐도, 그 안에 무한한 가능성 덩어리로 존재한 한 아이 안에 쏟아부어진 부모의 간절한 바람과 기대와 축복도 읽을 수 있다.
올해는 아이들의 이름을 적어 공책을 하나 만들었다. 나도 아이의 이름을 쓰고, 아이들도 자기 이름으로 예쁘게 공책을 장식했다. 그리고 그 안에는 '마음씀' 작가님이 표현하신 대로, '부모님이 아이에게 주신 첫 번째 편지'라는 내용으로 각자 이름에 담긴 뜻을 적어주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한글을 다 알아가고 나면, 내 이름 정도야 누워 떡 먹기로 쓰겠지만, 각자 이름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공을 들여야 하는 일인지는 평생 배워야 할 일일 게다. 호랑이와는 달리 사람은 이름을 남기려 애쓴다지만, 이름을 남기는 것보다 더 가치로운 건 이름대로 살려고 애쓰는 삶이 아닐까. 아이들도 남들이 기억하고 불러주지 않아도 자기 이름을 자신이 부르고 지키며, 이름대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자기 이름을 입에 올릴 때마다 가슴에는 자랑스러움과 감사함을 느끼며말이다.
드디어 책가방에 들어갈 첫 번째 작품(?)을 만들었다. 거기에는 이름만 적혀 있다. 이름대로만 살아도 충분히 성공한 인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