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치도 부를 수 있는 노래
우리말놀이(끝) 노래가 삶에 깃들 수 있기를
아이들에게 무얼 가르쳐주어야 할까 고민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교재는 내가 살아온 삶이다. 유치원을 다닌 적이 없지만, 나는 어릴 때 무엇을 배우고 자랐나, 내가 아는 것과 배운 것 중에서 무얼 물려주고 싶은가를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나는 그 시대에 태어나서 어쩔 수 없이 배웠지만 아이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 하는 것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렇게 내 뼛속 깊이 각인된 노래 하나.
"무찌르자 공산당, 몇 천만이냐. 대한 넘어 가는 길 거기로구나."
고무줄 놀이를 할 때 많이 불렀던 노래다. 한국전쟁이 끝난 뒤 십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때에 태어나 학교에 고철을 주워 내던 시기에 국민학교를 다녔으니, 날마다 달고 산 노래가 공산당 무찌르자는 거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해서 입이 찢겨 죽었다는 이승복 이야기를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었다. 공산당이 뭔지는 몰라도 무찌르자는 노래로 저주할 대상은 분명했다. 안 그러면 나도 입이 찢겨 죽을 수도 있으니까.
'사까닥질'을 하며 뛰어 놀던 고무줄 놀이에서는 그렇게 과격한 노래를 불렀던 반면, 둘이 마주앉아 손을 치는 '쎄쎄쎄'를 할 때는 조금 다른 분위기의 노래들을 불렀다. '쎄쎄쎄'라는 말이 그렇듯, 여기에는 시대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를 반영하는 노랫말이 등장한다.
"하나 하면 할머니가 지팡이 짚고서 잘잘잘~"로 시작하는 노래는 요즘 말로 하면 '숫자송'이다. 이 노래는 아이들에게 읽어주는 그림책으로도 나와 있어서 지금도 아이들에게 불러주기도 하는데, 내가 어릴 때 부르던 것과는 버전이 조금 다르다. 요즘엔 "일곱 하면 일꾼들이~"로 시작하지만 나는 "일곱 하면 일본놈이 칼싸움을 한다고 잘잘잘" 이렇게 불렀더랬다. 일본놈들은 원래 칼을 차고 다니던 놈들이었나 보다.
공동육아 전체 교사회에는 연구 소모임들이 있다. 그 중에 '놀래'(놀이와 노래)라는 모임도 있는데, 이 모임에서는 아이들에게 전달할 전래 놀이와 노래를 연구한다. '우리 집에 왜 왔니?'처럼 매우 익숙한 놀이도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를 침략하려는 저의가 반영되어 있는 놀이일 수 있다고 했다. '쎄쎄쎄' 역시 일본말에서 유래된 것이므로 '손뼉치기'라고 바꿔보자고. 그러나 수십 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노래와 놀이가 소수의 제안으로 바뀌기는 어렵다. 어린이집 안에서야 열심히 '손뼉치기~!'라고 하면서 논다고 해도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곧바로 '쎄쎄쎄'로 돌아가고 만다.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은 무용함인 줄 알면서도, 그래도 공동육아 교사들은 오늘도 아이들과 '손뼉치기~'라고 하면서 논다. 오늘은 무용해 보일지라도 그것이 내일의 문화를 바꾸는 씨앗이 되기를!
사방치기, 비석치기처럼 땅에 금 긋고 하는 놀이 말고, 이렇게 손뼉치기나 다리 세기 같은 전래 놀이는 주로 노래를 부르면서 논다. 아니, 놀이를 할 때가 아니더라도 벌을 만났을 때는 '벌아 벌아 꿀 떠라' 하는 노래를 부르고, 가을에 대추가 빨갛게 열린 걸 보면 '바람아 바람아 불어라, 대추야 대추야 떨어져라' 하는 노래도 불렀다. 비가 오면 '비야 비야 오지 마라'라고 노래 부르고, 냇가에서 멱을 감다가 추우면 '해야 해야 잠꾸러기 해야'를 불러 깨운다. 이렇게 옛날 아이들의 일상에는 언제나 노래가 있었다. 나 역시 공산당을 무찌르고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느라 이런 노래를 많이 부르고 자라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 노래들 속에 보물이 숨겨져 있었다!
가이가 가다가 / 거이거 거랑에 / 고이고 고기 잡아 / 구이구 국을 끓여 / 나이나 나도 먹고 / 너이너 너도 먹고 / 다이다 다 먹었다/ 더이더 더 다고 / 어이어 없다!
ㄱ, ㄴ, ㄷ 자음과 양성모음, 음성모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말놀이를 가장 먼저 아이들에게 알려준다. 여기에 국그릇에서 국을 떠서 먹여주는 손동작까지 덧붙여 본다. 아이들은 내가 진짜 국을 한 숟갈 떠먹여주는지, "나도, 나도!"라고 한다.
