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숙이 목소리는 이미 눈물에 푹 젖어 있었다. 근 오십년 친구라고 하지만,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하고 사는 사이. 하지만 갑자기 보고 싶어지면 100킬로 정도는 한달음에 달려와 진짜 얼굴만 보고 가기도 하는 사이. 얘는 잘 살고 있을 거야, 나도 얘한테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야지, 하는 다짐을 하게 하는 사이. 우리는 친구다.
숙이가 남편과 어려움을 겪어 이혼 직전까지 갔을 때도 숙이는 이렇게 울면서 전화하지 않았다. 그 어려움을 다 넘기고 난 뒤에, 사실 그렇게 어려웠던 적이 있었노라고 담담히 이야기했다. 그래서 어제 갑자기 걸려온 전화에 뭔가 큰 일이 터졌구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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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무 억울해. 내가 왜 환갑이 다 된 아직까지 시누이한테 욕먹으면서 시집살이를 해야 하니?"
이렇게 시작된 숙이의 하소연은 삼십분 가량 계속됐다. 그동안 숙이가 시집살이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던 나는 '아, 얘가 시집살이를 했구나. 시누이가 못 됐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시누이에 대한 속상함은 시아주버니로 옮겨갔고, 동서로 옮겨갔다. 시댁식구들끼리 똘똘 뭉쳐 자기네 내외를 왕따시키고 모멸감을 준다는 거였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듣다 보니, 결국은 아직 돌아가시지 않은 시아버지의 유산 상속과 그 지분(?)을 미리 확보하려는 시댁 식구들의 간교한 계략이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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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얘네도 돈 때문인 거네.'
돈을 왜 우상이라고 하는지 알 것도 같다. 뉴스를 장식하는 대부분의 사건 사고들 밑바닥에는 돈이 있다. 권력을 차지하려는 사람들의 욕망 그 아래에도 돈이 있다. 사회적 명예를 얻고 싶어하는 욕구도 대체로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다는 것과 맞물린다.
"나 어디에서 읽었는데, 친구는 어려울 때 속을 털어놓는 것만 아니고, 그 친구한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봐야 한다더라. 야, 나 길을 잃은 것 같은데 어쩌면 좋니?"
숙이가 그렇게 말했을 때, 아무리 친구라도 내가 남의 인생에 어떻게 개입하겠니, 선택은 네 몫이지,라는 말이 혀끝까지 나왔지만, 그 말은 꾹 삼켰다.
"내가 해줄 게 없네. 너 욕하고 싶니? 그럼 내가 대신 해줄게."
그러고는 마치 조폭영화 대사 읊듯이 "*&^%$#&(*&%#$ ~~~ 같은 집구석아!"하고 욕을 한자락 해주었더니, 그제야 전화기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말이야. 네 말 들어보니까 네가 뭘해도 너네 시댁식구들이 바뀔 것 같지는 않아. 난, 네 친구니까, 너만 생각하고 싶은데. 네가 돈 욕심을 내는 게 아니라면, 그냥 개나 줘버려, 하는 마음으로 생각해보길 바라. 시댁식구들의 아귀다툼 속에서 네가 평화를 잃고 사는 게 너무 아깝다. 그렇게 괴로워하면서 시간을 낭비하기에 우리 앞에 살 날이 그다지 많지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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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겠어."
이제 전화를 끊으려나 보다, 생각하는데 숙이가 한마디를 날린다.
"야, 근데, 제일 돈 욕심 많이 부리는 시누이 말이야, 걔, 성당 다닌다! 난 정말 그게 이해가 안 돼."
숙이는 나로 인해 세례를 받았고, 내가 대모를 서기도 했다. 그래선지 종교나 신앙의 문제에 관해서는 꽤 깊은 논쟁이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는데, 냉담중인 숙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순간 내 얼굴이 화끈거린다.
"야, 성당 다닌다고 사람들이 다 훌륭하냐? 그렇지 않다는 것, 너도 알잖아?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이렇게 얼버무리기는 했으나, 나는 정말 '성당 다니는 사람'다운가, 하는 화두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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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버지가 사시던 동네와 성당을 드라이브삼아 다녀왔더랬다. 노제처럼 지내게 됐네,라고 하면서 부모의 삶을 기억했던 날. 성모영보수녀회를 창설하신 선종완 신부님 기념관도 방문했었다. 여러 수도회 중에서 가난의 삶, 노동과 봉사의 삶을 영위하려고 애쓰는 수도회가 되기를 바라며, 신부님이 마지막으로 수녀들에게 남기셨다는 말씀도 읽었다.
그리고 다시금 다짐해 본다.
'돈이 없다는 건, 돈을 포기한다는 건, 돈을 섬기지 않는다는 건, 불쌍하고 동정을 받을 일이 아니야.
그건 내 마음과 내 삶에 우상을 두지 않는 일이야. 모든 문제는 돈에서 시작한다는 걸 잊지 마. 맘몬이 아니라 하느님을 섬겨야 하는 건데, 그건 먼 미래가 아니라, 지금 오늘 내 삶에서도, 내 통장에서도, 내 지갑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잊지 마. 돈을 포기할 거냐, 평화를 포기할 거냐.'
예수님처럼 가난하게 살고 싶은데, 그건 마음의 가난이고, 내 지갑에는 지폐가 소복했으면 좋겠어,라는 얼토당토한 생각은 접도록 하자.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듯, 하느님을 뵙게 된다는 마음의 가난이 따로 있는 게 아닐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