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돈델라에서 폰테페드라까지 / 물건을 성물로 만드는 책임은
여행 예산을 세울 때 가장 예측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선물이나 기념품 구입 비용이다. 남편은 기념품 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아들과 딸, 그리고 나는 여행지를 기억할 수 있는 소소한 기념품들을 종종 구입한다. 여행 다녀온 지 얼마 지나지 않으면 그것 역시 '멀리서 가져온 쓰레기'였다는 걸 알게 될 때도 있지만, 또 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으니 집에 가서 후회하게 될까 봐 기념품 숍을 지나치지 못하는 거다. 더욱이 여행비에 보태라고 적잖은 금액이 든 봉투를 받았을 땐, 출발부터 고민이다.
'아, 올 때 선물을 뭘 사다 줘야 하지?'
이번 순례길을 떠날 때도, 친정 오빠와 언니는 막냇동생의 장도를 응원하며 꽤나 무거운 돈봉투를 건넸더랬다. 하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마음의 부담이 좀 덜했다. 순례가 끝날 때까지 짐이 될 만한 기념품은 아무것도 사지 않을 거라고 스스로도 다짐했거니와, 봉투를 준 이들에게도 순례지 묵주만 몇 개 사다 주겠다고 진작에 말해 놓았기 때문이다.
산티아고 순례를 했던 사람들의 안내서에는 중간에 기념품을 사서 짐을 늘리지 말라는 조언도 있었다.
"순례 중간에 아무것도 살 필요가 없대. 그 마을에만 있을 것 같고 특이해 보이지만, 산티아고에 가면 다~~~ 있대."
그들의 안내는 매우 유익했다. 다른 때 같았으면 그 나라만의 독특한 기념품들은 야무지게 챙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 조언을 귀담아 들었기에,
스페인에 가기 전 들렀던 튀르키예에서도 엽서 몇 장과 냉장고 마그네틱 하나만 샀고, 포르투갈로 넘어와서는 그나마도 사지 않았더랬다.
순례 둘째 날은 레돈델라에서 폰테페드라까지 걸었다. 전날과 비슷하게 27km 정도. 폰테페드라는 꽤 큰 도시였다. 새해 첫날이 지나서인지 문을 연 가게도 많았고, 화려한 조명이 반짝이는 액세서리 숍, 기념품 숍도 많았다. 마침 가까운 곳에 있는 성당에 순례자를 위한 미사도 있다고 했다. 우리는 미사가 끝나고 나서 딸내미에게 성년 축하선물을 사주겠다고 했다. 그동안 짐을 늘리면 안 된다는 말에 아무것도 사달라고 하지 않았던 딸내미 눈이 반짝였다.
"정말? 사도 돼?"
"그래. 내일이 생일이고 성년 되는 건데, 목걸이 같은 거 하나 사줄게. 이따 나와서 고르자."
벙싯벙싯 표정이 밝아지는 딸내미 모습에 내 마음도 덩달아 좋아졌다.
순례자를 위한 미사라고 씌어 있기에 영어로 할지 모른다는 바람과는 달리, 미사는 스페인어로만 봉헌되었다. 은퇴한 지 오래되었을 법한 할아버지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하셨는데,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미사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어도 전례력을 알고 미사 통상문이 있으니 앉았다 일어났다 하는 것도 자연스럽게 따라 한다. '가톨릭'이 '보편교회'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신부님은 평상복에 제의와 영대만 간단히 걸치고 미사를 집전하셨다. 미사를 해설하는 신자나 제대를 준비하는 복사도 일터에서 막 돌아온 차림 그대로, 신고 온 운동화 그대로 저벅저벅 제대로 올라갔다. 장백의 갖춰 입고 몸짓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는 우리나라 전례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나쁘게 말하면 정성이 없어 보이는 거고, 좋게 말하면 전례가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드디어 미사가 끝났다. 순례 중에 미사를 하고 영성체까지 하고 나니 말은 못 알아들었어도 성령의 은총에 함빡 젖어든다. 기쁜 마음으로 일어나 나오려는데, 성당 관리인 같은 분이 웃으며 우리에게 와서는 순례자 여권에 세요를 찍겠느냐고 묻는다. 오, 이렇게 친절하다니! 그는 잠깐 기다리라고 하더니, 제의를 벗고 나오는 신부님을 배웅한다. 그러고 나서 뒤적뒤적, 열쇠를 찾더니 성당 문 옆에 있는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어머, 우리 때문에 문 여는 건가 봐. 고맙기도 해라."
다른 데는 성당 문 앞에 도장과 스탬프가 놓여 있어서 순례객들이 알아서 찍고 갈 수 있었다. 그런데 거기는 사무실 안에 들여놓았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잠시 후, 덜그럭 덜그럭.
'엥? 이게 뭐지?'
문을 열고 나오는 그는 명동 거리에서 양말을 놓고 파는 것과 비슷한 좌판을 삐그덕 삐그덕 밀고 나오고 있었다. 그 좌판 위에는 묵주, 마그네틱, 키링 등 1유로짜리부터 꽤 비싼 금액이 붙은 것까지 다양한 성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각 성물마다 가격이 붙어 있었고, 도네이션 상자도 따로 놓여 있었다.
'아, 이걸 파시려고~.'
우리는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삐져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써야 했다. 주섬주섬, 아주 천천히 도장과 스탬프를 꺼내는 그분을 보면서 '여기에서는 뭐 하나라도 사야겠지?'라는 뜻의 눈짓을 주고받았다. 3유로짜리 마그네틱 두 개를 고르고 10유로를 후원금 통에 넣었다. 그는 세요를 찍은 크레덴시알을 돌려주며 친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라시아스, 부엔까미노. 감사와 축복의 인사와 함께.
엊그제 부활주일에 한라산 등산을 갔다. 백록담까지 다녀오면서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내려오는 길엔 거의 정신줄을 놓았더랬다. 그러는 중에, 주머니에 넣어 뒀던 묵주를 어디에선가 떨어뜨렸나 보다. 숙소에 와서야 잃어버린 걸 알게 된 나는 너무도 속이 상했다. 그 묵주가 물건으로서는 내게 '보물 1호'였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묵주와도 다른 나무 질감, 적당히 늘어난 덕에 묵주알을 돌리기도 좋았더랬다. 등산길에서도, 비행기에서도, 잠자리에서도 그 묵주만 손에 들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곤 했다. '장비빨'을 갖추면 등산이 덜 힘들듯, 긴 세월 동안 기도하며 어루만졌던 그 묵주는 '기도빨'을 올려줄 수 있었던 최고의 아이템이었는데. 그러나 그걸 찾겠다고 백록담을 다시 오를 수는 없는 일.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사 온 묵주와 기념품은 다 나눠주고, 딱 하나 남겨 놓은 5단 묵주를 꺼냈다. 성녀 소화 데레사를 기념하는 프랑스 리지외에서 샀던 작은 패도 꺼내서 달았다. 아직 사제의 축복을 받지 않았으니, 이 묵주는 아직 성물이 아니다. 우리나라 관광지에 가면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염주나 태극 문양 복주머니처럼 산티아고 순례길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저렴한 기념품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내가 할 몫이다. 이 물건이 그냥 이국의 기념품으로 존재할지, 아니면 기도빨을 끌어올려줄 특별한 성물이 될지는. 얼마큼의 시간과 어떤 마음을 담는지에 따라 이 물건은 존재의 의미가 달라질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