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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이래 봬도 기자였다고

신문기사가 원래 이렇게 어려운 거였어?

by 글방구리

'툭!'

아직 어두운 새벽,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발소리와 함께 현관문 앞에 조간신문이 던져지던 소리. 날마다 하루를 열어주던 소리였다. 조간신문 구독을 끊은 게 언제였더라? 신문은 주로 하루종일 집에 계시던 시어머니의 벗이었다. 어머니는 활자중독이라고 해도 될 만큼 뭔가 읽는 걸 좋아하셨다. 집에 있던 어지간한 책들은 다 섭렵하셨고, 하다 못해 내가 가끔 사들이는 부엌용품에 딸린 사용설명서까지도 꼼꼼히 들여다보셨다. 그래서 길에서 상품권을 쓱 내보이며 신문 구독을 하라고 해도 나는 흔들림이 없었다. 우리 집은 늘 애독하던 신문이 있었으니까.


시어머니 다음으로 신문을 탐독하던 사람은 초등학생이던 아들내미였다. 아들내미도 여느 어린이들처럼 만화책을 탐닉했는데, 유아시절에는 [카트라이더]였다면 초등학생 시절에는 [Why?]라는 학습만화를 좋아했다. 나는 예방주사를 맞을 때나 선물을 사줘야 할 때면 찜해 놓았던 책을 한 권씩 사줬다. 만화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작은 글자가 빽빽한 신문을 읽는 모습이 나름 기특하기도 했다. 텔레비전도, 휴대폰도 없고, 컴퓨터가 있어도 잘 다룰 줄 모르던 때라, 할 일이 없어서 신문을 읽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 후 시어머니가 편찮으실 즈음인가, 이사를 하면서 신문을 자연스레 끊게 됐다. 가족들 각자에게 스마트폰이 생겼고 모든 정보는 인터넷으로 검색할 수 있으니, 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고 해도 불편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국제, 정치, 경제 등 제법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귀동냥 눈동냥으로 듣고 묻던 아들내미의 모습도 같이 사라진 게 아쉬웠을 뿐이다.


내심 그런 모습이 그리웠나 보다. 5학년 아이들에게 다양한 뉴스를 접하게 해주고 싶었다. 만화를 폄훼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짧은 글에 익숙해져서 자기주장이나 논평이 필요한 긴 글에 대한 문해력이 떨어지지 않는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직 조금 어려울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이 들어 신문 기사를 읽고 논평을 써보기로 했다.


우선 아이들의 관심사를 알아내기 위해 각기 다른 분야의 최근 기사를 선정했다. 국제, 정치, 경제, 문화, 사회, 인문, 스포츠, 교육, 입시, 동물. 기사의 내용을 알려주지 않고 분야만 선택하려고 했는데 처음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입시가 뭐예요?"

"어... 어.. 어? 입시를 모른다고? 대학입시라는 말 못 들어봤니? 곧 수능이잖아."

"아, 그게 입시예요?"

"...(얘들아, 내가 너희를 너무 과대평가한 거였니? 오늘 수업 폭망인 거니?)"


그래도 간단히 설명을 해주고 나니 아이들이 하나씩 주제를 골랐다. 시현이가 결석이라 일곱 명이다. 가온이는 일 년 동안 미국에 가서 지내고 왔다고 국제 기사를 고르고, 영재와 꼼수 사이를 오가는 재우는 가장 쉬울 것 같다며 동물을 골랐다. 돈 버는 데 관심이 많은 율민이는 아니나 다를까 경제를 골랐고, 운동을 좋아하는 지호는 스포츠를 재빨리 선택했다. 서현이, 주하, 연우는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다 어려워요."라고 하더니,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해서 남는 것 중에서 골랐다. 서현이는 문화, 주하는 교육, 연우는 인문 분야다.


출력해 놓은 기사를 나눠주었다. 난리가 났다.

"헐, 신문 기사가 이렇게 어려운 거였어?" "뭔 소리래?"

오늘 글쓰기는 기사를 읽고 내용을 육하원칙에 따라 요약한 뒤, 그 사건이나 사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나 관점을 적어보라고 했다. 기사를 세 번 이상 정독하고도 이해가 되지 않으면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한숨소리로 땅이 꺼질 것 같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 이스라엘 집단농장에서 잔혹하게 살해된 영유아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기사에 대한 가온이의 글.

