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말에 멀미가 나다니

포르투갈 포르투 / 순례와 관광 사이

by 글방구리

'하느님이 우리말을 하시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성서와 함께>라는 출판사가 내건 슬로건이었다. <성서와 함께>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운영하는 출판사였는데, 당시만 해도 성경을 가까이하는 신자들이 많지 않았기에 성경 공부를 독려하는 취지로 내걸었던 문장이었다. 누군가는 '그게 왜?'라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그 슬로건을 처음 본 순간, 머릿속에 전구가 반짝 켜지는 듯했다.


'하느님이 우리말을 하신다고? 내가 말하고 알아들을 수 있는 한국말을? 통역이나 설명 없이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다고?'

깨달음, 다른 말로 '은총'은 늘 그런 식으로 왔다. 평범한 문장 한 줄, 사소한 사건 하나가 비범하고 새롭게 해석되는 식. 하느님과 나 사이에 통역이 필요 없다는 믿음은 내게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다. 남들은 아직 모르는 문제집 답안지를 발견한다거나 평생 꺼내 써도 마르지 않을 보물이 묻힌 보물섬 지도를 찾았을 때 이런 마음이 들까?


하지만 통역이 필요 없는 건 국내에서 하느님을 만날 때만 통했지, 해외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갈 때는 통하지 않았다. 영어 실력에 따라 일의 성과도 달라지니, 콤플렉스라고 할 만큼 영어에 자신이 없던 나는 어떻게든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피하려고 했더랬다. 말이 통하지 않는 곳을 일부러 찾아갈 필요가 있나.


40년이 지난 지금, 가족과 해외여행을 갈 때 더는 언어 때문에 주저하지 않는다. 내 영어 실력은 40년 전에서 한 발짝도 나아지지 않았지만 내게는 막강한 지원군이 있다. 아이들은 영어 듣기 평가로 대입을 치른 세대라 얼추 생활영어를 할 줄 알고, 발음이나 문법이 틀려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고 현지 언어를 마구 날리는 남편도 기본적인 대화에는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게다가 그들이 막히면 그들보다 유능한 파파고가 로밍된 휴대폰 속에서 상시 대기하고 있지 않은가.


튀르키예에서는 메르하바, 포르투갈에서는 오브리가도, 스페인에서는 그라시아스. 이번 순례길 동안 서로 비슷하지도 않은 삼개국어를 접해야 했다. 물론 영어를 주로 할 테고, 그들의 모국어도 영어가 아닌 이상 우리나 그들이나 도긴개긴일 테니 크게 쫄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우리 원래 목적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어보다 더 자주 접할 만국공통 인사는 '부엔 까미노'와 '올라!' 그리고 열린 마음과 웃음만 장착하면 된다고 했다. 순례길의 언어는 그거면 충분하다고, 외국어를 할 줄 모르는 게 산티아고 순례길에 큰 걸림돌은 아니라고, 내가 읽은 책에는 예외없이 그렇게 쓰여 있었다.


우리가 공식적으로(?) 걸은 순례길은 스페인 비고에서 시작해 레돈델라, 폰테베드라, 칼다스, 파드론, 그리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마무리하는 길이었다. 그러나 나는 마음속으로 집에서 나서는 출발부터 다시 인천공항에 내리는 도착까지 여행 전체를 성지순례라고, 가족과 함께 하는 피정이라고 생각하고 떠났다. 대침묵을 한 것도 아니고 미사를 자주 참석한 것도 아니고 기도를 오래 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성당만 간 게 아니라 정교회 성당도 구경하고 모스크도 참배했으며, 유명한 관광 명소도 찾았다. 단식은커녕 다니는 동안 맛있는 음식을 먹으려고 했고, 멋진 풍경을 볼 때마다 눈과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나중에 딸내미는 휴대폰 갤러리를 넘기며 "이번 여행은 전부 성당 사진밖에 없네."라고 허탈해(?) 했지만, 난 그 말을 들으며 우리 여행이 피정이자 순례가 맞았구나 생각했다. 심증은 기억과 마음에, 물증은 사진에 남았다.


