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재에게 배운 기도

2022년 9월 1일 목요일 /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에

by 글방구리

"저 오늘 이것 때문에 교실에서도 쫓겨났어요."

수업을 하다가 잠시 쉬는 중. 슬금슬금 의자 위로 올라가더니, 다음엔 책상까지 올라가 길게 누워버린 민재에게 내려오라고 했더니 민재가 한 말이다.

"쫓겨났다고?"

"다리는 아픈데 의자는 없고 해서 책상 위에 올라갔는데, 선생님이 저더러 돌봄 교실로 먼저 가라고 했어요. 전 더 좋았어요. 거기에서 레고 갖고 신나게 놀았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아이를 쫓아냈다고? 얘만?'

나 역시 책상 위로 올라가 누워버린 아이에게 막 잔소리를 끝낸 터였지만, 그래도 쫓아낸 건 너무 한 거 아냐, 하는 생각이 스쳐갔다. 그러다 고개를 저었다.

'아냐, 쫓겨났다는 말을 썼지만 쫓겨난 게 아닐 수 있어... 민재잖아?!'

초등학교 2학년 민재와는 일곱 살 때 일 년 동안 함께 지냈다. 바가지 머리에 동그란 얼굴, 웃으면 반달이 되는 눈, 오동통한 입술, 양말은 물론 신발까지 짝짝이로 신고 와도 늘 즐겁던 아이. 한 달이 지나 사진을 정리하다 보면 유난히 민재 사진을 찾기 어려웠다. 교사들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노는 모습을 사진에 주로 담았는데, 민재는 늘 뛰어다니면서 놀았기 때문에 카메라가 민재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서였다. 천방지축, 학교에 가서 앉아 있기나 잘 할까 염려되었던 아이.

그러던 녀석이 커서 나랑 글쓰기를 하겠다고 여기에 와 있는 거다. 쉬는 시간에 책상에 올라가는 것은 너무도 그 아이다운 행동이고, 자기다운 태도를 드러내보인다는 건 그만큼 이 장소를 편하게 여긴 까닭일 테다. '쫓겨났다'는 말도 너무 예민하게 느낄 필요는 없다. 친구들과 갈등이 있을 때면 어른이 놀랄 만한 단어를 유독 잘 골라쓰던 민재였잖은가. 그러니 책상에 올라간 민재를 놀 수 있는 돌봄교실로 먼저 보낸 선생님은 어쩌면 민재를 지루함으로부터 조금 일찍 해방시켜 주신 것일 수도 있다. 잘은 모르지만.


주제를 주고 글쓰기를 시작하면 민재의 연필은 종이 위에서 춤을 춘다. 한 글자를 써도 꾹꾹 눌러쓰던 절친 하준이와는 완전히 반대다. 하준이가 한 줄 쓸 때 민재는 서너 줄을 쓰고, 하준이가 반 장을 채울 때 민재는 그 다음 장으로 넘어간다. 거침이 없다. 그렇게 써서 내게 내고 나면 나는 민재와 함께 다시 읽어보는 시간을 갖는다. 처음에는 그런 과정 없이 그대로 집에 가져 가서 읽었는데, 읽다가 반쯤은 '해독 불가!' 판정을 내렸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글씨가 못 따라가는 거다. 그리고 난 민재의 생각을 못 따라간다. 상상을 초월하는 민재의 글을 읽으며 웃음을 참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지난번에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나 물건에 대해 설명해 보는 글을 쓰라고 했더니 민재는 순식간에 서른 개 가까운 낱말의 뜻을 풀이해 이런 식으로 써놓았더랬다.



*엄마: 나를 키워주는 사람

*아빠: 나를 키워주는 사람

*건담: 플라스틱으로 로봇을 만든다.

*장난감: 그걸 가지고 논다.

*공: 공은 여러 가지다. 농구공, 야구공, 배구공, 축구공

*삼촌: 게임 만드는 사람

*동생: 나보다 네 살 어린 사람

*강아지: 키우기는 힘들지만 귀엽다. 그러고 좋다.

*책: 궁금할 때 뭔가를 알려준다. 비밀이 궁금할 때. 그러고 재미로 읽을 때도 있다. 하지만 난 만화책이 좋다. 하지만 엄마는 만화책을 한 달에 한 번밖에 못 보게 한다. 그래서 불만이 있다.

