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이들과 글쓰기 수업을 했던 곳은 어르신들이 이용하시는 경로당 2층의 빈 방이었다. 지은 지 십오 년 이상 되었지만 단 한 번도 도배를 새로 했을 것 같지는 않은 그 방에는 커다란 꽃무늬 실크벽지가 발라져 있다. 꽃무늬 벽지가 아이들의 마음에 들 거라는 생각도 안했지만, 그게 아이들 눈에 가장 거슬릴 것이리라고도 상상하지 못했다.
코로나 확산세가 커지면 나붙는 '출입금지' 안내문, 외부인이 드나드는 것을 철저히 경계하며 수시로 바뀌던 비번, 어르신들이 모여 있으면 피할 수 없는 쾨쾨한 냄새, 불콰하게 취하신 어르신들이 목소리 높여 싸우는 모습 등, 나는 그보다 훨씬 더 마음 상하는 일이 많았기에 그깟 벽지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는데.
올해도 아이들과 글쓰기를 계속한다면 공간만큼은 바꿔주고 싶었다. 적어도 꽃무늬 벽지는 없는 곳으로. 가까운 곳에 있던 딱 좋은 공간을 임대할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죽이 맞아 함께 일을 도모하던 분들이 돌연 마음을 바꾸었다. 오랫동안 신뢰해 온 관계여서 한동안 멘붕이 왔다. 일이야 백 번 틀어질 수 있다고 해도, 사람 관계까지 이렇게 무너지나 싶어 상처가 깊었다. 오래 앓았다. 그러나 일이 너무 술술 풀리면 어디 그게 사람의 일이던가. 넘어야 할 산이 있고, 건너야 할 강이 있을 때 찾아가는 재미도 있는 거라고, 마음을 다스렸다.
마을 공동체를 꿈꿨을 때는-일이 엎어지기 전에는- '풀방구리'라고 이름까지 미리 정했다.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한다.'는 말에서 가져왔다. 어딘가에 뻔질나게 드나드는 모습을 빗댄 말이다. 뭔가 먹겠다고 쪼르르 오가는 쥐는 그리 징그러운 이미지가 아니었다. 게다가 '방구리'라는 말맛은 얼마나 좋은지. 방구리방구리 하면서 다닐 아이들을 상상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더랬다. 다 내려놓자, 했으나 쉽게 포기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글'만 남기기로 했다. 마을 안에서 사람과 사람을 잇는, '풀'과 같은 역할은 내려놓고. 풀 자리에 글을 붙였더니, '글방구리'라는 멋진 이름이 탄생했다. '하느님은 하나의 문을 닫으면 다른 하나의 문을 열어주신다'는,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모르는 말씀을 깊게 새겼더니, 그대로 되더라!
입춘을 맞아 입춘방도 써붙였다. 복아, 방구리에 넘치도록 들어오려무나!
내가 하려는 글쓰기 수업은 지식을 전수하는 것도 아니고, 현란한 스킬을 알려주는 것도 아니다. 국어시험 점수를 잘 받게 하고 성적을 올려주는 것과는 관계가 없다. 굳이 정의하자면, 말이 글이고, 글이 삶이라는, 그래서 바른말을 하고, 정직한 글을 씀으로써 아름답고 기품 있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로서 글쓰기를 하려는 것이다. 적어도 나는 내 글을 쓸 때만큼은 나 자신의 내면과 가장 가까운 대화를 하게 되니까 말이다. 아이들이라고 다를까.
'혼자 쓰면 되지, 굳이 동네 아이들과 하려는 이유는 뭐지?'
스스로에게 수없이 던졌던 질문이다. 그러면서 내 인생을 돌이켜보게 되었는데, 풋내기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주변에는 아이들이 있었다. 아니 내가 아이들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주일학교 교사를 하고, 빈민지역 놀이방 아가들을 만나고, 문제 청소년 상담을 하고, 아이들이 읽을 책을 만들고, 그러다 내 아이가 생기면서부터는 '사회적 부모'가 되어 보겠다는 꿈을 꾸었다. 그 세월이 어느덧 40년이다.
그럼 글쓰기는 언제부터 나와 함께 있었나. 중학교 2학년 때 국어선생님이 나를 콕 집어 부르면서 신문반을 하라고 했다. 내 글을 교지에 실어주었고, 계속 글을 써보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게 글을 잘 쓴다고 들었던 첫 칭찬이었던 것 같다. 여고시절에도 신문반에 들어갔다. 신문반 학생들은 교복 흰 컬러 한쪽에 펜대 모양의 초록색 배지를 달고 다녔다. 그게 달고 싶었다. 여덟 명을 뽑는다고 했는데, 60명 가까이 들어가는 한 교실에 지원자가 가득 찼다. 무슨 주제론가 글을 썼고, 뽑혔다. 그 후, 환갑이 다 된 지금까지 다양한 글쓰기를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신문 기사도 쓰고, 방송 대본도 쓰고, 책을 만들고, 보도자료도 쓰고. 교사가 된 후에는 평가서도 쓰고, 공모전 제안서도 쓰고, 다른 사람을 빛내게 하기 위한 공적조서도 썼다.
그러나 감히 전업작가가 될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돌아가신 친정엄마는 언젠가부터 "너, 드라마 한 번 써봐."라는 말을 하시곤 했다. 하지만 상상력이 부족하고, 내 글에 늘 자신이 없었던 나는 내 생활글을 끄적거리는 것에 만족했다.
그래선가 내게 글쓰기는 여전히 어렵다. 참된 삶을 사는 것만큼이나 중차대하고 무겁다. 나이가 들면서, 글쓰기가 점점 더 버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문장을 쓰고 지우는 횟수도 늘었다. 적당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끙끙대는 시간도 길어졌다. 젊을 때는 장거리 운전을 해도 힘들지 않았고, 밤을 새워 놀아도 끄떡없었다. 지금은 초저녁이면 졸려서 눈꺼풀이 내려앉는다. 노는 것이 일하는 것만큼이나 힘겹게 느껴지는 나이가 되니 내 안에서 글을 길어내는 것도 예전만큼 쉽지 않다. 내가 아이들이 쓰는 글의 힘을 받아야 하는 때가 온 거다. 아이들이 글 쓰는 모습을 바라보고, 아이들이 써내는 글을 읽으며 힘을 얻는다. 그러니 글방구리에서 글동무인 아이들과 새로운 한해살이를 시작해 보자. 힘차게, 재미나게, 아름답게!
아이들을 상징하는 공룡, 나의 새로운 사도직을 상징하는 사도 바오로 상을 문 앞에 두었다. 앞으로의 날들이 꽃길이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