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수녀님, 신부님, 목사님들은 이 글을 꼭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글방에서 만나는 4학년 아이들과는 한 달에 한 번씩 가까운 박물관을 다녀온다. 박물관과 글쓰기를 어떻게 연결시켜 줄지 고민하는 건 당연히 교사인 내 몫이고, 아이들은 일곱 명이 도란도란 다녀오는 견학을 소풍처럼 즐거워한다. 아이들은 박물관을 구경하는 것도 좋아하지만, 시내버스를 타고 나가는 것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건 그날만큼은 합법적으로(?) 학원을 빠질 수 있는 것.
지난 달인 5월에는 석가탄신일이 있어서 가까운 모 불교미술 박물관을 나들이 장소로 정했다. 긴 연휴로 마냥 늘어져 있던 나는 이미 여러 번 가본 곳이기도 해서 답사를 가지 않았다. 석탄일이 지난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전보다 볼 게 더 많을 것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당일 그곳을 갔을 때, 미술관은 내부수리 중이었다. 박물관을 보지 못한 것도 아쉬웠지만, 앞으로 남은 두 주간 동안 어떤 주제로 글쓰기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뭘 쓰지? 어떻게 하지?'
그러나 역시 답은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법.
간식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불교에서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게 됐다. 한 아이는 식당에 밥 먹으러 들어갔더니 어떤 스님이 와서 목탁을 두드리며 돈을 달라고 했다는 경험도 말한다. 머릿속에 번쩍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옳지, 불교에 관해서만 쓸 게 아니라, 종교인들을 주제로 주어 보자.'
"얘들아, 우리가 전에 여행 갔을 때 수녀님 만난 적 있지? 수녀님들은 수건 같은 걸로 머리를 가리고 있었잖아. 그런데 스님들은 빡빡 깎지? 신부님 수녀님들과 스님들은 결혼도 안 해. 불교에서 고기 안 먹는 이유는 전에 잠깐 말해 줬지? 그리고 교회에서는 술, 담배를 하지 못하게 하거든? 도대체 왜 그럴까?"
답도 가지가지다.
"그러게요. 왜 그러는 거죠?"
"머리를 안 감아서 냄새날까 봐 쓰고 있는 거 아니에요?"
"고기가 비싸잖아요. 돈 없으니까 안 먹는 거죠."
'오냐오냐. 너희들 생각대로 써보렴.'
"오늘 주제는 이거야. <왜 종교인들은 '그렇게' 사는 걸까?> 너희가 생각하는 대로 한번 써 봐."
나는 스님들께서 고기를 안 먹는 이유는 생명을 존중하기 때문인 것 같고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은 결혼을 하면 아기를 낳게 되고 아기를 키우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머리를 미는 이유는 자신을 꾸미지 못하게 하려고인 것 같습니다.
목사님들께서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이유는 술과 담배를 하면 몸에 해롭기 때문입니다. 수녀님과 신부님께서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결혼을 하면 아기가 생기고 그러면 아기를 부모 한 명이서 돌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승연)
목사님들이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이유는 아이들 생각이 대체적으로 비슷하다. 몸에 해롭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승연이는 아이 출생에 따른 양육비와 보육이 가장 큰 어려움으로 여겨지나 보다.
.... 수녀님들이 머리카락을 가리는 이유는 지저분할 수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스님이 머리를 다 깎아버리는 이유는 수녀님 하고 같은 이유 같다. 고기를 안 먹는 이유는 생명 존중 때문인 것 같다. 스님이 결혼을 안 하는 이유는 결혼을 하면 아이와 와이프를 생각하느라 부처님같이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일 것 같다.....(우현)
수녀님들이 베일을 쓰는 이유를 말할 때 아이들이 수녀님들이 머리를 감지 않아서 그럴 거라는 말을 했는데 우현이도 그렇게 썼다. "결혼을 하면 아이와 와이프를 생각"한다고 쓴 우현이는 나중에 결혼하면 아이와 와이프를 생각하는 다정한 아빠와 남편이 되겠구나.
머리를 가리거나 깎는 이유에 대한 주연이의 생각도 비슷하다. "부스스하고 막 정신없이 난리난 머리를 보이기 부끄러워서" 그렇게 하는 것 같단다.