이스탄불에서 이륙해서 다섯 시간 만에 도착한 포르투. 입국심사를 하는 중에 자동심사 라인에 오류가 났다. 나는 문제없이 통과되었는데 세 식구는 나오는 데 한참 걸렸다. 더욱이 친절하지도 않았단다. 포르투갈 첫인상이 그리 좋지 않다. 나는 포르투라는 곳이 있다는 것도 이번 여행을 준비하며 처음 알았다. 어느 방송에서 나온 이후 한국에서는 최근 '핫한' 도시가 되었다는데. 어쨌든 사흘간 묵기로 한 곳이니 공항의 기분은 떨쳐내고 좋은 마음으로 머무르기로 했다.


숙소에 가서 짐을 푼 뒤 거리 구경을 나왔다. 성탄절은 지났지만 팔부축제가 계속되는 듯 성탄절 분위기가 물씬 났다. 마라톤대회가 있었는지 운동복을 입은 참가자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날이 저무니 인파가 점점 더 많아진다. 좁은 도로에 몰려나온 사람들로 인해 피로감이 몰려왔다. 많은 사람들만큼 더 신경을 건드리는 건, 시도 때도 없이 들려오는 한국말이었다. 과장 섞어 '물 반, 한국인 반'이라고 해도 될 만큼 한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다음날 들른 <렐루 서점>에서도, '파도(fado)'라는 포르투갈 전통 노래를 공연하는 라이브 카페에서도, 밥 먹으러 들어간 음식점에서도 어김없이 마주치게 되는 한국사람들. 식당처럼 작은 공간이든 커다란 성당이든, 우리 가족도 그들을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고, 우리를 반가워하는 한국인은 없었다.


포르투에서 보낸 사흘 중 첫날을 제외하고는 14명이 함께 쓰는 호스텔에서 묵었다. 남녀혼실이었고, 이층침대는 삐걱거렸고, 체크인 과정에 혼선이 있어서 마음이 살짝 상했던 적도 있으나 알베르게처럼 최대한 서로를 배려하며 이용하는 곳이어서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그간 길에서 스친 수많은 한국사람들, 신혼여행차 온 젊은 커플의 자유로운 애정 표현, 퇴직 후 동창모임으로 온 듯한 초로의 아줌마들이 내는 소음이 마치 멀미처럼 내 속에서 부대꼈나 보다. 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들 나라 언어로 소음을 발생시켰지만,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는 소음도 되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하느님이 우리말을 하셔도, 내가 그 말을 다 알아들어도 마음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하느님 말씀도 소음이 된다는 것.


하루는 남편과 나는 까르무 성당 관람을 했다. 1인당 입장료가 7유로인데 아이들은 그 돈을 쓰기 아까워했다. 똑같은 성당인데 뭐 돈까지 내고 보느냐는 거지. 순례를 따라와준 것만도 고마우니 동행을 강요하지 않는다. 카타콤바와 성인 유해 등 오밀조밀한 전시실이 10여 개 있고, 성당 지붕까지 관람할 수 있도록 개방해 두었더라. 관람을 끝내고 내려와 순례자 여권(크레덴시알)과 조개껍데기를 식구 수대로 샀다. 남편이 화장실에 간 동안 나 혼자 계산했더니 내 것 하나에만 순례 확인 도장(세요)을 찍어 준다. 안 통하는 말은 대신해 줄 수 있지만 앞으로 두 발로 걸을 순례는 본인이 직접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임을 새삼 느낀다. 숙소에 돌아와 순례자를 상징하는 조개껍데기를 가방에 조심조심 매달았다. 초등학교 입학 전 날, 새로 산 가방을 챙기는 아이처럼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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