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도 반듯하게 가자

달팽이에게서 한글 배우기

by 글방구리

수박 겉핥기처럼 배웠지만, 나름 몇 개의 외국글자를 쓸 줄 안다. 국한문 혼용시대를 살았으니 어느 정도의 한자는 물론, 영어와 독일어를 쓰는 알파벳과 일본어 히라가나 쓰는 법을 배웠다. 그 외에도 한두 가지 글자를 더 쓸(=그릴) 줄 아는데, 그중에서 가장 배우기 힘들었던 글자는 단연코 히브리어였다. 구약성서에 씌어 있다는 그 꼬불거리는 글자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멀미가 났다.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를 알아보는 것만큼이나 글자 하나하나를 구별하기가 어려웠다. 그 점이 그 점, 그 선이 그 선. 그래서 일곱 살 아이들의 마음을 안다. 아이들에게는 히브리어만큼이나 어려운 한글일 테니.

내겐 아이돌 멤버 얼굴 구별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던 히브리어 알파벳. 아이들에게는 한글도 비슷하겠지.

키와 몸무게가 아이들마다 차이가 나는 것처럼 일곱 살 아이들의 한글 읽고 쓰기도 편차가 크다. 그것은 대체로 아이보다는 부모의 성향이나 교육관의 차이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튼튼하게만 자라다오."라고 하면서 한글 교재 보기를 돌같이 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혹여라도 다른 아이들에게 뒤질까 등짝 스매싱을 날려가면서 가갸거겨를 가르치는 부모도 있다.


교사로서 그동안 내가 꾸준히 가져왔던 신념은 "자기가 필요하면 배웁니다"였다. 실제로 한글을 떼지 못하고 초등학교에 간 아이도 여름방학을 맞을 무렵이면 얼추 다 깨우쳤다. 그랬던 내가 생각이 달라졌다. 아이들이 처음으로 연필을 쥐고 글씨를 쓰기 시작했다면, 바르게 쓰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삐뚤빼뚤하게 걷는 태도가 익숙해지기 전에, 바른 자세로 바르게 걷는 태도를 몸에 배게 해야 하는 것처럼 글씨도 그렇다고.


그렇게 바뀌게 된 데는 글쓰기를 함께하고 있는 민재의 영향도 없지 않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지 벌써 삼 년인데 이 녀석의 글씨는 종이 위에서 날아다닌다. '악필'이라기보다 '그림'에 가까운 아이의 글씨를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든다. 민재가 쓰는 글은 재미있고 기발한 내용들이 많은데, 글씨를 알아볼 수 없는 데다 틀리는 맞춤법이 많다 보니 내용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거다. 글씨를 처음 배울 때 천천히 써도 반듯하게 쓰는 습관이 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일곱 살 수업에 적당한 [달팽이 한글 쓰기]라는 멋진 교재를 찾았다. 깍두기공책에 통글자를 쓰기에 앞서 원을 따라 그리고, 선을 따라 그으면서 그야말로 달팽이처럼 천천히 몸에 익히게 구성되어 있다. 교재를 나눠주기 전에 아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글자 나라에는 두 개의 마을이 있어. 그 마을의 이름은 닿소리 마을과 홀소리 마을이야. 닿소리 마을은 얼굴 주변에 살아. 사는 곳에 따라 다섯 모둠이 있어. 혀끝소리 가족, 혀뿌리소리 가족, 입술소리 가족, 잇소리 가족, 목구멍소리 가족. 가족이니까 서로 생긴 것이 비슷해. 홀소리 마을은 하늘소리, 땅소리, 사람소리 모양이야. 너희들 기억나지? 그런데 소리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닿소리 마을 사람들이 글자 나라 임금에게 요청했어. 그랬더니 임금님이 네모 모양의 집 안에 한 글자씩 들어가는 방법을 알려줬어. 닿소리가 요청했으니 그 집에는 닿소리가 언제나 먼저 들어가는데, 홀소리를 데리고 들어가지 않으면 글자가 만들어지지 않아. 닿소리와 홀소리는 서로 다르지만 함께 있어야 온전한 글자가 만들어지지.(이하 생략)

한 글자를 써도 집을 짓는 것처럼 반듯하게 쓰도록 하고 싶었다. 옳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젠가가 생각났다. 젠가는 나무토막을 세 개씩 가로, 세로로 번갈아 쌓아 놓고 하나씩 조심스레 빼는 게임이다.

"얘들아, 너희 젠가 알지? 젠가 할 때 안 쓰러지게 하려면 나무토막을 어떻게 놔야 하지?"

"잘 맞춰서 놔야 해."

"그런데 만약에 빨리 하고 싶다고 대충 막 쌓으면? 가로 놓을 차롄데 가로로 안 놓고 세로로 놓으면? 그럼 어떻게 돼?"

"쉽게 쓰러져."

"그래. 글자 집도 그래. 쓰기 싫고 힘들다고 대충대충 쓰면, 글자를 다른 사람이 알아볼 수가 없어. 순서대로 써야 반듯하고 튼튼하지. 보기도 좋고."

아이들도 고개를 끄덕인다. 실전과 연습은 그다음 단계고, 일단 바르고 반듯하게 써야 하는 이유는 알아들은 듯하다. 고맙다, 젠가야.


며칠 전 가까이에 있는 방과 후 교사가 아들내미의 글씨 때문에 고민이 크다면서 도움을 청해 왔다. 내가 민재에게 하고 있는 원고지 필사법을 팁으로 알려주었다. 과연 그걸로 교정이 될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원고지에 써보라고 숙제(?)를 내주었더니, 그 교사의 아들내미는 이렇게 말하더란다.

"그냥 컴퓨터나 폰으로 찍으면 되지, 글씨를 왜 잘 써야 하는지 모르겠어."

내게는 그 말이 길을 갈 때 자전거나 자동차를 타면 되지, 왜 두 발로 걸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로 들린다. 우리 일곱 살 아이들도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라나게 될는지도 모른다. 연필은 왜 쥐어야 하지?키보드로 두드리면 되는데?라고.


그런 시대가 올지언정, 오늘의 나는 아이들에게 달팽이처럼 걸어보자고 제안하고 있다. 달팽이는 발이 없어도 건너뛰어 가지 않는다. 천천히 가는 것 같아도 제법 빠르며, 자기 길을 따라 걷는다. 동그란 길은 동그랗게, 곧은길은 곧게 길 따라 걸어가는 달팽이처럼 걸어가 보는 것. 생각해 보면 참 멋지지 않은가? 글자 쓰기를 달팽이에게 배운다는 것이!

글방 어항에 사는 애플달팽이. 물 속에 사는 이 녀석들을 보고 있으면 달팽이의 걸음이 느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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