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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를 소개합니다

초등아이들은 친구를 어떻게 만들어 갈까

by 글방구리

친구인 듯 친구 같고, 친구 아닌 친구들을 글감으로 삼은 브런치 연재를 구상하면서 최근 내 머릿속에는 '친구'라는 단어가 똬리를 틀었다. 아이들의 '친구관'도 궁금하다. 초등 아이들은 친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친구를 사귀어 온 방법처럼 아이들도 친구를 사귈까? 아이들은 자기 친구에 대해 얼마나 구체적으로 알고 있을까? 친구라고 생각한 그 사람이 진짜 친구는 맞을까?


아이들에게 친구를 소개하라는 주제는 그다지 어려운 글감으로 여겨지지 않을 테니, 맨날 쉬운 글쓰기를 하자는 아이들의 요청에도 부응한다. 자기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을 객관적으로 관찰하고 표현해 보는 연습도 될 것이다. 그래, 이번 주 글쓰기 주제는 '내 친구를 소개합니다'로 정했다.


아이들의 친구관을 알아보는 것 외에도 나한테는 또 하나의 숨은 이유가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학교(또는 학원)에서 진정한 또래관계를 맺기 어렵다는 막연한 의심을 품고 있었는데, 이런 의심이 기우인지 혹은 진실인지 아이들의 글을 통해서 추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이 맞을지 틀릴지, 아이들이 쓴 글을 보면 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수업 요일은 다르지만 3, 4, 5학년 아이들 모두에게 같은 주제를 주었다.

"오늘은 너희들의 친구를 소개하는 글을 써 줘. 너희들이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 한 명을 골라서, 그 친구와 친해지게 된 과정이나 동기, 그 친구와 왜 친구가 되었는지, 그 친구는 뭐가 좋은지, 그런 것들을 쓰면 돼. 남자든 여자든 관계없어. 단, 내가 모르는 친구여야 해."

"모르는 친구라뇨?"

"그러니까 여기 글쓰기를 함께 하는 친구, 방과 후에서 함께 지내고 있는 친구는 빼자는 거야. 학교나 학원에서 알게 된 친구에 대해서 나에게 알려준다고 생각해 봐."

현재 방과 후를 다니고 있는 3학년 아이들이 바로 반기를 든다.

"저, 지금 친구들은 다 방과 후 친구들이에요."

"저 얘하고 제일 친해요. 얘들 말고 친구 없는데요?"

방과 후 함께 다니는 친구 말고는 친한 아이가 없다며 난색을 표하는 아이들. 또래관계에 대한 내 궁금증의 실마리가 벌써 잡히는 것 같다.

"그래. 방과 후 다니는 친구들이 제일 가깝고 친하지. 그건 아는데, 학교에서 새로 만난 친구들을 한 번 생각해 봐. 왜 그 친구가 좋은지, 그 친구랑 놀면 뭐가 재미있는지. 다른 많은 아이들 중에서 특별히 그 친구랑 친해지게 된 사건이나 이유가 있으면 그걸 쓰면 돼."


아이들의 글은 비슷한 듯 달랐다. 자기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가졌거나 뭔가 좀 세 보이는 캐릭터라서 친구를 삼은 아이도 있고, 그저 같은 반이 되었거나 옆자리에 앉게 되어 친해지게 된 경우도 있다. 심지어 산후조리원 동기(엄마들이 친해서 자기들도 친구가 되었다고)여서 친구가 된 아이도 있다. 이런 경향은 고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마음이 맞아서, 취향이 비슷해서, 자기보다 잘하는 것이 있어서, 웃게 해 줘서'로 바뀐다.

