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은 이렇게 / 고운 글모음 바른 글마음
지난 주로 2025년도 수업을 종강했다. 방과 후 학년활동과 결합해서 진행한 3학년, [박물관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시도를 했던 4학년, 그리고 1년을 쉬었다가 다시 만난 5학년까지 모두 마쳤다. 한 해를 열심히 살았고 졸업여행, 박물관 긴나들이, 당일치기 서울 여행 등 마무리까지 나름 의미 있게 하려고 노력했지만, 마지막에는 감사함만큼 아쉬움도 남는다. 내 하루하루가 그렇고, 세상만사가 그렇듯이.
해마다 종강 무렵이면 아이들의 새 학기 일정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다. 아이들의 삶에서 나와 만나는 글쓰기 수업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서다. 아이들이 적어낸 새 학년 일과를 훑어본다. 일주일에 주 2~3회씩 하는 영어가 기본, 거기에 수학이나 한국사 과목이 보태지고, 미술 피아노 태권도 같은 예체능 학원도 대체로 한두 개씩은 하고 있다(거기에 아이에 따라 방과후 수업이 더해진다. 영어, 주산암산, 글쓰기, 바이올린, 피아노, 음악줄넘기, 골프, 수영, 피클볼, 리코더, 탁구, 농구, 영재학급 이렇게 최대 13개까지 적어낸 아이도 있다.ㅠ) 가장 가기 싫은 학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아이들 대부분 영어 학원을 꼽는다. 숙제가 많아서란다. 학원에 다녀와 저녁밥 먹고 나면 뒹굴거리며 쉬고 싶을 텐데, 다음날 가져갈 숙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울 게다.
그런데 아이들 일정을 알아보다가 놀란 것은 따로 있었다. 맞벌이 부모가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공백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봐주는 것이 각종 학원이 성업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들은 돌봄 공백 때문이 아니라 아이들의 '공부(학습)'에 진심이어서 학원에 보내고 있었다! 중고등학생처럼 날마다는 아니지만, 평일 저녁 7시부터 시작하는 학원 수업에 가야 하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저녁밥을 먹고 난 다음에 소화해야 할 것이 학원 숙제뿐 아니라, 학원 수업도 있었던 거다. 어른들도 하루 종일 일하고 오면 밥 먹고 다시 일하러 가기 싫어지는데, 아이들이 그렇게 일주일에 한두 번씩 '야근'을 하러 가는 거였다. 고작 초등학교 5,6학년이, 그깟 한국사와 독서논술을 위해서.
살짝 충격을 먹은 나는 아이들이 가게 되는 논술수업 학원의 커리큘럼이 궁금해졌다. '얼마나 훌륭하고 대단한 수업이길래.' 내가 하는 수업과 비슷하다면 굳이 내가 수업을 개설할 필요가 있을지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 같았다. 내가 수업을 해서 돈을 벌기도 해야 하지만, 중복되는 수업으로 아이들을 괴롭히고 싶지도 않았다.
아이들이 다닌다는 '곰***'에 대한 정보를 아이들에게서는 별로 얻지 못했다. 무엇을 배우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대부분 "몰라요. 기억이 안 나요."라고 시큰둥하게 대답했는데, 그런 대답이 나온다는 건 아이들이 그 학원 수업을 그다지 즐기고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 스스로 찾아볼 수밖에. 제미나이에게 묻고, 카페나 블로그, 인스타에 올라온 홍보물들을 샅샅이 뒤졌다. 그곳의 학습 목표와 내 수업 목표가 일치한다면, 나는 정말 아무런 미련 없이 수업을 접을 요량이었다.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곰***의 커리큘럼이 내 눈에는 그다지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문해력을 키우고 독서력을 강화한다고는 하지만, 종국에는 대입 수능을 향한 국어공부였다. 홍보는 주로 학교에서 받는 상, 국어점수 등을 활용하고 있었다. 글쓰기 교육도 교과서와 연관되었거나 필독서, 교재 위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식의 논술수업이 쓸데없다거나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곰***'을 디스하려는 의도도 없으며, 그건 후졌고 내 수업이 훨씬 낫다고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 초등학교, 아니 유치원 때부터 준비하는 우리나라 선행학습의 현실을 모르지 않다. 하지만, 이참에 나만의 방향성만은 정리해 보고 싶었다. 부모의 불안감을 건드려서 자꾸만 더 빨리, 더 많이 집어넣으려는 거대한 사교육 시장에 발을 들여 놓았지만 정신줄은 놓지 말자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정리한 세 문장. 이는 아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글방구리 수업, '삶을 가꾸는 글쓰기 수업'이 호랑이 굴에 물려가도 정신 차리고 지켜야 할 원칙이다.
첫째, 아이들은 친구들을 어떤 식으로든 경쟁상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글쓰기 역시 교사보다 친구들로부터 서로서로 배우는 것이 더 많아야 한다. 덜 효율적이라고 느껴지더라도.
둘째, 아이들은 아름다운 글을 읽고 씀으로써, 생명을 사랑할 줄 아는 바른 마음을 배운다. 아주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해도.
셋째, 아이들은 주어지는 교재를 암기하고 학습함으로써가 아니라, 자신들이 쓰고 만들어 내는 작품을 통해 성취감과 자존감을 느껴야 한다. 글의 내용이 어른들 눈에는 차지 않고 결과물이 천천히 나온다고 해도.
[고운 글모음 바른 글마음]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에게 줄 공책도 정성스레 만들었다. 번호 붙여 적어 놓고 보니 거창해 보이기는 하지만 사실 여태까지 몇 년 동안 해온 수업 목표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매주, 학년별로 어떻게 적용해 나가야 할지는 여태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다 보면 방법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글방구리도 이렇게 또 한 번 진화하고 있다고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