[우리가 만드는 국어사전] 중에서


저학년일수록 일기처럼 자기가 겪은 일을 쓰는 데 익숙하다. 직접 겪은 일을 쓰라고 하면 술술 써내려가던 아이도 조금 다른 형태의 글을 요구하면 난색을 표한다. 말도 잘 하고, 일기도 잘 쓰던 다른 아이도 '독서감상문'은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며 울상을 지었던 적도 있다.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 방학 숙제 중 가장 하기 싫은 것 중의 하나도 바로 독후감 쓰기였다. 책도 읽기 싫은데 책 읽고 글까지 쓰라니. 좋아서 해도 할까말까 한데, 숙제라니. 게다가 꿀 같은 방학에! 하긴, 방학식날 가장 듣기 싫었던 건 "방학은 공부를 쉬라는 게 아니라, 집에서 공부하는 기간"이라는 선생님 말씀이었다. 아이들이 맘 놓고 노는 꼴을 보지 못하는 건 오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교사가 되고 보니, 아이들을 그냥 놀리는 건 선생으로 밥값을 못 하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을 주더라. '사교육 선생'이 되고 나니 더하다. 주어진 시간 안에 어떤 성과를 가시적으로 보여줘야 밥줄을 이어갈 수 있을 것 같은 압박감이 없지않다. 그런 게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해주어야 할 것과 아이들이 즐거워할 것들을 잘 결합해서 실행하는 게 유능한 교사이리라. 아이들은 무조건 놀고만 싶어하는데, 이런 아이들의 욕구를 1백퍼 존중해 줄 수 있는 간 큰 교사는 별로 없을 테니 나 또한 그러그러하게 평범한 교사로 살기로.

어쨌든 여름방학 동안에는 너무 더워 밖에 나가 놀기도 어려워, 영상을 보고 감상문을 써보기로 했다. 그 중 하나의 주제는 우리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인 '기후 위기'. 천주교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가 제작한 짧은 동영상들을 같이 보고 후기를 써보게 했다. 페트병 사용 줄이기, 고기 덜 먹기, 냉장고 문 덜 여닫기, 어린이 화장 안 하기, 종이와 프린트 아껴쓰기 등 아이들도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제작되어 있어서 아이들의 반응이 자못 궁금했는데, 역시나 민재의 글이 대박이다!


나는 페트병에 든 것을 잘 안 먹을 거예요. 아예 안 먹겠다는 게 아니에요. 종이를 줄일 거예요. 저는 자동차를 많이 타기를 줄일 거예요. 아예 안 탄다는 건 아니에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은 갈 거예요. 스마트폰은 전기를 써서 스마트폰을 줄일 거예요. 아예 안 쓴다는 건 아니에요. 알았죠? 하지만 많이 줄일 거예요. 저는 쓰레기를 줄일 거예요. 지구를 위해서. 하지만 아예 안 쓴다는 건 아니에요. 저는 전기를 아껴 쓸 거예요. 하지만 아예 안 쓴다는 건 아니에요. 알았죠? 하지만 많이 줄일 거예요. 전 물을 아낄 거예요. 절약할 거예요. 하지만 아예 안 쓴다는 건 아니에요. 저는 식물을 심을 거예요. 나무 말고요. 집에서 키우는 식물이요. 밖에다 심을 거예요. 하지만 맨날 그러겠다는 건 아니에요. 저는 사고 쉽게 버리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모든 물건을 그럴 수는 없어요. 저는 재활용을 할 거예요. 하지만 맨날 한다는 건 아니에요. 저는 밖에 쓰레기를 버리지 않을 거예요. 저는 절대로 안 그럴 거예요. 전 비닐을 줄일 거예요. 비닐이 없으면 어쩔 수 없죠. 그렇죠.


9월의 첫날인 오늘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제정한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이다. 예전에는 '자연 보호'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요즘 그 말은 잘 사용되지 않는다. 사람이 자연을 보호한답시고 하는 것들이 자연을 오히려 훼손했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한 거다. 사람이 자연에 아무 짓도 안 하는 것이 자연을 보호하는 길이니까. 교황님도 오늘 피조물 보호를 하는 날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피조물이 보호되도록 기도하라고 하셨다. 나도 민재처럼 기도해야겠다.

'하느님, 저도 오늘 페트병에 든 것을 잘 안 먹는 걸로 피조물 보호를 위해 기도할게요. 하지만 아예 안 먹겠다는 게 아니에요. 저는 사고 쉽게 버리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모든 물건을 그럴 수는 없어요. 알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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