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위의 선한 예수

포르투갈 브라가 / Bom Jesus do Monte

by 글방구리

회개, 보속, 고통, 죽음, 십자가.

사순절이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단어들이고, 교회는 올해도 어김없이 그것들을 묵상하도록 권유하고 있다. 입으로 소리내거나 외워서 바치는 대부분의 염경기도가 그렇듯, 사순절이나 성지순례 때 주로 바치는 '십자가의 길' 기도 역시 기도하는 내내 마음을 오롯이 담기가 쉽지 않다. 입으로는 기도문을 외우고 있으면서도 머리는 오만 잡생각으로 가득 차 있을 때가 많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순절에 신자들이 성당 벽면에 붙은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면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은 언제나 경건해 보인다. 때로는 무릎을 꿇기도 하고, 양팔을 벌리기도 하면서 각자 최선을 다해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길을 느껴 보려고 애쓰는 노력이 보여서일 테다.


나도 역시 눈물을 펑펑 쏟으며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친 적이 있다. 벌써 40년 가까이 됐는데, 아직도 그때를 떠올리면 명치 아래가 뜨겁다. 나는 성당에서 초등부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시 주임신부님은 사순절이면 초등 아이들에게 성극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어린이들이 성탄절에 아기 예수의 탄생을 성극으로 선보이는 경우는 종종 있었지만, 십자가의 길을 공연하는 사례는 들어보지 못했었다. 아이들은 고통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편견도 있어서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도 했다. 어쨌든 신부님의 명을 받은 교사들은 사순절을 그렇게 아이들과 성극을 준비하며 보냈다.


공연일은 성금요일이었다. 우리는 제대를 중심으로 한 처, 한 처 돌아가는 식으로 성극을 구성했는데,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릴 때까지는 제대 앞에서 공연해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돌아가신 뒤 무덤에 묻히시는 장면을 연출할 때 난관에 봉착했다. 아이를 바닥에 눕히면 신자석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부님은 이런 우리의 고민을 듣고, 파격적인 결정을 내리셨다. 마지막 장면에서 아이가 제대 위에 누울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헐벗은 채 그대로!


성극 중에 아이들의 대사는 한 마디도 없었다. 배경음악을 틀고, 아이들이 각 처의 내용을 표현하면 신자들이 기도문을 함께 바치는 식으로 진행했던 것 같다. 그날 신자들은 평소와 달리 한 발짝도 걷지 않고 십자가의 길 기도를 구경하며(?) 바쳤지만, 예수님의 죽음이 가까올수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나 역시 차가운 제대 위에 웃통을 벗은 채 덜덜 떨고 있는 초등 4학년 아이의 연기 아닌 연기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내 생애 가장 거룩하게 바친, 가장 인상 깊게 남은 '십자가의 길 기도'였다.


포르투갈 2일 차. 인파에 치였던 포르투 관광 대신, 우리는 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 외곽에 있는 '브라가'라는 작은 도시로 갔다. 그곳에는 '산 위의 선한 예수(Bom Jesus do Monte)'라는 성당이 유명하다고 했다. 산 아래에서부터 십자가의 길 기도를 하면서 올라가면 꽤 높은 꼭대기에 성당이 있다는데, 체력과 시간을 비축해야 했던 우리는 택시를 타고 산 위로 직행했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대성당을 돌아보고, 아기자기한 인공 호수와 공원을 산책한 뒤 아래로 내려가면서 관람하는 코스였다.


지그재그로 이어지는 계단은 아래로 내려가는 것인데도 꽤 가파르고 길었다. 오감을 상징하는 분수도 있고, 방향을 틀 때마다 서 있는 작은 경당에는 예수님의 수난사를 묵상할 수 있는 성서 속 장면들이 조각상들로 재현되어 있었다. 마치 성당 벽면에 걸려 있었던 십자가의 길(14처)을 입체적으로 확대해서 한 처에 한 집씩 조성해 놓은 모습 같았다. 자세히 보자 하면 하나하나가 다른 내용을 묵상하도록 만들어져 있었지만, 아이들 눈에는 모든 경당이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지 지루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역시나 '아이들'과 '수난'은 그리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배도 고프고 포르투로 돌아가야 하는 버스도 미리 예약해 둔지라 서둘러 산을 내려왔다. 가장 아래에 있던 경당 앞에 부부로 보이는 중년 남녀가 기도서를 펴 들고 뭔가 웅얼거린다. 어느 나라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해도 필경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치는 것이리라.

'사순절에는 무릎을 꿇은 채 이 높은 계단을 올라가는 순례자들도 많다는데, 우리는 택시를 타고 쌩하니 올라갔다가 구경만 하고 내려왔구나. 저들은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제자들인데 나는 십자가의 길을 구경하는 구경꾼이네.'

하지만 그런 미안한 마음도 바람처럼 아주 잠시 스치고 지나갔을 뿐, 내 발걸음은 그저 신나고 좋기만 했다. 오래 전 아이들의 수난 성극을 구경하던 신자들처럼 나도 십자가의 길을 걷지 않고 구경만 했는데도, 왠지 모르게 충만한 기쁨과 은총을 느꼈다.

아마 그곳 이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고색창연했던 바실리카, 그곳은 십자가의 길을 조성해 놓았어도 이름은 고난의 예수, 고통의 예수, 십자가의 예수가 아니라 '산 위의 선한 예수'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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