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자기 나이를 잊어?' 그런데 이제 알겠다, 나이를 세다가 잊어버렸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어른들이 왜 나이를 말할 때 숫자보다 "나는 쥐띠요, 소띠요."라고 하는 걸 더 선호했는지.
사실 해가 갈수록 총체적으로 모든 '기억'에 자신이 없어지고 있긴 하다. '그게 언제적 일이었더라?' 일 년 전인지 이 년 전인지 알쏭달쏭할 때도 많아, 지난 다이어리를 뒤적이기도 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헷갈리는게 숫자의 영역이다. 뺄셈을 줄기차게 연습시키는 통장 잔액도 아니고, 일 년에 꼭 '1'만큼만 더하는 단순한 덧셈인 나이이거늘, 태어난 해부터 손가락을 꼽으며 헤아려야 하다니.
기억하기 좋은 숫자, 2000년이 온다고 설레발을 떨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그후 20년하고도 또 2년이 더 지나갔다. 연도가 숫자로 되어 있어 그런가, 글씨를 쓸 때도 종종 잘못 쓰곤 했다. 2022년을 쓰면서 2202년이나 2220년이라고 쓰기도 했다. 내일부터는 마지막 글자가 2에서 3으로 달라지니 새해에는 잘못 쓰는 일은 줄어들겠지. 그렇지만 아마도 한동안은 습관적으로 2022년이라고 적을 때도 있을 거다. 익숙해질 만하면 한 해가 훌쩍 넘어가 버리니, 자꾸만 더 빨라지는 세월의 속도에 적응하기가 어렵구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난 주간에는 아이들과 '송구영신 글쓰기'를 해보기로 했다.
지난 것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계획을 세워보자는, 사실 새로울 것 하나 없는 글쓰기지만, 왠지 '송구영신 글쓰기'라 이름을 붙여놓으니 제법 근사해 보인다. 옛것을 보내고 새것을 기대하는 마음이라! 좋아!
그렇게 아이들과 '송구(送舊)'하고 '영신(迎新)'하는 마음으로 글쓰기를 해보자고, 칠판에 커다랗게 <송구영신 글쓰기>라고 썼다.
한 글자 한 글자 쓸 때마다 따라 읽던 아이들이 묻는다.
"송구영신 글쓰기? 송구영이 누군데요?"
헉! 송구영신이 뭐예요,도 아니고, 송구영이 누구냐니. 송구영신이라는 말 자체를 들어보지 못했나 보다.
하긴, 나도 어릴 적엔 무슨 뜻인지 잘 모르며 쓰는 사자성어들이 꽤 있었다. 그 중 하나가 '근하신년'이다.
예전에는 크리스마스로 시작되는 연말연시가 되면, 문구점에서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을 골라 보내는 재미가 있었다. 학교에서 어렵게 구한 크리스마스 씰은 우표보다 디자인이 예뻐서, 친한 친구나 귀한 사람에게만 붙였다. 어른들, 주로 선생님께 보내는 것은 '근하신년'이라고 쓰여진 연하장을 고르곤 했는데, 한글로 된 것보다 한자로 쓰여진 것을 주로 샀다. 왠지 '근하신년'의 마지막 글자인 '년'이 욕을 써놓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해를 뜻하는 '년'을 욕으로 보았던 나나, '송구영신'에서 '송구영'이라는 사람을 묻는 아이들이나 오십보백보다.
한 해를 돌아보는 글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기뻤던 일, 억울하고 화가 났던 일, 슬펐던 일 등을 떠올려보게 했다. 크리스마스에 선물 받은 것, 놀이동산 놀러 간 것, 시험 백 점 받은 것 등 아이들이 기뻐하는 일은 거의 비슷했다. 그렇게 몇 개의 질문을 한 다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자, 그럼 너희가 이렇게 한 해 동안 지내면서, 후회하는 일이 뭔지 적어보자."
그랬더니 민재가 묻는다.
"후회한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후회한다는 말을 모른다고?"
그러자 3학년 지윤이가 거든다.
"왜 있잖아, 그러니까,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아, 뭐라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네."
후회한다는 말을 모를 줄이야. 내 딴에는 쉽게 설명을 해보려 했다.
"후회한다는 말은, 내가 한 일 중에서 '그렇게 하지 말걸~ 괜히 그렇게 했네, 다르게 할걸' 하고 생각하는 거야."
그랬더니 아이들은 "그러니까, 반성하는 말인가?"라고도 한다.
반성하는 것과 후회하는 것의 미묘한 차이를 어떻게 설명해 주어야 한담. 아, 어렵다!
민재가 써놓은 글을 보면 그 말뜻을 잘 이해했는지 알 수 있겠지.
한참 동안 생각하던 민재는 연필을 들고 글을 쓴다.
다 썼다며 공책을 냈는데, 그 안에 쓰인 민재의 글은 아주 짧았다.
"후회되는 일은 없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과거는 그저 지나간 시간이다. 현재를 충실하게 살았으니 후회할 것도 없는 게다.
1,2년을 더 살았다고 4학년 아이들만 해도 후회하는 일들이 있었다. 뷔페에 가서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었던 것, 순살치킨 대신 뼈 있는 치킨을 시킨 것부터, 축제에 갔을 때 경품 행사에 당첨될 줄 모르고 일찍 자리를 뜬 것이나 반려동물이 죽을 줄 모르고 많이 놀아주지 못한 것까지 후회할 거리들을 찾아냈다. 민재도 내년이나 후년쯤 되면, '후회'라는 말의 뜻을 더 잘 알게 될 거고, 후회하는 일들도 생각해 내리라.
그러나 나는 내년이나 후년쯤, 민재처럼 "후회가 무슨 말이에요?"라고 물을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렇게 한 해 한 해 쌓여 하느님께 돌아가는 순간이 되었을 때 "후회하지 않아요. 내 삶에 후회되는 일은 없어요."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