'가래골집 영감이 가래를 들고 / 도랑골집 영감이 도랑을 치고 / 가잿골집 영감이 가재를 잡아~'로 시작되는 말놀이는 반복의 묘미가 있다. 이 노래에 나오는 가래나 화로 따위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도 '부릉골집 영감이 부릉부릉 화를 내니까/ 마소골집 영감이 마소마소 했대'라는 마지막 부분에서는 자지러지게 웃곤 했다. 단어의 뜻을 잘 몰라도 단어 안에 깃든 느낌은 감지하나 보다.
가자 가자 감나무 / 오자 오자 옻나무 / 바람 솔솔 소나무 / 방귀 뀌는 뽕나무 / 십리 절반 오리나무 /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 / 낮에 봐도 밤나무 / 거짓말 못해 참나무 / 어린아이 자작나무 / 너하고 나하고 살구나무 / 따끔따끔 가시나무 / 입 맞춘다 쪽나무 / 앵돌아진 앵두나무 / 엎어졌다 엄나무 / 자빠졌다 잣나무 / 서울 가는 배나무
나무 이름의 발음이나 뜻, 거기에 운율까지 맞춰 만들어진 '나무 노래'는 그야말로 예술이다. 나무 이름을 조금 아는 초등 아이들과 생태 나들이를 다니면서 이 노래를 확장해서 만들어 보는 게 앞으로 해볼 활동 중의 하나다. 모감주나무, 팽나무, 은행나무, 꽃댕강나무 등 아파트 둘레에서 볼 수 있는 나무만으로도 아이들은 기발한 말들을 찾아내리라.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꺼내도 줄어들지 않는 화수분처럼 전래 노래를 활용할 수 있는 활동은 무궁무진하다. 그러나 우리 말놀이 시간은 11회에 불과하다. 일곱 살 책가방을 꾸리려면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멀다. 많고많은 노래들 중에서 그래도 두 가지는 절대 포기할 수 없다. 하나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똥구멍'이 나오는 '엿장수 똥구멍은 찐득찐득'으로 시작되는 노래다. 이 노래는 노랫말을 의성어, 의태어로 만들어 붙이는 것이 주요 활동. 그러나 그 전에 '시장에 가면, 과일도 있고. 시장에 가면, 생선도 있고' 하는 노래를 먼저 부를 수 있다. 일석이조, 일타쌍피.
그 날 아이들은 이런 노래를 만들어 냈다. 아이들한테 소고기를 줄 때는 조금 연하게, 멸치 반찬을 해줄 때는 더 부드럽게 해주어야 하나 보다.
참기름 장수 똥구멍은 미끌미끌 / 소금장수 똥구멍은 짭짤짭짤(여기까지는 예시로 주었다)
포도 장수 똥구멍은 동글동글 / 딸기 장수 똥구멍은 새콤달콤 / 바나나 장수 똥구멍은 길쭉길쭉 / 소고기 장수 똥구멍은 질겨질겨 / 아이스크림 장수 똥구멍은 녹아녹아 / 장난감 장수 똥구멍은 우당탕탕 / 고구마 장수 똥구멍은 따끈따끈 / 멸치 장수 똥구멍은 딱딱딱딱 / 떡꼬치 장수 똥구멍은 따끈따끈 / 갈치 장수 똥구멍은 비릿비릿 / 과일 장수 똥구멍은 상큼상큼 / 문어 장수 똥구멍은 꼬물꼬물 / 뻥튀기 장수 똥구멍은 바삭바삭 / 빵 장수 똥구멍은 불룩불룩 / 카레 장수 똥구멍은 냠냠냠냠 / 수프 장수 똥구멍은 후룩후룩 / 참외장수 똥구멍은 사각사각
그리고 또 하나 말놀이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하는 말놀이를 변형한 활동이다. 우리 말놀이를 하는 동안 나는 시작과 끝에 언제나 이오덕 선생님의 시로 만든 '우리 말 노래'라는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의 마지막에 나오는 '뜸부기'부터 시작하는 말놀이를 만들어 본다. 아이들이 짓는 노래에는 친구들의 특징이나 재능을 찾아 아이들의 이름이 들어가도록 한다.(이 말놀이가 더 궁금한 독자는 내가 쓴 다른 글 '너희들은 노는 게 재능이야'를 참고하시라)
이른바 무한반복할 수 있도록 만든 노래다. 아이들 입에서 노래가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올해도 우리 말놀이는 이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한글 읽고 쓰기'라는 눈앞의 목표는 이루지 못했을지라도, 아이들 삶에 노래가 깃들기를 바라고, 이름의 소중함을 간직하고, 말과 글과 얼이 서로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초석을 다지는 시간이었기를 바란다. 아니, 아니, 이런 거창한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아도 좋다. 아이들이 만화영화 주제가나 나이에 맞지 않는 아이돌 노래 말고, 어른들이 주입하는 이념이 들어 있는 노래도 말고, 그저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그런 노래들이 깃든 삶을 살 수만 있다면, 그깟 글자 따위는 조금 늦게 배우면 어떠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