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언니는 공부를 잘했다. 잘하기만 한 게 아니라 공부하는 걸 좋아했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지만 못하지도 않았다. 나는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저 해야 해서 했을 뿐이다. 어떤 과목이든지 달달 외우기만 하면 어지간한 성적을 받을 수 있고, 숫자로 표시된 학력고사 성적만 좋으면 어느 대학이든지 골라 갈 수 있었던 시절. 어쩌면 나는 그런 '죽은 교육' 덕분에 나름 상위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던 혜택을 누렸는지도 모른다.
나는 대학에 가서도 공부를 별로 하지 않았다. 여전히 좋아하지도 않았다. 비싼 학비를 4년 동안 꼬박꼬박 갖다 바쳤더니 졸업장이라는 게 주어지더라. 이력서에 쓰이는 한 줄 학력이 보태졌다. 그 한 줄을 바탕으로 내 첫 취업의 문이 열렸다. 첫 달 월급은 17만 원이었다. 35년 전 이야기다.
공부를 잘하고 좋아한 언니는 의대에 가고 싶어 했다. 집안에서 나오는 바퀴벌레 한 마리도 제 손으로 못 잡았지만, 사람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던 언니였기에 꿀 수 있는 꿈이었다. 하지만 부모님은 두 분이 제각기 다른 이유로 반대를 했다. 아버지는 여자가 무슨 의대냐, 의대는 공부하기 힘들다는 다소 석연찮은 이유로 반대했다. 언니가 학비가 싼 서울대 의대에 갈 성적이었다면 아버지는 그런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들어 반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의대 공부가 힘들다는 이유를 댔지만, 타 전공보다 더 긴 기간 동안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 학비걱정이 아버지가 반대한 진짜 이유였을 게다. 공부를 하려고만 들면 힘들지 않은 공부가 없다는 걸, 당시 교직에 있던 아버지가 몰랐을 리가 없다.
엄마가 언니의 의대 지원을 반대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나는 내 딸이 평생 남 아픈 데만 들여다보고 사는 게 싫다."라는 거였다. 착하디 착한 언니는 부모님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고 의대의 꿈을 접고, 식품영양학과를 지원했다. 허준의 꿈을 포기하고 대장금의 길을 갔다고 해야 하나. 언니는 대학 때까지만 아버지에게서 학비 지원을 받았고, 그 후 유학시절에는 단 한 푼도 받지 않았다.
가족 간에, 혹은 허물없이 부탁할 수 있는 관계망 안에 의사가 있었으면 할 때가 있다. 응급실을 찾았는데 홀대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랬다. 시어머니가 암 진단을 받으셨을 때, 남편의 다섯 남매와 이모들까지 가장 먼저 한 일은 '아는 의사'를 찾아 나선 거였다. 빽이나 줄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수술 일정은 한없이 미뤄질 수도 있었다. 그런 중병이 아니더라도 소소하게는, 아이가 아프다고 호소하는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 없을 때도 '아는 의사' 한 명쯤은 필요하다.
내 몸이 아플 때는 이게 병원을 찾을 일인지, 그냥 버티면 나을 일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그러나 아이가 아플 때 그 판단력은 흐려지고 만다. 나도 그랬다. 치료 시기를 놓치고 악화될까 봐 병원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소아청소년과와 치과는 기본. 배탈이야 말할 것도 없고, 축구하다가 부러지고, 벌레 물려 덧나고, 휴대폰 사용하니 눈도 나빠지고, 오래 앉아 있어 치질도 생기니 내과, 정형외과, 피부과, 안과, 외과도 간다. 병원 두 곳을 하루에 가야 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생긴다. 심정적으로 병원은 마트보다 가깝다.
우리 동네 의사들은 50%는 친절하고, 50%는 불친절하다. 고혈압 약을 처방받으러 갔는데 심리적인 문제까지 걱정해 주는 의사가 있는 반면, 환자와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은 채 컴퓨터만 보고 처방을 해주는 의사도 있다. 증세를 다 말하기도 전에 말을 끊거나 짜증 섞인 얼굴을 하는 의사도 있다. 그럴 땐 언니의 의대 지원을 반대한 엄마 말이 떠오른다. '하루종일 아픈 사람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저 양반도 힘들어 저러겠지.' 진료비를 치르고 나올 때는 의사가 나를 고친 게 아니라 내가 의사를 이해하고 위로했구나, 하는 생각도 들지만, 씁쓸함은 어쩔 수 없다.
"우리 아이가 의대를 간다고 했으면 당신은 어땠을 것 같아? 나는 반대. 의사라는 직업이 아픈 사람을 낫게 하는 숭고한 직업이라는 건 알지만, 우리 엄마처럼 내 새끼들이 하루종일 남의 아픈 곳만 들여다보고 있는 건 싫어."
언젠가 남편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남편에게서는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무 데서나 그런 소리 하지 마. 사람들한테 돌 맞아 죽어."
의대를 보내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준비를 시키며 매달린 사람들에게는 철없고 배부른 소리, 돌 맞을 소리로 들릴 수도 있겠다. 나도 친구 자녀가 의대에 입학했다고 하면 "와~!" 하고 손뼉 쳐 주었고, 앞으로 먹고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부러워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다른 기원을 한다.
'부디 돈을 많이 벌기 때문에 의사가 되려는 건 아니길. 그대들이 대하게 되는 대상은 생명을 가진 존재, 특히 도움을 간절히 필요로 하는 약한 존재임을 잊지 말기를. 그대 또한 의사 이전에 사람이기에 똑같은 처지에 놓일 수 있음을 기억하기를 바라네.'
의대 정원 확대 정책과 이에 반발하는 의사들의 파업으로 병원 현장이 난리다. 사람 목숨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의료계 권력과 그를 이용하려는 정치권력의 힘겨루기는 왜 꼭 선거철을 앞두고 일어나는지. 주변에 '아는 의사'들이 많은 분들이야 병원이 파업을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겠으나, 대부분의 서민들은 아파도 선거철은 피해서 아파야 하는가 보다.
나는 공부를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은 평범한 아줌마일 뿐이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히 알고 있다. 이런 사태로 한 명이라도 치료를 제때에 못 받게 되어 피해를 입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벌은 면치 못할 거라는 것을. 살아서 받지 못하면 죽어서도 그 벌은 다 받게 될 거라는 것을. 그가 정치인이든, 의료인이든 하느님 앞에서 그 책임은 면치 못하리라는 것을.
아, 우리 동네의 50%처럼, 아비규환인 의료 현장에서 두세 배로 뛰고 있을 의료진들에게는 신의 무한한 축복이 있을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