지난 2023년 10월 7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에서 살해한 사건이 벌어졌다. 하마스는 집단 농장 곳곳에서 많은 이스라엘인들을 살해했다. 살해한 이유는 두 나라가 지금 전쟁 중이라 그렇다고 추정한다. 하마스는 민간인 주택을 사전 경고 없이 공격할 때마다 이스라엘 민간인 인질 1명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사람들은 이 기사를 보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할 것 같다. 하지만 이스라엘 사람들도 불쌍한 것은 맞지만 둘 다 전쟁 중이고, 이스라엘 사람들도 팔레스타인인들을 인질로 데려가고 팔레스타인에 핵포탄을 쏘기 때문에 내 생각에는 두 나라가 똑같은 것 같다.

(어쨌든 전쟁은 두 나라가 하는 거니까, 둘 다 나빠! 그거지? 가온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혹한에 야산에 개들을 유기한 40대에게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는 기사에 대한 재우의 논평.

2022년 12월 16일 43살 최 모 씨가 기본 지식 없이 개를 분양해 서울 노원구 야산에 경제적으로 힘들어져 개 20마리를 유기하고 혹한해 방치하는 등 개를 학대한 혐의를 받았다. 당시는 체감온도가 영하 15도에 이를 정도로 추운 날이었으며, 유기된 개 20마리 중 1마리는 현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 판사는 "피해를 입은 동물의 수나 가해 행위 정도 등 사안이 가볍지 않고, 범행으로 강아지 1마리가 사망에 이르게 됐다"며 "다만, 범행 이후 자백하고 동물 관련 단체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등 노력했다"라고 징역 4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한 이유를 설명했다. 내 생각에는 자원봉사를 하는 등 노력했지만 피해를 입은 개의 수가 많고 행위의 정도가 커서 벌을 더 강하게 주면 좋겠다.

(잘못이 크면 벌도 많이 받아야 한다는 재우의 생각에 나도 동감!)


R & D 예산 축소 직격탄 맞는 청년취업에 대한 사설 기사를 읽은 율민이의 글. 우리 동네 특성상 아이들도 R & D 예산 축소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접한 듯했다.

10월 10일 이공계 학생들이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정부의 연구 개발 예산 삭감으로 인해 시위했다. 또 대학원생 TF는 설문조사로 이공계 학생들의 심정을 묻는 등 연구 개발 연구 삭감 의견을 요청했다. 이공계 학생들은 한국에서 공부하는 사람이 사라질 것이라는 심정을 말했고, 내 생각은 정부가 MZ세대를 위한다며 하다가 연구 개발 예산을 없애는 것에 대해 이공계 학생들이 난감할 것 같아 걱정되고 한국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도 부족해질 것 같아 불안하다. 대통령께서 연구 개발 예산 삭감을 취소하고 이공계 학생들에게 많은 지원을 해줘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이 율민이의 바람을 들어주면 좋을 텐데. 이 글을 대통령에게 보낼까?)


축구 선수 이강인이 아시안게임으로 군 면제를 받게 되었다는 기사에 대한 지호의 논평.

2022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이강인이 결승으로 한일전을 벌였다. 초반에 일본한테 먹혔지만 그다음 동점골 -> 역전승을 하였다. 결국 우리는 결승에서 아슬아슬한 점수로 경기를 뛰었다. 우리가 열심히 뛰어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우리나라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받으면 군 면제라는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결국 우리의 선수단 전원의 군 복무 기간이 18개월에서 3주로 단축됐다며 정말 부러운 일이 생겼다. 하지만 나는 이강인이 군을 18개월 다 간다면 체력적으로도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호도 군 면제가 벌써 부러운 거니? 체력이 좋아도 군대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걸?)


엄마가 영어학원을 운영하시는데 영어유치원에 관한 기사가 걸린 주하. 주하의 눈에는 '영어유치원 교습비 월 124만 원. '7세 고시' 레벨테스트 경쟁도 치열'이라는 이 내용이 어떻게 비칠까.

요즘 '영어유치원'이라고 불리는 유아 영어학원의 교습비가 월 124만 원이나 들어서 부모들에게 부담을 주고 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의 자료에 따르면, 유아 영어학원의 월평균 교습비가 지난 6월 기준 123만 9천 원으로 집계됐다. 교습비는 매년 증가한다고 한다. 서울 강남의 한 유아영어학원에서는 2개월 교습비가 300만 원대 초반이고 별도로 식비, 재료비 등 30만 원을 내야 한다고 한다. 강남권에서는 영어유치원 졸업 후 유명 초등 영어학원에 아이를 보내기 위한 '레벨테스트' 경쟁도 치열하다. 갈수록 높아지는 테스트 난이도 때문에 '7세 고시'라는 말도 나온다. 이에 관해 나는 너무 학원치고 교습비가 좀 많이 비싸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초등 영어학원도 많아 봤자 40만 원 이하다. 가격을 조금 낮춰도 될 것 같은데 왜 굳이 그렇게 교습비를 비싸게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학원을 보내는 부모들도 굳이 그렇게 많은 돈을 쓰면서 일찍 영어를 배우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러게 말이다. 돈도 돈이지만, 아이들은 또 스트레스를 얼마나 많이 받을까?)