.... 근데 진짜 궁금한 건 머리를 깎는 이유. 음. 내 생각에는 자신의 외모를 정돈을 할 시간에 부처님이나 예수님같이 되기 위해 그렇거나, 부처님이나 예수님에게 부스스하고 막 정신없이 난리난 머리를 보이기 부끄러워서인 것 같고, 비슷하게 궁금한 건 왜 결혼을 하지 않는 것일까이다. 스님은 생명을 죽이는 것도 안 되고 만드는 것도 안 될까? 아니면 부처님이나 예수님을 더 믿고 따르라는 것일까?....(주연)
그런가 하면 각 종교인들이 서로 비슷하게 살아야 하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생각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수인이는 머리를 깎거나 가리는 게 공평하고, 세빈이는 누군 결혼하는데 누군 안 하면 안 되니까 그렇게 하는 거란다.
.... 또 천주교에서 여자만 머리를 가리는 이유는 나만 혼자 잘 보일 거라는 교만한 짓을 막고 항상 겸손하게 머리를 꾸미지 않게 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절에서 고기를 안 먹는 이유는 생명을 존중하기 위해서이고 사람이 죽어서 동물로 환생할 수도 있어서 자기가 먹는 게 혹시나 동물로 환생한 사람일 수도 있어서일 것 같고, 머리가 맨들맨들한 이유는 공평하게 하려면 머리를 미는 게 제일 공평한 것이기 때문인 것 같다.....(수인)
.... 스님들은 돈이 별로 없어서 머리카락이 계속 길어지니까 미용실에서 머리를 밀 돈도 별로 없고, 원래 스님들은 미용실을 안 가니까 스님들끼리 서로 머리카락을 밀어주는 것 같다.... 목사님께서는 왜 술과 담배를 안 하실까? 술과 담배를 안 하시는 이유는 목사님께서 술과 담배를 피시면 쫓겨나지 않지만 아주 비난을 많이 받고 목사님이 될 자격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신부님 수녀님께서는 왜 결혼을 안 하시고 머리를 가리시는 걸까? 신부님 수녀님이 결혼을 안 하시는 이유는 스님, 목사님 등 결혼을 안 하시는데 신부님 수녀님만 결혼을 하시면 일반 사람들이 신부님 수녀님을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기 때문이다.....(세빈)
그러나 아이들의 글이 그저 장난스럽고 우습기만 한 건 아니다. 비록 세련된 문장으로 표현하지는 못한다고 할지라도, 아이들에게는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눈이 있다고 나는 믿는데, 아이들은 종교인들이 가져야 할 태도를 정확히 짚어내기도 했다.
.... 나는 종교인들이 머리를 가리거나 깎는 이유, 멋을 내지 않는 이유는 화려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려고 그러는 것 같다. 또는 처음에 스님이 되겠다고 결심해서 머리를 깎는 것은 그동안의 나쁜 기운들과 마음들을 모두 떨쳐내려고 하는 행동인 것 같다. 그리고 신부님, 수녀님, 스님이 결혼을 하지 않는 이유는 한 사람만을 섬기고 생각하며 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종교인들은 일반인처럼 살면 훨씬 편하게 살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다르게 살까? 나는 그 이유가 한 신만을 섬기며 몸과 마음을 단정하고 깨끗하게 수련하면서 인생을 살려고 하는 것 같다.....(예설)
예설이만 그렇게 쓴 게 아니다. 세빈이는 "스님들이 결혼을 안 하는 이유는 스님이 결혼을 하면 서로 챙겨 주느라 스님이 해야 할 일에 집중을 잘 못할까 봐"라고 썼고, 우현이도 "(신부님 수녀님들이) 내 생각으론 결혼을 안 하는 이유는 자기는 천주교와 결혼을 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다."라고 썼다.
가끔 아이들 이야기를 브런치에 정리하는 이유는 첫째로는 아이들의 글에 드러나는 마음을 기억하고 싶어서다. 아울러 아이들과 했던 수업을 부모와 공유할 수 있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 글은 브런치를 오가는 많은 스님, 목사님, 신부님, 수녀님들이 읽기를 바라며 썼다. 자신들이 왜 머리를 깎았는지, 왜 머리를 가리고 사는지, 왜 결혼을 하지 않는지, 왜 술 담배를 하지 않는지 다시금 아이들의 시선으로 돌아보면 좋겠다.
*대문사진: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