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 예찬론

2022년 6월 13일 / 버스에서 내다보는 세상은 또 다르게 보이겠지

by 글방구리

지난 토요일, 초등학교 4학년인 꾸러기 기자단 아이들을 데리고 긴나들이를 다녀왔다. 어디를 다녀왔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이번 긴나들이의 방점은 시내버스에 찍혀 있었다. 하루 나들이 중 세 번의 탑승, 통틀어 두어 시간 가량 시내버스를 타고 대전 시내를 구경했다. 참 오랜만이었다.


처음 꾸러기 기자단을 발족해서 마을 신문을 만들어 낸 지 벌써 6년이 흘렀다. 그때도 '미션 나들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서넛을 짝지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시내 곳곳을 다녀오게 했더랬다. 당시는 방과후에서 아이들과 오후 시간을 쭉 같이 지내고 있었기에, 아이들에게 휴대폰이란 그다지 필요한 물건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해결해야 할 미션과 용돈 얼마를 받으면 신나게 길을 나섰지만, 나는 아이들이 무사히 복귀할 때까지 마음을 졸이며 기다렸다. 버스를 거꾸로 타서 길을 잃은 아이들이 근처 빵집에 들어가 전화를 해서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 데리러 가기도 했다. 미션에 실패하여 얼굴이 굳은 채 나를 기다리던 아이들은 차에 타서는 이렇게 말했더랬다.

"혼자 있었으면 정말 겁나고 무서웠을 것 같아요. **이가 있어서 다행이었어요."

날마다 아웅다웅 다투던 친구였지만 예상치 못한 문제에 닥쳤을 때 그 친구가 얼마나 힘이 되고 소중한 존재인지 알았다면, 그것이 그 날 미션보다 더 큰 배움이라는 말로 그 날을 마무리했던 기억도 난다.


중학교를 '공동학군'에 배정받은 나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날마다 시내버스 통학을 했다. 미아리에서 종로5가를 오가던 버스 노선은 두 개였는데, 둘 다 의정부부터 운행하던 거라 늘 매달리듯 버스를 타야 했다. 사실 그때 우리 반 친구 중의 한 명이 버스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다. 키도 작고 빼빼 말랐던 나도 버스 안내양이 강한 팔뚝심으로 버텨주지 않았더라면 결코 안전하지 못했을 거다.

3년을 그렇게 타고 다녔는데,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그 학교는 1년만에 강남에 땅을 사서 이사를 갔다. 아이들의 전학을 극구 말리던 학교측이 처음에는 '전세버스'라는 셔틀을 운행해 주었는데, 셔틀비가 만만치 않았는지 나는 그 버스를 몇 달밖에 타지 않았다. 그러고는 다시 시내버스 통학. 남산을 돌아 학교까지 갔던, 단 하나의 노선이었기에 폭설이 오면 교사도 학생들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시내 한복판을 경유하기에 시위가 예정된 날은 버스가 끊길까봐 학교에서 단축수업을 해주기도 했다. 버스 안에서 날마다 마주치던 근처 남학교 학생들과 있었던 수많은 에피소드들도 지금 돌아보니 참 즐거운 추억거리다. (그때 엄마가 내 등하교를 위해 학교 근처에 집이라도 샀더라면,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텐데!)


대중교통을 이용해 보는 것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배움이 되는지는 큰 아이를 키우면서 확신했다. 금이야 옥이야 했던 아들내미였는데도 어디서 그런 용기가 생겼는지,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아이 혼자 버스를 태워서 산청까지 보냈더랬다. 중간에 시외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했던 걸로 기억한다. 휴대폰도 없고, 버스표와 가는 길이 적힌 종이만 들려 보내놓고, 잘 도착했다는 교사의 답이 올 때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지.

한 번 그렇게 성공을 하고 나니, 나도 아이도 자신감이 생겨서 그후 방학을 할 때마다 한 번씩 다녀왔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는 할아버지가 사시는 서울에도 혼자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지하철 타고 그렇게 찾아다닐 수 있었다.

남들은 오버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아이가 이후 스스로 학원을 결정하고, 입시를 준비하고, 실패하고, 또 도전했던 과정, 나아가 군입대까지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데 '대중교통'의 힘이 컸다고 확신한다. 길을 모르면 지도를 찾았고, 사람들에게 물었고, 알음알음 더듬더듬 목표를 향해 찾아가는 과정을 경험했을 것이므로.


버스를 타면 노선도를 먼저 찾아보는 '라떼'와는 달리, 아이들은 서로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깔깔거린다. 몇 정류장 가지 않았는데 "언제 다 와요?" 하면서 지루해하기도 한다. 마치 자차를 이용하는 것처럼 간혹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놀이를 하기도 하고, 뒤돌아 앉기도 한다. 일일이 지적하고 간섭하는 것이 별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나도 다른 사람에게 크게 방해가 되지 않는 한 지켜보기만 한다.

예전에는 '생활'이며 '삶'이었던 대중교통이 이제는 '체험'으로만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다. 나도 역시 작은 아이를 차로 등하교시켜 주고 있으니, 큰 아이와는 다른 방식의 양육을 하는 셈이다. 하지만 대중교통은 포기할 수 없는 배움의 장이 틀림없다. 자주, 많이 경험하면 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나도 지금 기차를 타러 간다. 가장 긴 시간 동안 머물 수 있는 무궁화호를 타러.

아이들에게는 시내버스도 여행인 듯하다. 하긴, 친구들이랑 가는데 어딘들, 뭘 타고 간들 안 좋겠냐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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