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 예능이지. 근데 이건 꼭 봐 봐. 재밌어. 나 새벽 세 시까지 그거 보다가 잤다니까."
"어이구, 밤늦게 요리 프로그램 보면 괜히 입맛 다시고 배고파지는 거 아니야?"
"아니, 별 상관없어. 나는 거의 다 모르는 맛이라서."
딸내미가 재미있게 본 프로그램이라며 [흑백요리사]를 보라고 강권한다. 그런데 "재미있게 보고는 있는데 먹어 본 적이 없어 모르는 맛"이라는 아이의 말에 괜스레 미안해지기도 하는데. 고급스럽게 갖춰진 음식보다 저렴하고 평범한 서민 음식만 먹여 키웠나 하는 생각에서다. 그렇다고 한 끼니에 수십 만 원씩 하는 파인다이닝을 사줘야겠다는 마음은 들지 않으니, 즐겨 보지 않던 예능이나마 함께 보고 공감해 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예능치곤 블록버스터 급이다.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셰프들이 대거 등장하고, 촬영 인력이 몇 명이나 될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으며, 세트장을 만드는 데만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겠다는 건 첫 한 편만 봐도 짐작하고 남았다. 평민과 양반처럼 흑수저와 백수저로 갈라서 못 박아 놓고 대결을 시작하는 것도, '탈락'과 '생존'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도, 이 기회에 인지도를 높여 보겠다고 유독 '튀는' 차림으로 나와 웃음 코드가 되어 준 사장님도 여태껏 봤던 요리대회와는 달라 계속 다음회를 누르게 했다. 게다가 누구의 리더십이 빛을 발할 것인가, 어떤 평가를 내놓을 것인가 등 결과를 알기 어려운 전개나 눈을 사로잡은 화려한 요리의 향연으로 단박에 정주행을 하도록 만들었다.
'이건 예능일 뿐이야.'
가벼운 오락으로 보자고 마음먹으면, 누가 이기고 누가 살아남을지에만 관심을 두게 되는, 돈을 많이 써서 만든 요리 예능.
'나 이거 본 적 있는 것 같은데?'라고, 언젠가 본 적이 있는 것처럼 착시 현상을 불러일으키는 건, 이전의 흥행작이었던 [오징어 게임] 때문이겠다. '사람을 죽이지 않는 오징어 게임의 예능 버전'이라는 게 아직 다 끝나지 않은 [흑백요리사]를 보고 있는 나의 한 줄 평이다.
그런데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엉뚱한 데서 불편함을 느꼈다. 재미있게 보기는 하는데 자꾸 거슬린다. 출연한 요리사들의 인성과도 관계가 없고, 프로그램의 완성도와도 무관하다. 다른 사람은 신경도 쓰지 않을 일에 나 혼자 불편해하는 것 같으니, 내가 꼰대라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한 번 귀에 거슬리기 시작하니 그것만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인다. 밥 위에 올려 먹은 생선 가시가 목구멍에 걸렸을 때의 불쾌감처럼. 그것은 말 한마디, 하나의 단어다. 촬영장의 스케일에 놀라고 감탄했을 때 출연자들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육성으로도 나오고 자막으로도 뜨는 말, '미쳤다, 미쳤어.'
'어머나, 그럴 수가'를 거쳐 '헐, 대박, 어쩔' 등 감탄사도 유행에 따라 바뀌어 왔다. '미치겠다'라는 말은 주로 너무 힘들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강한 부정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미쳤다, 미쳤어."가 긍정적 의미의 감탄사로 사용되고 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도 미쳤다, 훌륭한 작품을 감상하면서도 미쳤다를 쓴다.
'미친놈(년)'이라는 말은 심한 욕설이었다.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말이었고, 진짜 '미친 사람'에게는 오히려 금기시되어 있던 말이다. 인지 장애인에게 '바보'라는 말을 하지 않고, 지체 장애인에게 '병신'이라는 말을 하는 않는 것처럼, 정신 이상자에게도 '미쳤다'라는 말은 가려서 하던 게 우리 사회의 상식적 분위기였다. 그런데 아이들도 어른들도, 예능도 공영방송도 이 말을 감탄사로 계속 내보내고 있으니, 진짜 미칠 노릇이다.
'이거 나만 불편한 건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 프로그램이 요리여서 더 그런 것 같다. 음식의 디폴트 값은 '사람을 건강하게 살리는 데' 있다고 보는 나로서는 요리사들의 입에서 '미쳤다'는 말이 버릇처럼 나오는 게 듣기 싫었던 게다. 대장금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음식으로 어지간한 병은 다스릴 수 있고, 요리사 역시 의사만큼이나 사람의 영육간 건강을 돌보는 직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불편했던 내용은 또 있다. 몇 번째 회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흑수저와 백수저가 팀 전을 했다. 백수저 팀의 리더를 맡은 최현석 셰프는 재료를 확보해야 할 필요를 알고 있기에 메뉴를 짜기도 전에 주어진 가리비를 싹 쓸어 오도록 한다. 거기까지 짐작하지 못했던 상대팀 팀장은 멘털이 크게 흔들린 듯했다. 최현석 셰프가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백수저 팀은 승리했다. 사람들은 재료를 선점한 그의 판단력이나 리더십에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런데 나는 최현석 셰프의 행동이 치사하고 졸렬하게 느껴졌다. 재료를 남김없이 가져와서 이기겠다는 전략은 심사위원들의 입맛에 맞는 맛 좋은 요리를 만드는 데는 훌륭한 전략이었을지 모르나, 순수한 맛의 대결이 아니라 재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하는 시합으로 만들었다. 경쟁을 꼭 해야 한다면 정정당당하고 공평한 운동장에서 해야지, 운동장을 기울인 뒤에 하면 안 된다.
하다 못해 꼬맹이 아이들과 요리활동을 할 때도 "싸우지 말고 마음을 바르게 가져야 음식이 맛있게 된다"라고 말해주지 않던가. 음식은 싸우기 위해 하는 게 아니다. 이기기 위해 하는 것도 아니다. 나를, 내 가족을 살리기 위해 하는 거다. 서로를 살리기 위해 하는 거다. 연탄불에 양은 냄비 하나 올려놓고 만드는 요리라도 이 원칙만은 지켜져야 한다. 이 철학이 없으면 그건 음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웃자고 하는 일에 죽자고 덤비는 게 아닌가, 말 그대로 예능을 다큐로 받는 게 아닌가, 나 혼자 유난을 떠나 싶어 브런치에 '흑백요리사'라는 검색어를 쓰고 찾아보았다. 200건에 가까운 글들이 검색되었다. 전부 다 읽어 보지는 못했지만,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작가의 관점에 따라 다른 평가들이 달려 있다. 그러다 같은 관점을 기가 막히게 써 준 글을 발견했는데, 어찌나 반갑고 고맙던지.
부엌일을 하면서 드라마를 라디오처럼 틀어 놓는 나는 흑백요리사도 마지막 회까지 다 볼 것이다. 맛도 모르는 요리가 나올 때마다 눈요기도 하고, 반전을 기대하며 요리사들의 승부도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것이다. '미쳤다'는 말이 계속 나와도 나는 끝까지 그 말에 세뇌되지 않기를 바라고, 지겹게 몸에 밴 경쟁 체제가 내 삶에서 더 강화되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눈으로 보면서, 머리는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어쩌면 모순이고 딜레마일 수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