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늑구야

초등 아이들이 늑구에게 쓴 편지

by 글방구리

성심당은 전국적으로 이름을 날리기까지 70년이 걸렸는데, 불과 열흘 만에 대한민국을 평정한 대전의 명물이 있었으니 그 이름 '늑구'. 어쩌다 탈출하여 어쩌다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혈기왕성한 늑대 덕분에 글쓰기 하는 우리 아이들과 나눌 좋은 글감이 생겼다.


5학년 아이들과 이 주제로 수업을 하려고 했던 날은 마침 1차 생포에 실패한 날이었다. 잡히지 않으려고 애써 달아나는 녀석도 안쓰럽거니와, 동네에서 볼 법한 개보다 조금 더 큰 개(잘은 모르지만 '늑구'의 '구'가 '개 구'가 아닐는지)를 잡겠다고 밤새 애쓰며 마음을 졸여 온 관계자들도 안쓰러운 참이었다. 야생에서 자라다가 잡혀 온 늑대가 아니고 오월드에서 태어나 사람들 손에 길러진 늑대라고 하니, 이번 탈출은 늑구 자신에게도 황당한 일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동물을 주제로 하는 글감은 아이들에게 비교적 다가가기 쉽다. 기왕에 쓰는 글이니 '동물권'을 살짝 이야기하기로 마음먹고 아이들에게 어렵지 않을 다큐멘터리를 골랐다. KBS에서 오래전에 방영된 [콘크리트 사파리]라는 다큐를 찾았다. 전국적으로 운영되는 사설 동물원의 문제점을 다룬 다큐에는 마침 오월드도 취재가 되어 있었다. 아이들은 다큐를 보고 나서, 아직 길거리를 헤매고 있는 늑구에게 편지를 썼다.


아이들은 이미 같은 오월드에서 탈출했던 퓨마 사살 사건을 잘 알고 있었다. 늑구가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맹수라는 건 알지만, 사살되지 않고 생포되어 오월드로 돌아가기를 바랐다. 아마 다큐를 보지 않았더라면 그냥 거기에서 끝났을 테지만, 동물원 환경이 동물의 본성을 거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는 마음이 매우 복잡해진 듯했다.

... 너는 지금 살아 있니? 나는 지금도 살아 있으면 좋겠어. 나간 이유는 잘 몰라. 그리고 네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나는 몰라. 그래도 다시 오월드로 돌아오면 좋겠어. 이유는 네가 안 돌아오면 사람들이 위험하고 너도 위험하잖아. 너도 빨리 잡히고 싶지는 않겠지만 네가 살아서 돌아오면 좋겠어....(수현)
... 네가 동물원에 살아 돌아오면 다시는 탈출 안 하면 좋겠어. 왜냐하면 네가 동물원에서 탈출하면 사람들이 위험하고 잡는데도 오래 걸리기 때문이야. 그러면 생포돼서 동물원에서 잘 살아. 안녕!(승연)
... 사람들이 너를 사살하지 않고 생포했으면 좋겠어. 늑구 너는 사냥하는 법을 잘 배우지 못했잖아. 그런데도 차라리 널 사살하라고 큰 걱정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예전에 퓨마 사건처럼 끔찍한 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고 네가 안전하게 구조됐으면 좋겠어. ... 너는 지금 기분이 어떠니? 이 편지를 보면서라도 늑구 네가 우리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수인)
... 매일 딱딱한 콘크리트 바닥을 밟고 그 좁은 공간에 살면 너무 힘들고 답답하니 탈출을 했을 거야. 막상 탈출을 하니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모든 게 무섭고 두려웠을 것 같아. 거기에 먹이를 사냥하는 법도 모르니 며칠을 굶어서 배도 고픈데, 모르는 사람들이 너를 둘러싸서 잡으려 하면 정말 무서웠을 거야. 나였으면 그냥 포기하고 잡혔을 것 같은데 얼마나 돌아가기 싫었으면 그렇게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도망쳤는지 상상도 안 가. 그래도 사람들이 너를 퓨마 뽀롱이처럼 살해하지 않고 생포하자고 해서 다행이야....(주연)
... 난 네가 왜 오월드에서 탈출했는지 잘 모르겠어. 그렇지만 네가 탈출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 내가 소방대원들이라면 너를 사살하고 싶지 않아. 그렇지만 사람들의 안전이 너무나도 중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어. 내가 너라면 참 힘들 것 같아. ... 너의 하루하루가 참 힘들겠지만 하루라도 더 살 수 있게 응원할게. 힘내! (세빈)

아이들은 동물원으로 돌아가는 게 나은가, 잡히지 않고 야생에서 살아남는 게 나은가 하는 토론도 했다. 어른들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이슈를 두고 저마다의 생각을 글로 남겼다. 글을 쓰는 동안, 동물을 사람을 위해 희생시키는 전시물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손톱만큼이라도 자라기를 기대했다.


그중 예설이는 늑구에게도, 늑구를 구조하기 위해 애쓰는 관계자들에게도, 아니 오월드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명문을 남겼다. 결정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나름의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늑구야, 안녕! 나는 예설이라고 해. 이번에 네가 오월드에서 탈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도 대전에서 살아서 솔직히 처음 네가 탈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이 무서웠어. 겁도 나고 말이야. 솔직히 그때는 네가 그만큼 힘들어서 탈출했을 거라는 생각도 안 들었고. 그냥 어떻게 나왔는지 도대체 왜 탈출했는지 이해가 안 됐어. 그런데 오늘 글쓰기에서 본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본 동물들이 너무 짠하고 안타까웠어.
동시에 네 생각이 났어. '그냥 왜 탈출했지?'라는 생각뿐이었지만 이제는 '네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곳을 탈출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리고 소식으로는 일주일 정도 전에 먹은 닭 두 마리가 네 마지막 식량이었다고 들었어. 솔직히 너에게 정말 미안하고, 너뿐 아니라 지금도 갇혀 있는 동물원의 동물들한테도 정말 미안해.
만약에 내가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정말 일주일도 버티지 못했을 거야. 나는 네가 정말 대단하고 멋지고 고마워. 그리고 나는 네가 진심으로 잡히지 않았으면 좋겠어. 하지만 네가 동물원으로 오고 싶다면 나도 최대한 도울게. 이 부분에서는 너를 잡으려고 노력하시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있어. 노력해 주시는 것 정말 고맙지만 늑구를 그냥 내버려 둬 달라고 말이야.
하지만 그 부분에서는 너도 배려해 주어야 할 점이 있어.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공격하지 말고 친근하게 다가가 줘. 뭐 그게 싫다면 네 맘대로 해도 돼. 하지만 그들을 괴롭히진 말아 줘. 그럼 그 주민들도 너를 잘 챙겨줄 거야.
나에겐 하나의 목표가 생겼어. 돈을 많이 벌어서 동물들을 위해 큰돈이 아니더라도 기부하는 거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월드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고 잘 버텨줘서 너무 고마워. 그럼 안녕!(예설)

아이들의 글 덕분인지, 늑구는 오늘 아침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생포되었단다. 아이들도 이 소식을 들었을 테지. 너희들의 마음이 늑구에게 전달되었을 거라고, 다음 주 수업 때 잊지 말고 말해줘야겠다.


*대문 사진/ 대전 MBC 제공, 오마이뉴스 기사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