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점괘를 믿느냐?

2023년 1월 8일 일 / 아이들도 궁금해하는 새해 운세

by 글방구리

1월 1일. 새해가 된 건 맞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하기에는 2프로 부족한 날. 양력보다는 음력 1월 1일이 와야 진짜 설날이 된 것 같으니, 나 너무 옛날 사람인가? 아무튼, "진짜 설날 인사는 진짜 설날에 나누어요."라고 복 빌어주는 건 잠시 미뤄두었으니, 열흘 앞으로 다가온 설날에는 더 자신 있게 복을 빌어주어야지.

'설날에는 토정비결?'

요새도 연말연시에 무슨 '동양철학관'이니, '운명감정소'니 하는 곳에 사람들이 들락거리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어릴 적만 해도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을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무슨 점이든 길흉화복을 알 수 없는 미래를 살짝 엿봄으로써, 나쁜 것은 피해 가고 좋은 것은 놓치지 말자는 심정으로 보는 것일 테다. 그러니 낯선 날('설날'이라는 말 자체가 '설다, 낯설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니)을 맞으면서 토정비결 같은 한 해 운을 점쳐 보고 싶은 것은 지극히 인간적인 욕망이 아닐까.

사실 나도 이십 대 때부터 설날 아침이 되면 나만의 토정비결을 보곤 했다. 눈뜨자마자 성호를 긋고 성경책을 아무 데나 펴보는 것. 그때 펼쳐진 말씀 중에 마음에 와닿는 구절을 한 해 동안 길잡이로 삼았다. 물론 분노하고 벌주는 하느님, 전쟁하는 장면, 혹은 성경 말씀이라고는 하나 '야한 구절'로 읽히는 아가서 말씀이 나오면, '이건 연습이고요.' 하면서 내 마음에 드는 구절이 나올 때까지 새로 펼치기도 했다.


3학년 글쓰기 시간.

"야, 서은이랑 우진이 해봐."

"해봤어. 사사사 나와."

'이게 뭔 소리?'

슬쩍 쳐다보니 아이들이 공책에 남자아이, 여자 아이 이름을 적어놓고는 뭔가를 하고 있다. 이름 글자의 획수를 따져서 사, 랑, 해 같은 단어가 최종적으로 만들어지는지를 보는 거다.

'아니! 내가 사오십 년쯤 전에 했던 바로 그건데?! 아직도 이런 놀이를 한다는 말인가?!'

나도 어릴 적에 비슷한 놀이를 한 적이 있다. 한글 이름을 초중종성으로 나눠 획수를 적어 놓고 두 개씩 합산을 해서 최종적으로 나온 숫자로 '사랑이 이루어지는 확률'을 알아내는 거였다. 방법은 조금 다르지만 애정운을 점치는 '초딩식 놀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다.

아이들도 이름으로 애정을 점친다. 작명할 때 한자 획수를 따져 한다니, 이것도 나름 일리가 있다.


어디 애정운만 있었나. 등굣길에 '똥차'를 보면 그날 재수가 좋다든지, 실내화 주머니에서 실내화를 떨어뜨렸을 때 두 짝이 모두 똑바로 놓이면 그날은 길한 날이라든지. 그런 사소한 것들에 하루 운을 걸기도 했다. 가장 신기했던 건, 학교 문 앞에 가끔 오던 '새 점'이었다. 할머니가 새 장을 열어주면 참새(?)가 그날의 운세가 적힌 빼곡한 종이들 중에서 부리로 하나를 뽑아올렸다. 새는 종이를 뽑은 뒤에 다시 새 장으로 들어갔다. 나는 새가 도망가지 않고 다시 들어가는 것도, 종이를 딱 하나만 물어올리는 것도 참 신기했다. 새가 점지해 준 그날의 운세가 맞았는지 아닌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새해를 맞아 아이들과 첫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말씀 뽑기'처럼 '카드 뽑기'를 준비했다. 그림을 보고 뽑기도 하고, 그림이 안 보이게 엎어서 뽑기도 하고. 한 장을 뽑기도 하고, 여러 장을 뽑기도 하고. 그렇게 뽑은 그림으로 자기감정을 표현해 보기도 하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보기도 하자고 수업의 내용을 짰다. 말로만 주제를 주다가 새로운 그림 카드를 보여주니, 저학년 아이들은 그것만으로도 신기해하면서 자기들 나름의 글을 써나간다. 그런데 고학년 아이들은 달랐다.