'인문'이라고는 했지만, 기사 내용은 한글날을 맞아 나온 '쉬운 우리말 쓰기' 기사였다. '좋은 하루 되세요'가 사실은 비문이라는 것에 대한 연우의 생각.

10월 11일 한글날을 특집으로 사람들이 한글을 잘 알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좋은 하루 되세요'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라는 문장을 이 기사는 틀렸다고 지적하고 잇다. 이 기사가 지적하는 이런 문장들이 틀린 이유는, '좋은 하루 되세요'가 주어(무슨 일을 하는 사물, 사람, 동물)인데 '되세요'는 '하루'를 가리키고 있어서 문법상 맞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강성곤 위원은 "일각에서는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말이므로 예외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라고 다른 사람의 관점도 전했다. 그렇지만 내 의견은 '좋은 하루 되세요'가 친근하기는 하지만, 어법이 틀렸기 때문에 어법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어 문화는 곧 국력이라고 이 기사에서 말했기 때문에, 따라서 어법에 맞게 고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론은 국어 문화는 곧 국력이고 어법이 틀리게 계속 알려지면 한국인이 한국어를 모른다고 비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법을 옳게 고쳐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법이 틀려도 언중이 많이 쓰다 보면 어느새 굳어져 버리는 것들도 있지만, 연우 말대로 너무 틀린 어법이나 문법을 쓰면 나도 거슬리더라. 예를 들면, '커피 나오셨습니다' 이런 것.)


"육하원칙에서 '누가'가 도대체 누구야? 그것부터 막히네."

광주에서 열린 억새축제에 대한 기사를 놓고 억세게 고심에 빠졌던 서현이의 글.

최근 광주 서구 억새축제가 열렸다. 광주시에서는 11일에 6일 전부터 지난날까지 영산강변 일대에서 축제를 열었다. 억새축제에서는 5일간 10만 명이 다녀왔다고 한다. '은빛 억새가 전하는 가을의 약속'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 축제는 4km에 달하는 억새길을 꾸며놨다. 그리고 대형 벽, 버스킹 월드컵 멍 때리기 대회 등 여러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리고 억새축제 곳곳에는 친환경적인 요소를 더했다. 지구사랑 걷기 챌린지, 지구 지키기, 자전거 라이딩 등 환경에도 신경 쓴 모습이 보인다. 여기에 대해 김이강 서구청장은 도심에서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축제이자 서구스러운 축제라고 말했다. 나는 축제라고 일회용품을 마구 쓰지 않고 환경도 생각한 이 축제가 좋다고 생각한다.

(환경을 생각한 축제로 평가해 주었구나? 네가 기대한 대로 친환경적으로 축제가 진행되었기를 바라.)


한숨을 쉬기도 하고, 끙끙거리기도 하고, 진지한 표정이 되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주어진 텍스트를 얼추 잘 이해했고, 자기 관점도 잘 썼다. 아이들이 다 간 뒤에 읽어보니, 예상보다 잘 써낸 글에 뿌듯하고 흐뭇하다.


이 아이들이 컸을 때는 새벽마다 현관문 앞에 종이 신문이 배달되었다는 얘기가 산속에서 호랑이 만났다는 것만큼이나 믿기지 않는 옛이야기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자기들이 만들었던 어설픈 [우리 동네 꾸러기 신문]은 또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아이들이 기억이 잘 안 나서 나에게 물으러 온다면 이렇게 대답해 주겠다.

"너희 어렸을 적에는 나한테 글쓰기 배우러 다녔어. 사실 글쓰기는 핑계였고 날마다 깔깔대고 몰려다니며 노는 재미로 다닌 거지 뭐. 비록 문법이나 맞춤법은 어려워했어도 자기 생각을 거짓 없이 표현할 줄 아는 아이들이었단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이런 말을 해주려면 내가 무지 오래 살아야겠구나.

육하원칙 맞추려고 고심한 흔적들. 귀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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