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26일 토요일 / 꽃도 사실 한 송이는 한 번만 핀다
한 번에 한 가지만, 그 일 하나에만 몰두하기.
옳은 말이다. 그런데 옳은 줄은 알겠으나 쉽게 실천할 수는 없는 입장인 것이,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다 보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살았던 그곳에서는 이 둘을 모두 익히도록 했다. 한 번에 한 가지씩 하는 것과,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는 것.
그곳에서는 아침해가 밝기 전, 기상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이 몸이 움직여야 했다. 빠르게 창문을 열어 침상에 밴 지난밤의 체취를 뺀다. 세수와 양치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기도하기 위해 정해진 내 자리에 앉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은 십분 남짓. 그러고나서 이어지는 묵상, 기도, 미사까지는 올곧게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시간이다. 한 가지에만 몰두하려면 '지금 여기'에 존재하는 데 익숙해져야 했는데, 사실 그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했다. '몽키 마인드'라고 하던가, 원숭이가 이 나무 저 나무 뛰어다니듯 온갖 잡생각이 널 뛰듯 해서, 그 원숭이를 그 자리에 잡아 앉히기가 얼마나 힘들던지. 원숭이가 잠잠해졌다 싶으면 어느새 졸고 있기 일쑤였고.
기도 시간 외에도 한 번에 한 가지씩 해야 하는 것은 많았다.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청소를 할 때도 그 일에 온전히 마음을 싣지 않으면 책장은 넘어가되 이해가 되지 않고 기억도 나지 않았다. 수련장님은 그 시절, 자매들이 청소하는 뒷모습을 보면 그 자매의 '성소'를 알 수 있다고도 하셨다. 몸만 와 있는지, 마음까지 있는지 아실 수 있다는 말씀이셨겠지.
그렇게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도록 연습시키는 곳이기도 했지만, 한 번에 두 가지를 함께 하기도 했다. 밥을 먹으면서 읽어주는 책을 듣는다든가, 빨래를 할 때는 입으로 묵주기도를 함께 바친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아마도 손만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단순노동을 할 때는 더 잡생각에 빠지기 마련이어서 그런 연습을 시킨 것이리라.
남편이 요리를 하면 요리만 한다. 남편은 휴대폰으로 뭔가를 보고 있으면, 그것만 보고 있다. 남편이 일을 할 때는 옆에서 사람이 들락날락해도 모르고, 무슨 말을 건네도 듣지 못한다. 남편은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는 데 도가 튼 사람이다.
반면 나는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면 시간이 아깝게 느껴진다. 식사 준비나 다림질, 뜨개질이나 바느질 같은 것도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이지만, 왠지 그것 하나만 하고 있으면 뭔가 낭비하는 것 같다. 식사 준비를 할 때나 다림질을 할 때는 귀로만 들어도 스토리를 대충 이해할 수 있는 드라마를 틀어놓거나, 오디오북을 듣는다. 단순한 패턴이어서 굳이 눈을 붙잡아 놓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간단한 뜨개질이나 바느질을 할 때는 자막이 있는 영화도 볼 수 있다. 그것 외에도 사이사이 허투루 사라지는 시간이 없도록 일의 전후를 맞춘다. 예를 들면 저녁을 준비하기 전 세탁기 안에 빨래를 넣고 돌려서 식사가 끝난 뒤 바로 건조기로 이동시킨다거나, 식재료를 다듬기 전에 작은 화분들을 미리 싱크대로 옮겨놓아 식재료 씻은 물을 준 뒤, 조리하는 동안 물 빠지기를 기다렸다가 옮긴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서로 전혀 관련이 없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도 별 무리가 없다. 프라이팬이 달궈지는 동안 드라마가 새로 올라왔는지 검색하고, 국이 끓기를 기다리면서 고양이 밥을 챙겨주고, 달걀의 한쪽 면이 익는 동안 아이가 가져온 가정통신문을 확인하고, 단소 연습을 하면서 건조기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는 따위. 아, 그러면서 캔맥주를 따서 홀짝거리기도 하니, 두 가지 일에 한 가지가 더 추가된다.
이것은 남편과 나의 차이일 수도 있고, 멀티가 안 되는 남자와 멀티가 되는 여자의 차이일 수도 있다. 어느 것이 좋다, 어느 것이 나쁘다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 같다. 세월아네월아 하면서 저녁 준비를 하는 남편을 보면 속이 터져서 차라리 내가 하고 말지, 할 때도 있지만, 한 가지에 집중하지 못하는 바람에 뜨개질의 코를 놓칠 때도 있고 다림질로 옷을 눌릴 때도 있기에 말이다.
그러나 분명한 건, 여러 일을 멀티로 하면서 빠르게 채널을 돌리기에는 생각이나 행동이 점점 굼떠지는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내 안에서 뛰어다녔던 원숭이들은 더 조급한 성격을 가졌던 것 같아, 그 녀석들을 가라앉히기가 쉽지 않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래서 [마음챙김]이니 [몰입]이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기] 같은 키워드를 더 자주 떠올리려 한다. 예수님도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라고 하셨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