O... 그 친구의 이름은 이수현이다. 키가 작고 나보다 두 뺨 정도 작다. 게임과 축구를 좋아한다. 진짜 화나면 책상을 휘두른다. 매우 위험하다. 진짜로 화나면 조심해라. 잡히면 죽는다. 걔가 좋아하는 영상은 스키비디토일럿이다. 걔는 피규어도 있다. 타이탄...... 걔는 스키비디 토일럿을 너무 좋아해서 만화도 놓치지 않는다. 장점은 축구를 잘하고 포켓몬 카드도 좋은 게 많다. 외모는 항상 줄무늬 옷을 입고 항상 기분 좋은 표정이다.(3학년)
O... 내 친구 이름은 박건욱이다. 남자고 안경을 쓰고 있다. 키는 내 가슴 정도 온다. 그리고 건욱이 집에서 노는 것이 제일 재미있다. 친해진 이유는 1학년부터 베스트 프렌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교정기를 끼고 있고 볼이 개구리를 닮았다. 볼에는 뭐가 나 있고 좀 떠드는 성격이고 한 번 한 거를 되돌릴 때도 있다. 오늘은 계단에서 시끄럽게 해서 혼났다. 건욱이 아빠는 치킨집을 한다. 왜 그 친구랑 친해졌냐면 1학년 때 어떤 친구가 갑자기 셋이 베스트 프랜드를 하자고 해서 친구가 됐다. 한 친구는 다른 학교로 갔다. 나는 건욱이가 놀 때 다른 애들을 웃겨줘서 건욱이가 좋다.(3학년)
O...내가 소개할 친구는 조은율이다. 은율이는 나보다 키가 한 뼘 정도 크고 여자다. 은율이는 미술과 공부를 잘하고 달리기를 잘해서 이번에 계주로 뽑혔다. 생김새는 눈이 고동색이고, 머리카락이 진한 고동색이다. 머리는 배꼽 높이까지 오고 조금 말랐다. 은율이는 바둑을 잘한다. 2학년 때부터 바둑을 배운 것으로 안다. 은율이가 나와 친한 이유는 번호가 나는 11번, 은율이는 12번이어서 급식을 먹을 때마다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은율이와 친해지게 되었다. 나는 그래서 은율이의 그림을 잘 그리는 점과 공부를 잘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은율이는 연우와 친하다. 난 은율이의 장점인 달리기를 잘하는 점도 좋다.(4학년)
O... 이 친구는 제무혁이고 무혁이는 나보다 키가 2센티 정도 크다. 처음에 무혁이랑 친해졌을 때는 색종이를 접다 처음 친해졌다. 운동은 우리 반 남자 애들 중에 6등 정도 한다. 무혁이는 장난으로 이상한 말을 하고 다닐 때가 많다. 그리고 무혁이는 화를 못 참는 아이들을 화내게 할 때가 있다. 무혁이는 우리반 아이들을 웃게 한다. 연극할 때 무혁이가 나오면 웃음이 터진다. 무혁이는 수학을 잘한다. 하지만 무혁이는 영어를 못한다. 무혁이는 최근에 머리를 잘랐는데 머리를 너무 많이 잘라 머리카락이 안 보이는 부분도 있다. 무혁이는 사람을 잘 웃겨 주어 좋다.(4학년)
O... 나는 내 친구 송단희를 소개하려고 한다. 나와 단희는 4학년 때 처음 같은 반이 되었다. 그리고 5학년 때 다시 같은 반이 되었다. 단희는 고양이 인간이다. 고양이 울음소리를 잘 내고, 고양이의 흉내를 자주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별명이 ‘단냥이’이다. 근데 신기하게 고양이 알러지가 있다! 단희의 MBTI는 ENFP이다. 성격은 외향적이고 상상을 많이 한다. 왼손잡이이고 안경을 썼다. 머리는 매일 부스스하게 풀어헤치고 다닌다. 그림체가 동글동글해서 귀엽고 뭔가 특이하다. 생일은 12월이다. 나는 그 친구가 가끔 개그도 하고, 그림도 잘 그리고, 두 번 같은 반도 되어 봐서 친하다.(5학년)
O...윤서희는 내 친구이다. 서희와 나는 2학년 때부터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다. 서희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는 마음의 문을 잘 열지 않고 몇 달 정도 같이 놀아야 서서히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나도 화요일마다 주하랑 서희랑 놀았었는데 성격이 잘 맞기도 하고 같이 놀면 재밌어서 친해졌다. 그리고 양갈래 머리가 잘 어울리고 병아리를 닮았다. 그리고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아담해서 귀엽다.(5학년)
O... 제 친구(?)인 구준오를 소개합니다. 구준오랑 처음 만난 건 배드민턴 학원이었습니다. 거기에서 배드민턴을 같이 치면서 이야기하다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엄청 친한 건 아니어서 MBTI도 모르고, 좋아하는 음식도 모르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랑 만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고, 배드민턴 학원에 다니는 것을 보니 좋아하는 운동은 배드민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빠 직업은 의사라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교정 중이고, 머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고, 공부는 그나마 잘하는 것 같습니다.(5학년)
O... 지아는 내 친구다. 지아는 딱 봤을 때 모범생일 것 같고 차분하지만 웃음이 많다. 키는 나보다 조금 작고 검정 생머리이다. 여름에는 머리를 낮게 묶고 다니고 겨울에는 풀고 다닌다. 5학년 1학기 때 쓰레기를 주우러 단체로 밖에 나갔을 때 같이 쓰레기를 줍다가 친해졌다. 그때부터 우리는 서로 반쪽이가 됐다. 지금도 현재 금쪽이와 은쪽이로 지내고 있다.(5학년)
O... 내 친구 강수현은 욕을 조금 하지만 착한 친구이다. 우리 반에서 인기가 많고 특이하게 로드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또 밥을 잘 먹지 않고 달리기가 빠르다. 하지만 단거리보다 장거리를 싫어한다. 그리고 여친을 좋아한다. 5학년 체육시간에 강당에서 처음 만나서 걔가 먼저 말을 걸었다. 그리고 내가 대답해 주었다.(5학년)
