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비고 / 우리도 춤추러 나갈 걸 그랬나?
2025년의 마지막 날, 포르투갈을 떠나 스페인 비고(Vigo)로 간다. 포르투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었다. 국경에 다다르면 입국 측 공무원이 버스에 올라 여권, 아니 버스 승차권이라도 확인할 거라 기대했지만, 잠깐 멈춰 섰을 때 버스 기사만 바뀌었을 뿐 승객에 대해서는 아무 조사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유럽연합이라지만 국가들 간에 서로를 이토록 믿고 있다니. 휴전선이라는 국경 아닌 국경 때문에 섬나라 아닌 섬나라 국민이 되어 살아온지라, 내 집 네 집 가리지 않는 관대한 대접이 놀랍고 낯설었다.
비고에 도착한 건 오후 3시경이었다. 알베르게를 찾아 체크인을 하고, 비고 성당에서 송년 밤 미사를 참례한 뒤, 새해 첫날 아침 순례의 발걸음을 장대하게 내딛는 게 원래 우리 계획이었다. 그런데 알베르게를 찾아가는 것부터 만만치가 않았다. 분명히 구글 지도를 따라가는데도 왠지 길을 잃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런 곳에 순례자 숙소가 있다고?'
바닥에 그려진 노란 화살표를 보지 못했다면 길을 잘못 들었다고 생각할 만큼 골목마다 사람들로 붐볐다. 집집마다 성탄 장식들은 아직 그대로 붙어 있고, 초록 빨강 모자나 가발을 쓴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아직 한낮이었지만 거리는 송년 축제를 즐기는 인파로 흥이 이미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웃고, 떠들고, 춤추고, 마시고. 커다란 배낭을 멘 채 그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는 네 명의 동양인은 잘못 놓인 오브제처럼 생경해 보였다.
스페인의 첫날밤은 공립 알베르게에서 묵는다. 초인종을 누르자 삼십 대 중반 정도 되어 보이는 여직원이 반갑게 나와 맞아준다. 숙소는 비수기답게 한산하고 조용했다. 알고 보니 그날 체크인을 한 사람은 우리가 처음이었다. 직원의 안내는 길지 않았다. 3유로씩 넣고 쓸 수 있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고, 사용한 침대보와 베갯잇은 체크아웃할 때 걷어줄 것, 현관문은 오후 8시에 닫히면 다시 들어올 수 없으니 시간을 엄수해 달라는 것 정도. 아무리 없다없다 해도 물 끓이는 전기 포트나 허름한 수저 정도는 있겠지, 기대했지만 진짜 세탁기 건조기 이외엔 아. 무. 것. 도 없었다.
송년 미사가 있는 성당에 다녀오려면 8시까지 돌아올 수 없어서 포기. 축제라고 브레이크 타임 없이 문을 연 피자가게에서 이른 저녁을 배불리 먹은 우리는 시내 구경을 하려 했으나 그것도 힘들어서 포기했다. 무거운 짐을 지고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프기도 했지만, '열정의 나라'답게 뜨거운 축제 분위기에 거의 혼비백산한 우리는 빨리 조용한 숙소에 들어가 쉬고 싶었다. 그야말로 스페인 사람들에게 '기가 빨렸다!'
숙소로 돌아와 얼마 안 되었을 때, 젊은 청년이 우리 방에 배정받아 들어왔다. 콜롬비아에서 온 그는 자전거로 포르투갈길 순례를 하는 중이란다. 자기 침대에서 능숙하게 짐을 정리하는 모습이 순례길을 여러 차례 다녀본 것 같았다. 곧이어 그는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왔다. 자기가 지금 밖에 나가서 도시 구경을 하고 싶은데, 8시에는 문을 닫으니 그 후에 연락하면 문을 열어줄 수 있겠느냐는 거다. 피곤했던 나는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밤잠이 없는 아들이 흔쾌히 수락한다. 자연스럽게 인스타 아이디를 교환하는 두 청년. 요즘 젊은이들은 이런 소통에 참 영민하다.
고맙다는 인사를 연거푸 날리며 놀러 나간 콜롬비아 청년은 몇 시쯤에나 돌아오려나. 서로에 대해 묻지 않고 인사만 나눠도 연대감이 절로 생긴다는 산티아고 순례길이라지만, 우린 아직 순례의 '시옷자'도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인데 우리를 믿는 건가.
'우리가 잠들어 버리면 오늘 밤 숙소에 못 들어올 텐데. 그런 일은 없을 거라 믿는 걸까?'
우리를 믿는 사람은 청년뿐만이 아니었다.
잠시 후, 데스크를 지키던 여직원이 올라와 아들에게 뭐라 뭐라 속닥인다. 환한 웃음과 '부엔 까미노' 인사를 남기고 가는 폼이 심상찮다.
"직원이 뭐라 그랬어?"
"자기는 지금 퇴근한다고요."
"엥? 일찍 간다고?"
"더 올 사람 없을 거라고, 8시에 문 잘 닫고 자라고 하더라고요."
세상에 이런 일이. 투숙객을 지켜주지는 못할 망정 투숙객에게 다 맡기고 가버리다니.
"헐! 우리가 주인장이 됐는걸? 설마 뒤늦게 들어오려는 사람은 없겠지?"
"기왕 이렇게 된 김에 우리도 춤추러 나갈까?"
우리 정서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게 산티아고 순례길만의 독특한 문화인가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더욱이 마을이 온통 축제 분위기인데 젊은 직원의 엉덩이도 들썩이지 않겠느냐고.
인천공항을 떠나면서부터 튀르키예, 포르투갈을 거쳐 스페인에 올 때까지 우리는 줄곧 사람들을 의심해 왔다. 소매치기를 당할까 봐 휴대폰을 목에 걸었고, 조금이라도 수상한 눈치가 보이면 멀찍이 떨어졌으며, 이유 없는 친절이라 여겨지면 단호하게 "노!"라고 대답하고 자리를 피했더랬다.
'어차피 갈 곳 없는 동양인 순례객들이 뭘 어쩌겠어? 훔쳐갈 수저 한 벌 없는 알베르게에서 무슨 나쁜 짓을 할 수 있겠어?' 그들은 이런 생각으로 우리를 믿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달리 생각하고 싶었다.
그들이 먼저, 오래 경험한 '순례'라는 단어 안에 '믿음'이라는 가치가 디폴트값으로 장착되어 있음을 그들이 알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했을 거라고. 하느님을 향한 거든 사람을 향한 거든, 그 믿음이 없다면 애당초 이 길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을 거라고. 그러니 이 길 끝자락에 서게 되면 '지금 믿음이 없는 나'도 '믿음이 조금은 더 생긴 나'를 만나게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