"와아! 그거 뭐예요? 타로예요?"

"저 타로 봐주세요. 네?"

갑자기 난리가 났다.

타로점을 볼 때 사용하는 천을 깔자마자 아이들이 보인 반응이다.

"어머머, 얘들아. 이거 타로 아냐. '딕싯'이라는 보드게임에 있는 그림카드야."

"에이~ 난 또 타로인 줄. 타로 볼 줄 아세요?"

"아니, 아직은. 그런데 보려면 보지. 왜, 타로점이 궁금해?"

다시 눈이 반짝인다.

"네, 저,, 저요. 저 애정운이요."

얼마 전부터 연우와 사귀기 시작했다는 주하다.

지난번 글쓰기 때 물가 상승과 경제 위기를 걱정했던 율민이는 "저는 재물운이요!"라고 하며 손을 번쩍 든다.

다시 나의 어릴 적 기억이 소환되었다. 할 일이 없어서 할머니에게 배운 화투로 하루 운세를 떼고 있으면, 엄마가 웃으면서 혀를 쯧쯧 찼다.

"아이고, 애가 무슨 운세를 떼고 있냐." 하면서.

나도 엄마처럼 '아이고, 늬들이 무슨 타로냐, '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아이들에게는 짐짓 심각하게 대응했다.

"오호라~! 타로점이 궁금해? 나 타로 볼 수 있는데, 내가 타로 봐줘?"

"네!!!! 담주에 꼭 봐주세요!!!"

"좋아. 그럼 오늘은 그림카드 뽑아서 수업하고. 담주에 봐줄게."


일곱 살쯤 되었을 땐가. 초등학생이었던 오빠가 내 손금을 보면서 "넌 아홉 살까지밖에 못 살겠다!"라고 했는데, 내가 그 말을 얼마나 철석같이 믿었는지, 울고불고 난리가 아니었다. 아홉 살, 열아홉 살, 스물아홉 살 넘기면서 오빠의 철딱서니 없는 말을 믿은 내가 한심하기만 했다.

그 후 손금을 한 번 더 본 적이 있다. 여고시절, 우리 학교에는 '개미 아저씨'라는 전속 사진사 아저씨가 있었다. 이 아저씨가 손금을 주로 봐줬는데, 손금 핑계로 여학생들의 손을 만지작거리는 등의 행동을 하지 않아선지, 아저씨한테 손금을 보지 않은 아이들이 없었다. 역시 나는 손금은 별로 안 좋은지, 당시 꽤 공부를 잘하는 축이었는데도, 아저씨는 "넌, 공부할 팔자 아냐."라고 했다. 대학 입시를 앞둔 아이한테 할 소리냐 싶어 무척 기분 나빴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아저씨의 점괘가 나를 움직인 건지, 내가 아저씨의 점괘를 믿고 공부를 덜한 건지, 돌아보니 내 인생이 공부로 풀리지는 않았다. 만약에 개미 아저씨가 "와, 너 공부로 대성하겠다!"라고 했다면, 도서관에 머무는 시간이 조금 더 길어졌을까.


어쨌거나 약속을 했으니, 다음 주 수업 때는 타로점을 봐주어야 한다. 문제는 내가 어릴 때 배운 화투패 운세 외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것. 태어난 지 사흘만에 받은 세례성사가 일종의 '신내림'이라면 신내림인데, 그걸로 어찌 초딩 아이들의 애정운, 재물운을 끌어낼 수 있을까.

일 년 동안 보아온 아이들의 성향, 또래관계, 흥미, 장단점을 총동원하여, 아이들이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아도 해가 되지 않을 말을 골라야 하는데. 이게 글쓰기 수업 준비보다 훨씬 더 신경 쓰이는 일이로구나. 아이고야, 한치 앞 내 운세도 모르는 판에, 남의 운세에 이래라저래라 말을 덧붙인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무거운 일이냐. 그래서 교문 앞 할머니도 자기가 뽑지 않고 참새한테 이 중차대한 일을 시켰던 걸까?

내 토정비결 책이자 타로 책인 성경. 올해는 꾸준히 선행을 하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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