O...저의 9년지기 친구 홍서현을 소개합니다. 홍서현은 정말 얼굴이 하얗고 머리카락이 깁니다. 그리고 얼굴이 하얗고 동그래서 찹쌀떡이 별명입니다. 그리고 서현이의 손재주는 뛰어납니다. 왜냐하면 저번 벼룩시장 때 자신이 직접 만든 털 목도리와 털 팔찌를 팔았는데 퀄리티가 대박이었기 때문입니다. 3살 때 서현이를 만나고 같은 어린이집에서(3~4살) 다른 어린이집에 갔지만 친한 사이라 연락하고 지냈습니다. 그리고 같은 초등학교에서 만나 지금 같은 반이 되어서 친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므로 홍서현은 좋은 친구입니다.(5학년)
O...내 친구 강현우를 소개합니다. 현우는 먹는 것과 운동하는 것을 좋아하고 마스크를 안 쓴다. 통통하고 목소리가 크고 완전 E다. 그리고 수영을 잘하고 피부가 탔다. 약간 리더십이 있고 친구들에게 글을 잘 쓰라고 말한다. 또 친절하고 말을 많이 한다. 5학년 때 처음 만나서 나에게 말을 많이 걸다가 서로 성격이랑 좋아하는 놀이가 비슷해서 친해졌다.(5학년)
O...내 친구 형원이를 소개하겠다. 나는 토요일 날 형원이의 생일파티에 가기로 했다. 내가 2번째로 가 보는 생일파티이다. 형원이는 2학년 때 만나서 친해졌다. 2학년 남자아이들 중에 가장 취향이 맞아서 우리 집에 초대한 적이 있다. 그 후 5학년 때 다시 만났다. 그리고 영재학교에 같이 뽑혀서 같이 다니고 있다. 형원이는 키가 조금 작고 안경을 쓰고 있다. 귀가 앞으로 튀어나와서 원숭이처럼 생겼다.(5학년)
O... 이름은 유주이고 여자이다. 엄마끼리 많이 알고 친해서 같이 많이 놀았다. 유주는 달리기를 잘하고 춤도 잘 추고 친절하다. 유주는 동생이 있고 나랑 다른 초등학교를 다닌다. 나는 유주 집에서 해본 글라스데코가 가장 재미있었다. 유주가 자기가 만든 왕관 모양 스티커를 선물로 주었다. 유주랑 놀 때가 정말 재미있다.(3학년)
O... 김서현. 이름은 김서현이고 키가 크다. 여자이고 안경을 꼈다. 춤추는 걸 좋아하고 매우 친절하다. 친해지게 된 이유는 같은 산부인과에서 같은 날 30초 정도 차이로 태어났기 때문에(그러다) 어른들끼리 친하게 지내다 보니 우리들끼리도 같이 많이 놀게 되었다. 서현이는 언니가 있는데 우리와 1살 차이이다. 처음 논 건 기어 다닐 때 손가락놀이도 하고 공원에 가서 사진도 찍은 것이었다. 산부인과를 시작해서 3살 때까지의 이야기는 나와 서현이가 기억을 못 하고 어른들이 알려주었다. 내가 3살 후반에 대전에 왔고 그 후로는 생일, 크리스마스, 연휴 때 등등 같이 만나서 논다.(3학년)
O... 내 친구의 이름은 김윤동입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머리가 짧다. 수학을 잘하고 살짝 욕을 한다. 남자고 라온을 안다. 그리고 맨날 그림을 그린다. 김윤동은 체육을 싫어하고 수학을 좋아한다. 김윤동은 밥을 잘 먹고 통통하다. 그리고 라바같이 생겼고 노랑색이 잘 어울린다. 왜 친해졌냐면, 처음에는 안 친했지만 학교에서 같이 놀고 친구에게 부탁하고 학교에서 놀이활동을 하는데 짝이 되어서 같이 놀면서 친해졌다. 놀이활동은 뭐를 했냐면 수학카드 놀이를 할 때 같이 짝이 되어서 놀이활동을 하면서 재미있게 했다.(3학년)
O...나는 이시우와 친하다. 시우는 내가 할 수 있는 입 튕기기를 하기 때문이다. 어제 친해져서 쓸 것이 별로 없지만 일단 나보다 키가 3센티 정도 크고 축구도 좋아한다. 그리고 시우는 남자이고 주소는 6단지이다. 나도 6단지이기 때문에 언제 만나고 싶다. 안경은 쓰지 않았고 축구를 좋아한다고 들었다.(3학년)
O... 내 친구의 이름은 이수빈입니다. 수빈이의 외모는 머리가 길고 앞머리가 없습니다. 수빈이는 글씨가 예쁘고 수업시간 집중을 잘한다. 수빈이의 성격은 착하고 친절하다. 수빈이와 친한 이유는 바로 마음이 맞아서다. 수빈이와 마음이 맞았던 이유는 자리를 바꾸는 날 자리를 바꾸고 수빈이와 앞 뒤 자리가 됐다. 그래서 같이 놀다가 친해졌다.(3학년)
O... 친구를 소개합니다. 이름은 이수현. 이 친구는 키가 내 코까지 온다. 마스크를 벗으면 못 생겼다. 성격은 친절하다. 수현이랑 왜 친하게 지냈냐면 1학년 때 급식 먹을 때 옆이었는데 재미있게 휴지를 가지고 놀아서 말을 걸어서 친하게 지내게 됐다. 하지만 2학년 때 선생님이 복도별로 나가지 말라고 해서 많이 만나지 않았다. 그런데 3학년 때 같은 반이 되어서 많이 물병 세우기를 하고 있다.(3학년)
O... 내 친구의 이름은 정하진입니다. 키는 140센티가 넘으며 몸무게는 27~28킬로입니다. 화진이는 저의 베프입니다.ㅋ 화진이의 외모는 이마 가운데 점이 있고, 앞머리가 있으며 단발머리입니다. 성격은 차분하고 친절하고 인기가 많으며 부드럽습니다. 특징은 머리에 점이 있다는 것이고 피부가 까맣습니다. 시력이 나빠 안경이 있지만 안경은 쓰고 다니지 않습니다. 1학기에 화진이가 “너랑 친해지고 싶어”라고 말해서 나도 인기 많고 키가 커서 화진이랑 친해지고 싶었다. 그 뒤로도 그림을 같이 그리며 같이 다니며 친해졌습니다.(3학년)
O...이준민. 제 친구는 뽀글 머리이고 친절하고 나랑 잘 놀아주고 내 말을 잘 존중해 주고 나도 준민이의 말을 존중해 주고 안경을 안 쓰고 있고 축구를 잘하면서 드리블도 잘하고 골키퍼도 잘한다. 나랑 포켓몬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내가 말할 때 내 말을 끊지 않고 잘 들어주어서 친하다. 삼 학년 때 처음 만났는데 나랑 같은 5단지고 내 앞자리여서 더 친한 것 같고 같이 만나 본 적은 있지만 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 점심 저녁을 먹어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많이 많이 친하다.(3학년)

아이들의 글을 읽으며 방과 후에 다니는 3학년 아이들이 유난히 친구들에게서 '친절함'을 발견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에게서 장점을 발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한 시선인가. 사람의 외모나 특징, 단점, 가진 것을 알아보는 것은 쉬워도, 친절하다든가 자신을 존중해 준다든가 하는 특징을 찾아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저 친구는 시험 몇 점을 맞고, 무슨 공부를 잘하고, 어떤 옷을 입고 오고, 하는 것까지는 학교나 학원 생활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저 친구는 친절하고, 남을 존중한다거나 남의 말을 끊지 않는다는 등의 태도는 '같이 놀아봐야' 아는 것들이다. 어른들도 사흘동안 밤새워 고스톱을 쳐보면 그 사람 성격이 나온다고 하지 않는가. 아이들도 날마다 만나서 놀고, 먹고, 싸우고, 해결하고 그러다 보면 사람을 보는 눈이 뜨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그걸 최소 만 열 살까지라고 본다.


엄마들은 이제 막 기저귀를 뗐거나 말도 잘 못 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어린이집 문을 두드리며 사회성을 키워달라고 요청한다. 엄마의 돌봄을 충분히 받아야 할 나이에 사회성 운운하며 억지로 떼놓고 가는 엄마들을 보면 솔직히 선행학습에 환장한(?) 엄마들의 욕심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다.


유아 때는 '다릿심' 키워주는 데 집중하면 된다. 자기 다리로 서고, 자기 손으로 먹고, 자기 말로 자기 욕구를 표현할 줄 알면 된다. 엄마가 땀을 찔찔 흘리며 다 큰 아이를 안거나 업고 가는 모습, 초등학교 갈 나이에 끼니때마다 뒤를 따라다니며 먹여주는 모습을 보는 건, 거칠게 말해서 역겹기까지 하다.


유아 때 다릿심을 키워줬다면, 사춘기가 오기 전에는 충분한 또래관계를 통해 '뱃심'을 길러주는 게 필요하다. 그렇게 다릿심과 뱃심이 키워졌다면, 어지간한 인생사는 뚝심 있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거라고 본다.


월요일 수업과 화요일 수업은 학년은 같지만, 삼 년 동안 살아온 방법이 다른 아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월요일 수업 후 장면.

글쓰기를 하는 동안 간식 삼아 마이쭈 몇 개를 주었다. 일찍 글쓰기를 마친 한 녀석이 먹고 남은 은박 포장지로 미니카를 접는다. 그걸 본 또 다른 아이는 "난 학 접어 봐야지." 하며 학 접기를 시도한다. 서로 접어 놓은 미니카와 학을 보면서 멋지다고 추켜세운다.


화요일 수업 후 장면.

한 아이가 가방에서 족히 스무 개는 넘어 보이는 만화 캐릭터 피규어를 꺼내서 흔들며 자랑한다. "저 이거 스무 개도 넘어요. 만 오천 원도 더 썼어요." 그걸 본 또 다른 아이가 부러운 듯이 말한다. "야, 나 그거 하나만 주라." "안돼." "피, 나도 그거 집에 많아!" 그 아이가 오늘 자랑한 건 열쇠고리 피규어지만 얼마 전까지는 포켓몬 카드였다.


쓰레기인 사탕 껍데기로 놀잇감을 만들어 노는 아이와, 캐릭터가 유행할 때마다 과하다 싶게 사서 모으는 아이. 난 왜 전자의 아이가 더 단단하고 부유하게 보일까. 가진 것 많아 보이는 후자의 아이가 왜 더 걱정이 될까.


가진 것으로 친구와 경쟁하지 않게 하고, 영혼을 좀먹게 하는 상업주의와 소비문화를 조금이나마 더 늦게 접할 수 있도록 막아주는 역할, 그게 지금 어른이 할 수 있는 최선 같은데, 내가 너무 뭘 모르고 하는 소리일까?

글쓰기가 끝나면 불도 안 들어오는 작은 창고에 들어가 '진실게임'을 하며 논다. 숨쉬기도 답답할 텐데 마냥 재미있단다. 다릿심, 뱃심 다 길러진 아이들, 이제 폐활량까지 커지겠네
바닥에 배 깔고 책 한 권 같이 보는 아이들. 내가 참 좋아하는, 다정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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